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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04. 2021

“요즘은 SNS가 제일 문제더라고.”

A와의 삼겹살에 소주

“요즘은 SNS가 제일 문제더라고.”



A는 비어있는 내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무슨 문제?”

“이 세상엔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냐?”

“아, 또 그 얘기?”

나는 익숙한 이야기에 고개를 저으며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너는 억울한 기분 안 드냐? 우리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귀가 닳도록 말했잖아.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 가라. 성공해라.”

“K대 박사 정도면 억울함이 아니라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거 아냐?”

“K대 나와서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너도 졸업식 날 봤잖아. 매해 우리 학교 박사만 해도 그렇게 잔뜩 쏟아져 나오는데. 그 흔한 사람 되려고 서른다섯까지 공부만 하는 거야?”

“흔하긴 뭐가 흔해. 너 앞으로 평생 굶어 죽을 일 없을 텐데. 취직이 안 되면 하다못해 박사 학위로 학원 강사라도 하면 되잖아.”

“내 20대는 누가 보상해주는데? 놀지도 못하고 공부 죽어라 해 놨더니, 나이도 잔뜩 먹은 인제 와서 박사 자격증 덜렁 하나 갖고 사회에 뛰어들라 등 떠밀어. 난 이렇게 공부하면 한 100억은 벌 줄 알았어. 근데 정작 돈은 우리같이 공부한 사람들을 부리는 놈이 만지더라고.

“난 이렇게 공부하면 한 100억은 벌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게 너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원인이야? K대 박사가 너무 많은 거? 100억을 못 버는 거? 어릴 때 못 논거?”

“아니. 나를 우리 학교 박사들과 비교하자면 솔직히 자신 있어. 나도 꽤 노력해서 대학 생활을 썩 잘 마쳤으니까. 문제는 어릴 때 나보다 실컷 놀아 놓고 지금 훨씬 더 잘 사는 내 친구들이야. 요즘은 분해서 잠을 설칠 정도라니까.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항상 하는 일이 생겼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엄지로 휙휙 넘기며 프로필이 업데이트 된 친구들을 보는 거야. 넘기다 보면 분명 초등학생 때는 공부에 손도 안 댔던 애들이 양복에 외제 차 타고 엄청 잘 살더라고. 몇몇은 결혼도 했는데, 신혼여행을 스위스로 갔어. 누구는 무슨 인터넷 쇼핑몰 일을 시작해서 돈도 잘 버나 봐. 그런 애들을 보면 내 기분은 심해 저 밑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조개껍데기가 된 듯 푹 가라앉아. 나는 왜 공부를 한 거지? 나는 왜 벌써 서른이지? 나는 왜 통장에 이십만 원 뿐이지?


그 친구들도 다른 형태의 노력을 통해 그 자리에 도달했을거라 생각하는데. 그리고 누구든 SNS에서는 다 잘 사는 척하려고 노력해. 나만 해도 봐라. 차도 없으면서 카카오톡에는 운전중인 사진을 프로필로 걸어놨잖아.”

“무슨 ‘척’ 하는 것도 자기 급에 따라 범주가 나뉘지. 내가 지금 벤츠 타는 ‘척’을 할 순 없잖아?”

“걔들은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벤츠를 샀는데?”

“둘 중에 하나지. 부모님이 부자거나, 잘생기고 예뻐서 SNS 좀 하다 보니 협찬도 모델 일도 들어오고 해서 쇼핑몰을 차렸거나.”

나는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키고는 술잔을 비웠다.

“내가 지금 걔들처럼, 벤츠 타는 ‘척’을 할 순 없잖아?”



“나도 알지. 나 역시 내 수준에 맞는 최선의 노력을 한 거고, 지금 내 상황이 그 결과로 만들어진 꽤 우수한 삶이란 걸. 이렇게 푸념한다고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 근데 이런 걸 안다고 아쉽고 부러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내 인생에 단 한 순간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일 수 있다면 좋겠어. 나는 그런 사람들의 삶이 너무너무 부러워. 그리고 치가 떨릴 만큼 억울해. 부익부 빈익빈이라잖아? 끼리끼리 만나서 부가 세습된다는 건 심리학 실험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고. 자본주의가 탄탄해질수록 나 같은 사람은 성공과 멀어지는 거야.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말은 우릴 부려먹으려는 돈 많은 윗대가리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너는 공부를 왜 하는 거냐? 신분 세탁하려고?”

“아니. 이젠 잘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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