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정해진 답에 있는 것이 아닌,
태도의 깊이에 있다."
삶은 늘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 정확히 바라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걷는 방향을 따라 걷고 있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언제나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선택한 길은 없었다. 학교, 진로, 인간관계, 목표.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틀 안에 존재했고, 나는 그 틀 안에 나를 억지로 욱여넣고, 맞춰 살아가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하지만 내가 배우지 못한 게 딱 하나 있었다. '삶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자체.
사는 법은 가르치면서, 왜 사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질문은 허영이었고, 비생산적이었으며, 공부를 방해하는 혼란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나에게 그 질문은 삶의 가장 본질적인 출발점이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태도 없이 살아가는 삶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고, 껍질처럼 비어 있다고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나는 정답보다 방향에 관심이 많았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할 때, 나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물었다. 그 질문이 끝없이 나를 따라다녔고, 결국 그것이 내가 삶을 마주하는 방식이 되었다.
태도는 자주 가볍게 쓰인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태도는 겉모습이나 성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내면의 깊이에서부터 우러나는 방향이고,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 삶을 어떤 시선으로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자세다.
삶의 태도는 스스로를 마주하는 힘에서 비롯된다. 남들이 정한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내 삶의 의미를 구성하고, 그 위에서 무너지지 않는 뿌리를 세우는 일이다.
어떤 이는 삶을 선택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운명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태도라 부른다.
선택과 운명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
삶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항상 같진 않다.
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그 하루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르면 그날의 기억도 완전히 다르게 남는다.
삶은 결국, 어떻게 살아내는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태도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내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지를 묻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길이 나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짜놓은 경로를 걷고 있는 것인지 직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태도를 선택하고 싶다.
그 어떤 정답보다도, 그 어떤 목표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보다, 어떻게 바라볼지를 먼저 고민하고 싶다.
이제 나는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을 하나씩 꺼내어 사유하고, 기록해보려 한다.
삶은 언제나 이유를 요구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 이유가 아니라, 그 물음 자체를 그저 곁에 두고 있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