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의 입장

by 엄마A


토끼와 거북이


내가 토끼띠라 그런가. 어릴 적부터 동화 속에 나오는 토끼를 좋아했다. 토끼들은 늘 귀엽고 지혜롭고 위기를 맞아도 재치 있게 넘겼다. 그런 토끼가 참 좋았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 동화 속 토끼는 유독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만만해 보이는) 거북이라고 해도, 어떻게 달리기 시합 중에 잠을 잘 생각을 하지? 다 이긴 경기인데 어떻게 그 잠깐 잠을 못 참고 자버려서 질 수가 있지? 나에게 달리기 도중 잠을 선택한 토끼는 항상 이해불가의 - 살짝은 한심해 보이는 - 캐릭터였다.


나이가 들고, 인생을 ‘레이스’에 비유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출발선부터가 다른 달리기다. 목적지가 없는 달리기다. 끝없는 나와의 싸움이다. 기타 등등.

그리고 달리고 달리다 너무 지쳐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냥 하루하루를 그저 살았을 뿐인데 턱끝까지 숨이 차도록 지쳐버린 느낌. 그냥 한 발짝 내딛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잠깐 쉬고 싶은 기분.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달리기 시합 중인데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예전의 난 끝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한걸음 한걸음 더 가야 한다는 강압에 시달렸다. 좀 더 어려서 더 열정적이 이었을 수도 있고. 좀 더 건강해서 체력이 강했을 수도 있고, 좀 덜 지쳤거나 좀 덜 상처 받았을 수도 있고 , 그리고 빨리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 난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난 더 많이 가야 한다. 난 멈추면 안된다. 1등은 못하더라도 꼴등은 할 수 없잖아! ‘


그런데 내가 너무 지쳐보니- 무엇을 위해 ,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 그래서 잠깐 쉬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너무 지친 35살의 출근길. 문득 나는 토끼가 왜 달리기 시합 중에 잠을 잤는지 알 것 같았다. 늘 달리기만 하던 토끼도 잠깐 쉬고 싶었겠지. 남들 눈엔 거북이와의 시합만 보였겠지만 , 다들 거북이에게 진 토끼를 비웃었겠지만. 토끼 입장에서 거북이한테 한번 진 게 뭐 얼마나 큰 리스크가 되겠나 싶었다. 질 수도 있지. 나보다 느리다고 생각한 사람한테 추월당하고 또다시 만나고 또 각자 다른 곳으로 가고 할 수 있지.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쉬고 싶으면 조금 쉬었다가 또다시 가면 되는 거지. 나에게도 토끼가 이해되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묵묵히 제길을 간 거북이 역시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토끼를 이겨서만이 아니라- 같이 달리는 상대가 누구든 ,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든, 본인의 길을 느리지만 결국 걸어가는 사람. 결국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가는 것이겠구나.

달리고, 지치고, 쉬어보니 새삼 느릿느릿 꾸준히 가는 거북이도, 누구보다 빨리 달리다가 잠시 낮잠을 자고 이번엔 졌지만 다시 달려 나갈 토끼도 , 모두 응원해주고 싶어 졌다.


내가 토끼든, 거북이든 지치지 말고 쉬엄쉬엄 꾸준히 가고 싶다. 살아보니 결국 인생이라는 레이스는 정해진 결승점도 1등도 꼴등도 없는 것 같다. 누군가와 산책하듯 손잡고 천천히 갈 수도 있고 잠시 쉬다가 꽃도 보고 도시락도 먹을 수 있고. 그저 내가 가는 만큼이 내가 가는 길이니까.


나는 오늘 하루하루도 너무 지치지 않을 만큼만 달리고 싶다. 내일도 또 걸아나갈 힘을 오늘 하루 안에서 충분히 충전할 수 있는 - 내일은 어디를 걸어갈까- 가 기대가 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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