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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개들의 자랑

 한참 부산스럽던 장터가 떠난 읍내의 시장 골목엔 쓸쓸함만이 주인장 행세를 하고 있었다. 쌀쌀해진 늦가을 날씨에 낙엽들은 다가올 겨울이 두려웠는지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골목 모서리에 모였다. 누군가 땔감으로 쓸어 담아가도 좋으련만 골목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후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가로등 빛은 하얗게 변해갔다. 짙은 군청색 고요가 내려앉은 그 시간은 사람들의 시간이 아니었다. 바로 개들의 시간이었다.     


 “나는 정말 특별했어. 아무거나 먹지 않았거든.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다고? 그건 내 자존심이 절대 허락하지 않았지.”

 곱슬곱슬한 개였다. 몸집은 크지 않았지만, 여느 개들과는 달리 다리가 무척이나 길었다. 덕분에 그 개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상대도 내려보듯이 말했다.

 “너희들, 소시지 먹어본 적 있어?”

 “소시지?”

 곱슬곱슬한 개의 질문에 개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갸우뚱했다.

 “그냥, 이렇게 말해줄게. 너희들이 아주 아주 운이 좋았을 때 먹어 본 고기를 상상해봐. 그 고기에서 가장 부들부들한 부위를 모아서 쫄깃쫄깃한 돼지의 창자에 꽉 채워 만든 음식이 소세지야. 어때? 상상할 수 있겠어?”

 “.......”

 곱슬곱슬한 개의 설명에도 개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입에서 침만 질질 새어 나올 뿐이었다. 


  “소시지? 그것도 음식이니? 아휴! 지금도 소시지 생각만 하면 토할 것만 같아. 지긋지긋해!”

 눈이 크고 동그란 강아지였다. 사실 그 강아지는 몸집이 작아서 강아지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다 자란 성인 개였다. 개들은 일제히 강아지 같은 개를 바라보았다. 그 개는 개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겼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는 소시지를 먹고 나면 뭐 했니?”

 강아지 같은 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곱슬곱슬 개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야 잠을 잤지. 주인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특별한 집에서.”

 곱슬곱슬한 개의 대답에 강아지 같은 개가 깔깔깔 웃어댔다.

 “하하하! 그게 다야? 소시지만 먹고 잠만 잤다는 거야?”

 곱슬곱슬한 개는 강아지 같은 개의 비웃음에 기분이 상했다.

 “나는 말이야 식사하고 나면 항상 목욕했거든. 그것도 우유까지 넣어서 말이야. 내 피부를 한번 볼래? 이런 피부가 거저 생기는 줄 알아?”

 강아지 같은 개는 혓바닥으로 자신의 털을 쓸어 올렸다. 그때마다 희끗희끗한 피부가 보였다. 게다가 보통 개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향기까지 풍겼다.     


  “너희들은 부끄러움도 없니? 하긴 교양 수업이나 받아 봤겠어?”

 까칠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희한하게도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너희들 주인은 정말 가난한 모양이구나. 지금까지 알몸으로 지내는 것을 보니.”

 옷을 입은 개는 다른 개들을 쓱 훑어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시선이 지나갈 때마다 개들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방금까지 자랑질에 여념이 없던 곱슬곱슬한 개와 강아지 같은 개도 입을 다문 채 옷을 입은 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아, 이 옷? 별거 아냐. 이런 옷이 한두 벌이 아니거든. 내 전용 옷장이 있었으니까.”

 옷을 입은 개는 사뿐사뿐 걸었다. 개들은 옷을 입은 개가 편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옷을 입은 개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동작 그만!”

 뭔가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체격이 우람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멋진 개가 있었다. 멋진 개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말했다. 

 “내 주인은 장군이였다. 난 장군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장군과 함께 생활했다.”

 개들은 멋진 개의 당당함에 금세 빠져들었다.

 “장군의 저택엔 나만의 정원도 있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장소였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놀고먹기만 하는 너희들과는 달랐다. 나는 장군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았다. 나에겐 명예가 있다.”

  멋진 개는 가슴에 달린 훈장을 쭉 내밀었다.

 “대단하다! 저 개는 우리하고 차원이 달라.”

 “맞아! 명예를 얻은 개는 처음 봐.”

 개들은 저희끼리 웅성거리며 멋진 개에 대해 칭찬을 했다. 개들은 멋진 개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길 바랐다. 그때 개들의 눈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누렁이가 눈에 띄었다. 개들은 서서히 누렁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누렁아, 넌 뭐 자랑할 거 없니?”

 개들의 질문에 누렁이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렁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소시지는 먹어봤어?”

 곱슬곱슬한 개가 물었다. 누렁이는 고개를 저었다.

 “우유 목욕은 해 본 적 있어?”

 강아지 같은 개가 말했다. 누렁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옷은?”

 옷을 입은 개의 질문에도 누렁이는 계속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명예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멋진 개의 질문에는 그만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하긴, 너처럼 평범한 누렁이에게 특별한 것이 있을 리가 없지? 하하하!”

 “푸하하!”

 주변에 있던 개들은 누렁이를 보며 비웃어 댔다. 곱슬곱슬한 개, 강아지 같은 개, 옷을 입은 개, 멋진 개뿐만 아니라 개들의 자랑에 열등감을 느꼈던 개들까지도 누렁이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누렁이는 땅만 바라본 채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그때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네. 한참을 찾았잖아? 어서 집에 돌아가자. 너무 늦었어.”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나 다정다감했다. 개들은 너나없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두 팔을 벌렸다. 순간 누렁이가 사람에게 달려갔다. 사람은 누렁이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사람의 품에 안긴 누렁이는 개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갔다.

 조금 전까지 자랑을 늘어놓았던 개들은 누렁이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만 보았다. 개들은 버려진 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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