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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ug 20. 2024

시그널 #2

골든이어즈 주립공원 - 노스비치 (North Beach) 캠핑장

야생동물을 대하는 북미 사람들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인데, 이는 좀 심하게 말하면, 그 옛날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침략하던 때의 정서와 닿아있다. 상냥한 얼굴로 나타나서는 중남미의 모든 황금을 수탈하고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던 그때. 그러고 나서 제국주의의 약육강식을 반성한답시고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거리두기가 되었다. "원주민으로서 당신들 법과 문화는 존중하겠다. 당신들 재산도 인정하겠다. 하지만 우리도 여기서 살고 싶다. 그리고 지금부터 긋는 이 선 밖으로 나오면 우리 법을 따라야 한다. 반항하면 죽인다"는 강짜를 부리면서. 그렇게 미국과 호주, 캐나다에는 원주민 보호구역이라는 걸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 원칙은 야생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물론 인간들이 마음대로 정한 법이고, 야생동물이 그걸 이해할 리 없겠지만, 인간들은 야생동물의 영역으로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고, 야생동물 역시 인간이 사는 곳으로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된다. 물론 모르고 인간에게 다가오는 야생동물도 있겠지만 이럴 때는 겁을 줘서 쫓아내야 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인간 영역으로 자꾸 들어오는 야생동물의 말로는 결국 죽음이기 때문에.


그래서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 캠프 사이트에 음식을 둔 채 잠을 자거나 자리를 뜨는 행위는 결국 야생동물을 죽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난 2022년 여름, 골든이어즈 골드크릭 캠핑장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 때는 엄마와 새끼 곰이 캠핑 트레일러 문을 열려고 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 캠핑장을 닫고 예약을 모두 취소한 후, 야생동물 관리관을 불러서 추격 사살했다고 한다 (https://bc.ctvnews.ca/b-c-park-set-to-reopen-after-problematic-bear-caught-killed-1.5945961). 엄마 곰 입장에서는 단지 자기 새끼를 먹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만든 세상의 법은 아무리 번드르르한 수식어를 단다고 하더라도 인간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법인 것이다.







남편이 열심히 클랙션을 누르는 동안 건진 아내의 사진


사실 곰을 처음 본 순간 든 생각은 '귀엽다'였다. 뒤뚱뒤뚱, 어슬렁어슬렁. 조 위에 사진에는 좀 크게 나왔지만 기어 다니는 덩치가 내 허리 정도밖에 안 올 것 같았다. 그래도 차열쇠에 달린 패닉버튼이 작동이 안 되어 신경질을 내던 아내를 보고 있자니, 차 문을 열고 직접 클랙션을 울려야 할 것 같았다. 귀엽지만 쫓아내야 할 것 같아서. 아 그러고 보니 좀 아까 어디선가 클랙션 소리가 계속 났었지. 이제야 뭔 일이 있었는지 알겠다. 엉? 근데 그때는 자동차 알람 소리도 났었는데, 곰이 잠겨있는 차를 공격한 건가? 앗!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내와 함께 차 조수석으로 몸을 구겨 들어갔다. 클랙션에서는 손을 떼지 않았지만, 곰은 그 정도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새 식탁 위로 올라가 그 위에 남아 있던 것들을 하나씩 맛보고 있었다. 먼저 기름통을 한 입 하더니 곧바로 내뱉고, 브리타 정수물통도 한번 갖고 놀더니, 그다음에 훈증식 모기향 매트를 먹고 나서는 화들짝 놀라 달아나 버렸다. 으응? 저렇게 독한 걸... 저만한 곰이 화들짝 놀라 자빠질 만한 걸 그동안 모기 쫓는데 쓰고 있었던 건가?


저 멀리 숲 속에서 아직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곰에게 욕을 한바탕 해주고는, 식탁 위 음식 흔적들을 마저 치웠다. 곰 입이 닿았던 기름과 물통은 버리기로 했다. 우리도 캐나다에서 캠핑을 다닐 만큼 다녔나 보다. 살다 살다 곰이 우리 사이트에 놀러 오는 상황을 다 겪게 되네. 이 정도 겪고 나면 당장 짐 싸서 집에 갈 생각을 해야 할 텐데, 이 정도 시그널을 받았음에도 이때까지는 캠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곰한테 지는 거라 생각했나? 아내도 나도 그냥 최대한 사이트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아래쪽 해변에 한번 갔다 와보기로 한다. 멍청하게도 번개는 같은 곳에 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미신을 곰에게 대입했다. 번개가 되었든 곰이 되었든 간에, 그들이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있는 게 아닐진대. 이 와중에도 나는 글감이 생긴 걸 좋아하고 있었던 게 들켰는지 아내에게 왜 자꾸 실실 웃고 있느냐 한 소리 듣게 되어서, 되려 "으이구 그 망할 놈의 곰 새끼 때문에 낮잠도 못 자고 이게 뭐야.." 하며 큰소리로 투덜대기도 했다.


천천히 캠핑장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빈 사이트가 무척 많았다! 죄다 해변으로 놀러 갔는가 보네. 사람들이 많이 없으니 곰이 아무래도 활개치고 다니기 좋았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빈 사이트마다 녹색 경고 티켓이 놓여있었다. 만일 음식 냄새가 나는 물품을 방치한 채 캠프 사이트를 비울 경우, 공원 관리인에게는 그 물품을 압수하고, 심하면 캠퍼들을 쫓아낼 권한이 있다. 핫핫핫. 저 사람들 사이트에 돌아오면 깜짝 놀라겠는걸, 따위의, 곰을 만나고도 살아남은 생존자의 자부심을 가지고 캠핑장 구경을 좀 더 하다가 해변으로 제법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가 보았다.


아. 오늘 3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라더니, 정말 덥다.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도저히 카약을 탈 수 있는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전날 밤의 숙취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호수에서 수영 좀 하다가 낮잠 자고 집에 갈까?" 하는 아내의 제안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일단 이 더위에 저 경사길 따라 다시 올라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수영복을 입기 위해 그걸 한번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온몸으로 부정적인 아우라를 지독하게 내뿜고 있었더니, 아내 역시 지금은 일단 잠깐 발만 담갔다가 다시 올라가잔다. 낮잠 좀 자고, 해 좀 지고 나면 다시 와보자는 말도 잊지 않는다. 미지근한 호숫물이 종아리를 간질거렸고, 강렬한 햇빛을 받아 바닥까지, 그 위 송사리까지 투명하게 보였다.




숙취에 비탈길을 따라 올라오고 나니 급허기가 왔다. 아까 그 난리를 겪고 만든 팔라펠을 어떻게든 먹어야겠다 했더니, 아내가 결사 반대한다. 곰을 또 유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정 먹고 싶으면 음식을 들고 다른 사이트에 가서 먹고 오란다. 아, 그 쪼맨한 곰 새끼, 붙으면 이길 것도 같던데...라고 허풍을 치려다가, 바로 엊그제까지 했던 쌈질에 지쳐있었던 터라 그냥 선선히 아내 말을 듣기로 한다. 그늘에 걸어놓은 해먹에 몸을 던져 일단 눈을 좀 붙여야겠다. 흔들흔들, 출렁출렁, 나뭇잎을 비비면서 선선한 바람이 흘러들어 오니 잠이 소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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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놔. 띠바. 이런 미친 곰 새...


화딱지가 나서 두꺼운 나무 기둥을 하나 집어던졌다. 곰에게 던진 건 아니고, 주변 나무에 맞춰서 큰 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래도 뭐. 클랙션에도 꿈쩍 않는 곰이 뭐 얼마나 놀라겠어. 그래도 뭔가가 자기 쪽으로 튕겨 들어오는 걸 보고 달아나긴 했다. 그게 아니면 그리웠던 식탁이 텅 비어서 에탄올 냄새만 나는 걸 확인하고 그냥 간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거기에 한시라도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낮잠 자고 일어나면 같이 수영할지도 모르겠다는 아내의 기대도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잠깐이나마 팔라펠을 꺼내 먹으려고 했던 게 아찔하다. 내가 만일 그걸 먹고 곰이 또 나타났으면 남은 평생 얼마나 구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인가?


아내가 텐트 안에서 침구류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밖에서 사주경계 및 차 내부에 빈 공간을 먼저 확보했다. 아까 급하게 정리하느라 차 안으로 정신없이 마구 쑤셔넣은 탓이다. 그런 다음 해먹도 걷고, 텐트 플라이도 걷는다. 이럴 때마다 생각이 드는 건 우린 제법 손발이 잘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위기를 겪을 때만 친해질 수 있는 부부란 과연 좋은 관계인가? 아니면 그냥 전우인가? 정신없이 짐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근데, 팔라펠처럼 호불호가 강한 음식을, 과연 곰이 좋아할까? 사람들도 극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지. 이 말을 듣고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으이그~ 쟤네들이 그렇게 취향이 확실한 애들이면 쓰레기 통을 뒤지겠어?"


캠핑장을 천천히 벗어나고 있는데 어느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모여 숲 속을 보며 냄비를 두드리고 있었다. 클랙션 소리도 아랑곳 안 하는데 냄비 가지고 될라나? 그래도 저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곰도 싫어할 것 같기는 하다. 그것도 죄다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걸 곰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괴해 보일까? 부디, 그런 기괴함 때문이라도 저 곰이 다시 캠핑장으로 내려오는 일이 없길 바란다. 취향 때문이었든지 단지 배고픔 떄문이었든지, 인간 영역으로 들어오는 걸 겁내지 않는 곰은 죽임을 당한다. 그런 게 인간의 법이다.


그러고 보니 예약할 때는 캠핑장 가장자리에 있는 사이트라서 좋아라 했었구나. 이거 뭐, 이제 무서워서 캠핑 오겠나.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속이 계속 쓰렸다. 배 고픈데 밥을 안 먹어서? 곰한테 시비 털렸는데 꼬리 말고 달아나는 것 같아서? 뭐 그런 것들도 있겠지만, 이번 캠핑을 하는데 쓴 돈이 아까운 것도 있었다. 그것도 더블 사이트라서 두 배를 냈는데 말이지. 아침에 잠이 덜 깬 채 운전하고 내려가서 떠온 물도 아깝다.


그리고,


낮에는 30도가 넘었지만, 이날 밤부터 다음날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치 한풀이하듯이.

캠핑장에서 곰을 만나는 것보다 더 짜증 나는 일은 텐트 걷을 때 폭우가 내리는 건데..

그나마 곰 덕분에 조기 철수해서 다행이었던 건가?


그 모든 시그널이 저 장대비를 경고한 거였다는 말인가? 과연?










가까운 시내 : 메이플릿지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5/5

이동통신 / 데이터 : 없음

프라이버시 : 3/5 ~ 4/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식수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4/5

RV 정화조 : 골든 이어즈 캠핑장 입구에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하지만 수압이 극도로 낮다

캠핑 사이트 크기 : 3/5 ~ 5/5

나무 우거짐 : 5/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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