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건 누구의 성공일까

by 유영

"성공은 가장 짧은 허구다. 모든 삶이 거기로 수렴해야 한다는, 거대한 착각."




성공이라는 말을 보면, 언젠가부터 삶의 깊이를 지우고 겉모습만 남긴 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엔 그저 모범적인 아이가 기준이었다. 정답을 빠르게 맞히고, 시험지에 동그라미가 많고, 질문보단 대답을 잘하는 아이. 그리고 그렇게 정의된 성공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삶의 모든 흐름을 무시한 채 마침표부터 찍으려는 듯이. 이름이 알려진 학교, 남들이 선호하는 직장, 정해진 나이에 해야만 하는 사랑,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 은퇴 후엔 손주와 산책하는 삶. 이렇듯 그저 삶을 요약하는 가장 짧은 허구일 뿐이지만, 그 모든 장면이 갖춰지면 마침내 인생은 '성공'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 말엔 이상할 정도로 질문이 없다.

왜 그것이 성공인지, 왜 거기에 도달해야만 하는지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성공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

그 정답은 사실 스스로 찾은 것이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고, 교육이 주입한 것이며, 비교가 강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삶을 돌아보기보다는 타인의 삶을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한다.

성공은 그렇게 철저히 외부에 의존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공의 기준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질문을 멈춘다. 묻는다는 건 방향을 가진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 기준이 언제나 바깥에 있을 땐 결국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한다.

삶은 흐르지만, 그 안엔 내가 없다. 그래서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나 자신과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너무 일찍부터 정답에 길들여졌다.

입학은 합격이라는 정답을 향해, 공부는 점수라는 정답을 향해, 삶은 괜찮은 어른이라는 정답을 향해. 정답에 가까운 사람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 속에서, 질문은 속도를 늦추는 쓸모없는 여백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우리가 진짜로 '원해서' 성공을 꿈꾸고 있는지.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 무조건 그 방향으로 발을 옮기는 것뿐인지.

사람들은 성공을 말할 때 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실행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깔려 있다. 뒤처질까 봐, 초라해질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성공은 선택지가 아니라 의무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멈춘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게 된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진짜 성공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정말 내 삶에도 통하는 말일까. 그 성공이 나에게 기쁨이 될까, 아니면 단지 불안하지 않기 위한 잠깐의 안도감일 뿐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은 결국 자본주의가 설계한 목표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인재상이고, 소비가 반복되기 위한 조건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으로 정의된 삶.

그래서 성공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유효해야 하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며,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성공'은 성공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성공은 외적인 잣대에 맞춰야만 가능한 것이 되었고, 그 기준을 벗어난 모든 삶은 애써 '다른 길'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설득해야만 한다. 그 불안은 끝내 나도 틀렸을까라는 질문을 낳는다.


나는 더 이상 남이 그어준 선 안에 머물고 싶지 않다. 성공이라는 말에 붙은 불필요한 수식어들.

자격, 경쟁, 비교, 속도, 효율.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다.

나는 내 삶의 기준을 타인의 성공에서 찾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위대한 업적이 될 삶이 나에겐 너무 버거운 무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가 나에겐 가장 값진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성공은 하나의 정의로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 그건 각자의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여야 한다.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고, 증명보다 경험이며, 도착보다 '살아낸 시간'에 가까운 말이어야 한다.

나는 이제, 성공이라는 단어에 내 시선을 새로이 새기려 한다. 고개를 숙이기보다, 내 질문을 먼저 세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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