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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C Apr 01. 2020

그는 나와 달라서
당신 얼굴에 기쁨만 가득하기를

<그리움 넷>

이별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상황에서도 그리움은 염치없이 찾아온다그것을 핑계로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리려 해선 안 될 일이다다음에는 전혀 다를 거라 다짐이야 하겠지만다음도 이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이번이 저번과 다르지 않듯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그저 그리움의 형벌을 받아들이고 떠난 이의 행복을 바라는 게 순리다진정 사랑한다면.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보는 걸 무척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거울 앞에 자주 섰고 그만큼 소비하는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거울은 내가 정말로 알아야 할 나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거울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얼굴만 보여주었다. 당신의 얼굴이야말로 진짜 내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었음을 우리의 인연이 마침표를 찍는 날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당신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무슨 일 있냐고 멍청한 질문만 해댔다. 항상 아무것도 아니라던 당신은 결국 지쳤다고 했다.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나 당신에게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 왔던 걸까?

    거울이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분명한 내 것들. 당신의 무표정을 만든 내 것 아닌 것 같은 표정들. 이별의 순간까지도 천 번은 순화했음이 분명한 고상한 언어로 풀어냈건만 끔찍하기 짝이 없던 내 것들. 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오, 그건 차라리 학대였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나는 당신을 붙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신은 결코 그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될 사람. 

    하루라도 당신이 그립지 않은 날 없다. 내 마음은 칠흑 같은 밤 해바라기처럼 지향점을 잃은 채 심연으로 침잠하는 중. 하지만 당신은 겨우 떠난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와선 안 될 사람. 그러므로 내 아픔과 상관없이 나는 그저 속죄의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당신을 향한 그 누군가의 낯빛일랑 해거름의 하늘처럼 은근하기를. 막 돋아난 나뭇잎처럼 투명하기를. 서빈백사의 모래처럼 반짝이기를. 부디 그 모든 대면이 나와 달라서 당신을 더욱더 기쁘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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