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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두 여자의 동상이몽

by 열대나무




봄을 기다리는 한 아이가 있다.


겨울이 한창이던 때부터 아이는 자꾸 창밖을 보며 언제 꽃이 피냐고 물었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봄이 와야 꽃이 필 거라고 답하면 아이는 언제 봄이 되냐고 되물었다. 3월이 되어야 한다고, 아직 서른 밤은 더 넘게 남았다고 답하면 아이는 대답 없이 창밖을 오래 응시했다. 마치 그 뜻을 깊게 해석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다 이내 참새 부리 같은 작은 입술로 포옥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엄마에게 얼른 꽃을 선물하고 싶은데......"


지난봄 아이와 나는 아파트 단지 정원에서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며 놀았다. 아이의 작은 주먹에 가득 찰 만큼 꽃을 꺾어와 작은 유리병에 꽂았다. 식탁에 장식해 두었더니 아이는 식사하는 내내 꽃을 바라보고, 아빠에게 자랑도 하며 좋아했다. 하나의 작은 유희였던 그 일이 아이 마음에 크게 남았나 보다. 아이는 꽃집에 가서 꽃을 살 생각까지는 못하고 천지 들판에 꽃이 피어야 꽃다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편과 아이 둘이서 차를 타고 가던 길에도 아이가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보는 차창 밖에는 아직 휑한 나무들뿐이어서 그랬을까. 운전 중인 아빠에게 꽃은 언제 피냐고, 또 봄은 언제 오냐고 재차 물었더랬다. 3월이라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시간을 선고받은 아이는 다시금 아쉬움을 내뱉었다고 한다. 엄마에게 얼른 꽃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이다.


무슨 영문으로 아이는 자꾸만 내게 꽃을 선물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어린것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속이 뭉근하게 뜨거워진다. 잘 우려낸 대추차 한 잔을 오랫동안 마신 것처럼 말이다.


여기 봄을 기다리는 한 엄마도 있다.


내게 이번 봄은 아주 특별하다. 3월에 37개월이 되는 아이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무진장 특별한 봄이다.


나는 지난 3년간 꼬박 아이를 집에서 가정보육해 왔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특별히 이어나가야 할 커리어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가정보육이라는 선택이 쉬웠다. 가난한 내 인생에 선물처럼 태어나준 아이에게 내가 가진 가장 값비싼 것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3년이라는 나의 온전한 시간을 아이에게 주기로 했다. 앞으로 많은 시간 나는 또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할 터니이 그전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요즘 시대에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일하는 남편을 두며 엄마가 종일 홀로 아이를 키우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날이 궂어 밖에라도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아파트가 꼭 감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돌아서면 밥을 하고, 돌아서면 집을 치웠다. 아이가 눈 뜨고 잠잘 때까지 내내 아이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TV라도 좀 틀어놓고 살면 정신적으로 덜 고단 했을 텐데, 영유아에게 미디어는 해롭다고 해서 TV도 없앴다. 아이가 말이 트이기 전에는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아이가 말이 트이고 나서는 정신적으로 고달팠다. 화장실을 가는 순간에도 아이를 떼놓기가 어려웠고, 잠을 잘 때도 항상 엄마만 찾는 통에 수면의 질도 점점 떨어졌다.


육아가 왜 이렇게나 힘들까 고민하다가 나는 힘들수록 육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다. 육아 정보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조금만 알아보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육아에 대한 수많은 규칙들이 있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육아서를 멀리했고, sns에서의 육아정보도 끊었다. 오직 엄마가 아이와 함께 지낸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의미를 뒀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으면 잘 먹이는 법을 찾아보기보다 내 마음 내려놓는 법을 익히려 했고, 아이가 심심해하면 온갖 놀이법을 찾아주려 애쓰기보다 그런 아이를 지긋이 지켜보는 마음을 가져보려 했다. 그러니 나는 생수에 밥만 말아먹는 아이에 대해서도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는 스스로 놀이를 만들며 놀 줄 아는 아이로 커갔다. 육아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어렵다지만, 조금씩 마음을 비우려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고 있었다.


그간 아이도 나도 우린 참 여물게 성장했다.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만 깊게 내뱉고 흡수했다. 그러므로 부족한 것은 없었다. 사람이 여무는 데 필요한 건 달디 단 햇살 같은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3년의 가정보육 끝에 그래서 무엇이 남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뚜렷한 결과 같은 건 없다. 그렇지만 이상하리만치 속이 찬 느낌이다. 아이도 나도 살다가 힘든 일이 생겨 흔들릴 때면 우린 이 시간의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인생의 사랑 창고를 다 채운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그래도 역시 3년이라는 세월이 밀도가 너무 깊었던 것일까.

지금은 나도 약간의 육아 번아웃이 온 것 같다.


원래는 아이가 세 돌을 맞으면 나의 고생을 기념하여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고자 했었다. 하지만 내가 돌연 계획을 철회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얼마나 고단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건 그저 풍경 좋은 곳에서 돈 쓰며 육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지금 내게는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사실 혼자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내가 떠나고 난 뒤 음울해할 남편을 생각하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그저 고요한 집에 혼자 있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 평화로운 집 공기를 음미하며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영화들을 보고 싶다. 고바야시 사토미가 나오는 일본 힐링 영화들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와니와 준하> 같은 소박한 영화들 말이다. 이 영화들은 조용한 가운데 가만히 보아야 그 진미가 느껴지기 때문에 혼자 봐야 한다. 내가 이런 소박한 시간과 분위기를 얼마나 애정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그리웠는지 새 봄을 앞두고 참 새삼스럽기도 하다.


아이는 세 돌을 맞았고, 약속했던 3년의 시간이 다 갔다.

앞으로는 내 인생의 1순위 자리에서 아이를 내려놓고 다시 내가 1순위가 될 것이다.


아이가 서운해할까 싶지만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다. 장난 삼아 아이에게 너 이제 어린이집에 가면 엄마는 심심해서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아빠랑 같이 놀고 있으라며 쿨하게 말한다. 아이는 이제 언니가 된 스스로가 뿌듯하기 그지없고, 얼른 어린이집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도 엄마에게 꽃을 주려고 봄을 기다리는 아이 마음을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나는 오직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봄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곧 봄이 온다.

이 고운 계절에는 부디 외롭게 세상을 떠나가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2월은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어린 사람들의 소식이 많았다.

마지막 겨울바람은 유독 세찼고, 그 속에서 나는 진밥을 삼키며 슬픈 소식을 듣고 했다. 그때마다 괜스레 목이 메어 뜨거운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세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기도를 멈출 수가 없다.


봄 목련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어떤 이의 어린 얼굴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꽃 같지도 않은 커다란 얼굴이 떨어질 때마다 내 가슴이 얼마나 철렁하는지 봄은 모를 것이다.

그럴 것이면 그리 어여쁘지나 말 일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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