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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30. 2022

1. (편지) 어둠

: 첫번째 편지 - Dear 내 안의 별아 

안녕. 


있잖아, 사실 첫 번째로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많이 고민했어.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과 영원히 내 품에 두고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면서 계속 머뭇거렸어. 하지만, 아무래도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내지 않고서는 나는 평생 그 어떤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아.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어 무겁게 내려앉은 먼지를 턴다. 

써야만 했던 편지를 이제야 보내. 


Photo by Mark Tegethoff on Unsplash



별아,

십 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네 태명을 조심스럽게 허공에 부르고 나서,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결국 또 밀물이 밀려오고 만다.


삼 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너는 내 안에 살다 갔지만, 나는 꽤 오래도록  네가 떠난 그 텅 빈 집에 머물고 있었어.

네가 떠나던 그 밤, 내 집은 한번 부서졌어. 

두 다리 사이로 네가 철철 흘러내리던 때, 화장실 바닥에 혼자 주저 앉아 어쩔 줄 모르고 내 손으로 물컹거리는 핏덩어리를 하나하나 받아낼 때, 

나는 얼마나 내 몸을 잔뜩 웅크려 내 모든 구멍을 막아버리고 싶었는지 몰라. 

내가 온전한 집이길, 그래서 아무것도 잃지 않아도 되길, 어떤 구멍도 흠도 없는 온전한 동그라미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모두 산산이 부서졌지.


오래도록 나는 스스로를 원망했었어.  

네가 떠나기 몇 주 전부터 피가 비치고 움직일 때마다 아랫배가 아팠지만 빠듯한 프로젝트 스케줄에 회사 눈치를 보느라 몇 주 내내 오히려 야근까지 했어. 그러면 차라리 그냥 맘이라도 편하게 먹을걸. 밤마다 잠도 안 자고 인터넷을 뒤지며 절박유산, 계류유산.... 온갖 정보를 읽어보며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다 받고 있었지. 

나 누워있어야 하는데....이렇게 일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만 하면서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또 유난 떤다고 할까 봐 누구에게도 나누지 못했어. 남들에겐 관대하면서 정작 너와 나는 챙기지 못하고.. 내가 다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다가 허망하게 소중한 너를 잃었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을까. 


큰 회사에서 화려한 프로젝트만 맡으면서 치열하게 눈에 보이는 성공만 고집하다가 모두 던지고 돌아온 건, 지금 이렇게 ‘집’이라는 소박한 공간에 천착하게 된 건..... 처음엔 속죄의 마음이었을거야.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때 부서진 내 마음의 집을 고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일지도 몰라.

.

.

.

네가 떠나고 깨끗이 텅 비어진 그 자리에 결국 시간이 지나가. 바람이 불고 햇빛이 들어.


엄마는 다시 천천히 집을 지어.


너를 지키지 못했던 나를 원망하는 마음.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오랜 흉터 같은 슬픔.

그 어둠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미워하던 어린 소녀였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남에게 인정받기를, 사랑받기만을 기다리던 어린 소녀가 아직 거기에 웅크리고 있었어. 

오랫동안 너를 보내지 못했던 건....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과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둘 다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용서하기엔 아직도 과거는 나에게 매 순간 생생하게 계속되는 현재였으니까. 

놓는 순간 나도, 너도 잊혀질까봐 적어도 나는 계속 기억하고, 분노하고, 속죄하고 끝없이 애도하면서 받을 수 없는 용서를, 사과를 기다려야만 했어. 사실 그건 어둠 속에서 홀로 너무 외로웠던 그 아이가 결국은 끝내 사랑받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이제 나는 어둠 속 웅크린 그 아이를 조심스레 안아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불완전한 구멍이어도 괜찮다고 말해줘.

바람 부는 벌판, 빈 모습 그대로 너는 온전한 집이라고. 


별아, 그곳은 어떠니. 따뜻하니. 

내게 와줘서 고마워. 정말 보고 싶었어. 

사랑해. 부서지고 찢긴 우리 모습 이대로.




 

나누고 싶은 것: 

Jóhann Jóhannsson – 'Flight From The City' from Orphée

(출처: YouTube Channel, 'Deutsche Grammophon - DG')

https://youtu.be/AlftMNmDH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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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공간 이야기: '어둠, 기도의 공간' 이야기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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