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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Feb 02. 2020

미니'말'리즘 시대의 우리는

'사람들은 왜 자기를 고백하고 싶어 할까.

위로받기 위해 이해받기 위해 나를 보여주는 사람들.'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표현이다.

SNS를 가리켜 장그래의 내레이션으로 던져진 이 질문 앞에 나도 잠시 생각해본 적 있다.

결국은 나를 보여주고 드러내는 이유가 위로받고 이해받기 위해서라는 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작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용기가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지혜가 없어서, 나서지 못하고 할 말을 못 해 뒤에서 가슴앓이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속이 터지다 못해 안에서 문드러지고, 속에서 곪은 상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던져지는 돌덩이가 되고,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향해 바짝 긴장하고 날새운 안테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고슴도치처럼 보이게 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지인이 모임 속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어느 누구에게 무슨 일로 상처를 받았는지 끝끝내 말하지 않아서 아무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아오는 것이 쉽지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무작정 나오라고 할 수만은 없는 심정이었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나아가기 싫은 때가 있으니. 사람들과의 일로 받은 상처는 사람들과 말로 풀어내고 씻어내야 낫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 상처가 저절로 낫고 새살이 돋을까.

시간이 흘러서 낫는 것은 시간이 약이겠지만, 시간은 보통 사람들에게 곪을 만큼 곯게 하고 앓을 만큼 앓게 한 뒤에 지나간다. 시간이 흘러갈 때 편안하고 태평한 것은 시곗바늘 밖에 없다.

요즘은 무음 시계까지 있어서 시곗바늘 초침 소리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미니'말'리즘 시대.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정보를 찾고 교류하면서 점점 하고 싶은 말만 하게 된다. 정작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누어야 할 진솔한 이야기들이 표면 속으로 가라앉고 겉으로 웃고 즐기고 넘어가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시대. 부부 사이의 대화도 쉽지 않은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과 요즘처럼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2미터 떨어진 곳에서만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큰 불편과 불을 안겨줄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싶다'는 짧은 시가 있다. 은 단절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특별하나 보이지않는 곳이다.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쉴 수 있고 숨을 수 있는 장소라면, 요즘 시대에 '섬'에는 SNS도 포함되겠다.

사람들은 휴식 시간 틈틈히 SNS라는 섬에 머물 쉬고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니 말이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말할 수 있는 말을 하고, 해야 할 말을 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공평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입으로, 글은 손으로, 적절한 표현으로 적당한 시간에 합당하게 할 수 있는 관계. SNS의 가치를 한껏 드높이려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눌 수 있는 말에 더욱 힘이 실려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위로받고 이해받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싶을 때 SNS를 이용한다.

SNS는 어쩌면 미니'말'리즘 시대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잘 이용하고, 좋은 글들을 나누어서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 존중받고 이해받고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라면, '말'이 존중되어야 한다.



"말안하면 몰라 내가 누군지" by 아인잠's girl



*** 아인잠의 시작: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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