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변하면 된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 과거에 머물러 있는 어른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요즘은 10년은커녕 몇 달 전까지도 줄 서서 먹던 꽈배기 집 문에는 임대문의 안내가 걸려있다. 그 꽈배기 집 옆을 지나치며 언젠가 들러봐야지 했던 카페 자리에 순댓국집이 들어왔다.
아르바이트생 서너 명이 주문을 받던 토스트 집에도 키오스크 두 대가 아르바이트생을 대신해 서있다.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열심히 식빵을 뒤집고 있다. 앳되어 보이던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은 보이지 않는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간식으로 토스트 두 개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오시더니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다가섰다.
"손님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하시면 되세요."
손으로 키오스크를 가리키며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당황한 아저씨는 뒷머리를 두 번 긁적이더니 마지못해 키오스크로 다가간다.
"이게... 뭐가 뭔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버튼 저 버튼 삑삑 눌러보다가 한숨만 쉬신다. 고개를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쉽사리 말은 못 건네셨지만 눈빛으로 마치 나에게 '이것 좀...' 하며 애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망설여졌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오지랖을 발휘할 것인가. 그냥 눈길을 피해 무안하지 않게 모른 척해야 좋을 것인가.
제주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아들 딸들 다 육지에 보내놓고 이런 상황일 때마다 난처하다고 하셨다.
오히려 내가 용기를 내어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이게 저도 처음에 너무 어렵더라고요. 버튼도 많고 결제도 어렵고..."
무안하지 않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어떤 걸 드시고 싶은지, 추가로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 결제는 어떤 카드로 하실 건지 여쭈어 가며 주문을 함께했다.
이 화면에서는 음식을 고르고, 그다음 음료는 여기를 누르고, 결제선택은 여기서 하고, 틀리면 여길 눌러서 돌아가면 된다고 설명하면서 같이 주문했다. 처음 정수기 설치하고 기사분이 사용법을 설명해 주시는 것처럼 내가 고객에게 설명해 주듯 키오스크 설치기사가 되었다.
지난여름 제주에서 엄마에게 알려주던 그때처럼...
팔순이 넘은 아이
가끔 고향인 제주에 가서 엄마랑 식당이나 카페를 가면 그때마다 나는 혼자 가서 주문을 해버리지 않는다. 나 없이도 스스로 주문하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부끄러워하는 팔순이 넘은 엄마손을 이끌고 키오스크 앞에 선다. 기다리는 뒷사람이 없을 때마다 버튼을 누르며 주문방법을 가르쳐드리곤 했다.
"엄마. 이제 몰라도 되는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어. 낼모레 당장 돌아가시지도 않을 거고."
"이런 세상을 10년 넘게 살아야 하니까 지금 변화할 때 조금씩 같이 따라가야 해."
"엄마 스마트폰 처음 쓸 때도 지금처럼 힘들고 불편했잖아. 근데 지금 익숙해진 것처럼 이것도 자꾸 스스로 하고 배우면 다 할 수 있어."
"엄마 눈썰미 좋아서 금방 배우는 편이야. 진짜 빨라~"
내 아이에게 처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처럼 설명해 주고 용기도 주고, 잘했다고 칭찬도 해 준다.
팔순이 넘은 아이에게.
나조차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처음 생겼을 때는
'세상에나...'를 외치며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요즘은 자연스럽게 무인 밀키트 전문점에서 저녁 반찬을 해결하고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집으로 돌아간다. 마주치는 점원 한 명 없이.
마트에도 인상 좋던 아줌마대신 자율 계산대가 점점 늘어났고, 택시도 현관을 나서며 스마트폰 터치 몇 번에 집 앞으로 오고, 결제는 이미 연결해 둔 카드로 결제가 된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가 있는 세상!
이제 동전소리를 '또로롱' 내며 버스에 승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십 년이 아니라 일 년 사이에도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
주변에서 다들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일 거라고...
대학이 전부가 아닌 시대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아니 이미 왔다고...
그런데 이렇게 다 변하고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교육은 어찌 된 게 그대로이다. 학원을 가고 점수를 잘 받고 내신과 수행평가를 신경 쓰며 대입을 최우선 목표로 교육한다.
책 읽기? 논술? 글쓰기? 창의력 향상을 위한 융합교육?
결국, 대학 진학이 목표인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예전엔 교과목 공부만 잘하면 되었는데 요즘은 논술이니 학생종합이니 신경 써야 할게 많아져서
더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것도 결국 대학이 목표다.
세상은 변하고 또, 변했다고 말하면서 학생의 최종 목표는 대학이 '끝'이라는 부모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많은 부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들 '빌 게이츠, 스티븐 스필버그, 리처드 브랜슨, 마이클 델...'
모두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나 난독증에 고교 중퇴자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특별하다고 또 변명과 핑계를 대고 싶은 걸까?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라 특별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하는 세상 속에
이제 학부모인 나만 변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