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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Vagabond Sep 11. 2020

너는 무례하지만 나는 괜찮아

중심이동


보금자리를 떠나게 되는 순간, 우리의 삶에서는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우선 항상 나의 하루일과를 들어주고 한결같이 내 편을 들어주던 가족의 역할은 당연한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빈자리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남에게서 기대한다. 은연중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연인에게서, 친구에게서, 또는 다른 관계에서 바라게 된다. 나의 기대와 현실속 어긋남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존감이 흔들리기도 한다.


나의 바램과는 달리, 수용보다 태클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넌 이런게 문제야, 당연히 그래야하는거 아니야? 너 그러지마, 이건 너가 잘못 생각하는거야, 그럼 안되지, 왜 그래? 별의별 판단들을 듣고있다보면 니가 뭔 상관인데, 웬 오지랖인데, 싶다가도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내가 정말 잘못 살고 있나, 내가 문제가 있는걸까 의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서운해하고, 실망하고, 상처주는 말들을 한다. 나는 안 그런 것 같지만 나도 그들에게는 그런 존재였으려나.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신경 쓰는건가? 아니면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무례한건가? 하는 고민도 참 여러번 하게 된다. 물론 전자일 때도 있었지만 더 많은 경우에서 결론은 후자였다. 거의 가르치려 하거나 남 탓(내 탓) 하는 중인데, 나라면 저렇게 얘기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여전히 내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깐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그들은 그런 행위가 권위를 세우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이 만나면 서열이 정해진다고 믿는다. 평가하고 지적함으로써 순간적인 우월감을 느끼지만 이면에는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자존감을 훔쳐서라도 나의 자존감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또 나르시즘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사랑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르치고 비난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위해서라고 믿는다착각한다. 이는 사랑받아야 하는 경우에 수직관계 속에서 지적과 비난을 받으면서 이걸 사랑이라고 습득해왔을 가능성이 크니 이런 사람에게는 만만하게 보이지 말고 윗서열이 되는 것이 답이다. 제가 모를까봐 그러시는거죠?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다 압니다 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며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누가 나를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누구나 있을법한 감정이고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어느 순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음을, 나의 생일은 그저 365일 중 임의의 하루임을, 나의 존재는 그저 우주의 먼지임을,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다. 아니, 깨달아야 한다. 굳이 비판과 질타를 들어가며 남의 관심을 구걸할 필요는 없다. 내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채워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은 내가 남들과 다른 부분을 남들은 깎아없애려고 한다는 걸 인지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나를 차가울만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겐 뭐가 중요치 않고 뭐가 중요한지, 나는 뭐가 다르고 뭐가 부족한지 그런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다. 애초에 그럴 시간도 없다. 


자신을 발견해갈만한 여유가 없을수록 남을 쉽게 판단하고 쉽게 지적한다. 모든 지적에 잘못했다고 빌빌거려야 상황이 무마된다면 그 관계는 하루빨리 끊어내도록 하자. 나를 감싸주는 법을 모르니 남의 잘못을 감싸줄 줄은 알리가 없고 본인은 자각도 없는채로 수도없이 남을 민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노출된다면 우리는 중심을 바로 남에게서 나에게로 가져와야 한다. 


의외로 나와 내 주변에는 간단하지만 소소한 행복들이 널브러져 있다. 나를 지속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있다면 잠시 차단하고 내 주변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너무 소소해서 행복을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순간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1. 계란이 완벽하게 깨져서 촤르르 후라이팬으로 떨어질 때;


2. 이불빨래를 한 뒤 새 이불을 깔고 덮는 날 저녁;


3. 맥북에서 파일정리를 하고 나서 휴지통을 비울 때 쓰윽 하고 나는 기계음;


4.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잔 마시는데 따뜻한 촉촉함이 목 뒤로 차근차근 느껴지는 순간;


5. 벨소리가 울려서 봤더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이 보일 때;


6. 지하철 역에 도착하여 카드를 찍으니까 지하철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올 때;


7. 새로 산 물건에서 가격표 스티커가 말끔하게 떨어질 때;


8. 쓰레기통으로 정확하게 슛 했을 때;


9. 운전 중 내가 있는 레인이 가장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 때;


10. 고기 한점을 올렸을 때 들리는 치~익 하는 소리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


11. 광고 시간에 잠깐 채널을 돌렸다가 돌아왔는데 마침 다시 시작할 때;


12. 아침에 창문을 열었는데 너무 예쁜 하늘과 시원한 가을바람이 하루를 맞아줄 때;


13. 회사에 20분가량 일찍 도착하여 커피숍에 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


14.  오늘 목요일인 줄 알았는데 금요일일 때;


15. 옷을 정리하는데 주머니 여기저기에서 현금이 막 나올 때;


이렇게 나는 그저 주머니에서 나온 2,000원에도 만족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괜한 기대 접어두고 그들의 인생이나 즐기면 안 될런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일시적 또는 영구적 손절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힘든 관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개복치처럼 살지 않으려고 오늘도 나를 다잡는다. 나에게 무례한 건 그들이지만 내가 힘들어하는 원인은 내 안에 있음을 느껴본다면. 


너는 무례하지만 나는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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