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그 일곱 번째 이야기
2015년 8월 1일, 나는 사막마라톤 완주를 위한 첫 훈련을 시작했다. 덥고 습했지만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로 기억한다. 들고 온 선글라스를 다시 집에 두고 나가느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렸기 때문이다. 난 통풍이 잘 되는 짧은 운동복을 입고 가벼운 검은색 캡 모자를 쓴 채, 몸을 풀 겸 약간 빠른 걸음으로 양재천으로 향했다. 2년 전에 산 러닝화는 낡아서 새로 살 때가 되었지만, 발이 편하다는 이유로 마라톤 전까지 계속 신기로 한 상태였다. 어차피 백수가 되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동네를 빠져나오며 길가 카페 통유리창을 보았더니 가무잡잡한 모습이 이미 혹서기 지옥훈련을 마친 마라토너의 그것과 비슷하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토시를 두르는 등 신경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알프스의 뜨거운 햇빛 아래 하루 10시간씩 걸으면서 피부가 다 타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7월 초 귀국한 직후에는 심지어 불쌍해 보였을 정도니 지금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당시 지인들은 약속 장소에 나타난 새카맣고 비쩍 마른 히말라야 포터에 혀를 끌끌 차곤 했다. 나는 모험을 마치고 귀국한 내 모습이 굉장히 건강하고 '남자다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덕분인지 귀국 후 가족과 친구들의 동정심 어린 눈빛 속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3주 만에 줄었던 체중과 체력을 거의 회복할 수 있었다.
10분도 안 되어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알프스에서는 주로 산만 탔지 평지 달리기는 영 오랜만이었다. 양재천 산책로를 천천히 뛰기 시작하자, 흘린 땀이 바람에 식어 조금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산책하는 사람들을 스치며 점점 속력을 높였다. 그러면서 아타카마 사막을 달리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보려 했다.
아타카마 크로싱(Atacama Crossing),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 내가 무사히 완주해야 하는 사막마라톤 대회다. 매년 10월경 남미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Desierto de Atacama)에서 열리며, 고비 마치(Gobi March/중국 고비 사막), 사하라 레이스(Sahara Race/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및 라스트 데저트(The Last Desert/남극)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4대 사막마라톤 시리즈(4 Deserts Series)'에 속한다.
사진 출처는 모두 4 Deserts 공식 홈페이지 (http://www.4deserts.com)
4대 사막마라톤 대회는 세계적인 어드벤처 레이스 전문 회사인 '포데저츠(4 Deserts)'가 주최하는 울트라마라톤(ultramarathon)으로, 모든 참가 선수는 정해진 코스에 따라 6박 7일 동안 총 250km를 완주해야 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일반 마라톤처럼 맨 몸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간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배낭에 매고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일주일간 먹을 개인 식량은 물론, 침낭과 매트리스, 각종 의류, 모자, 장갑, 물통, 헤드랜턴, 의약품 등이 모두 포함된다. 주최 측이 마련하는 마실 물과 천막, 캠프파이어 외에는 어떠한 외부 지원도 금지된다. 내가 달려야 하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은 기상 관측 사상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지역이 있을 정도로 건조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불리는 곳. 그러한 사막에서 이루어지는 초장거리 마라톤이 어떨지 나로서는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처음 250km 사막마라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상상한 것은, 국도변을 따라 서울에서 대구까지 헐레벌떡 뛰어가는 베어 그릴스(Bear Grylls/영국 출신의 모험가 겸 생존 전문가) 모습이었다. 물론 아무리 대구가 덥다고 해도 아타카마 사막이랑 비교한 것은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는 것을 대회 당일 깨달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사막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냥 마라톤도 힘든데, 그 더운 사막에서 달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내게 '꽝꽝 얼린 물병을 들고 가서 틈날 때마다 머리를 식혀라'는 매우 유용한(?) 조언까지 해주었다. 사막마라톤 같은 극기 레이스(endurance race)는, 자신의 체력적 한계에 도전하는 만큼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 강조하는 유의사항을 잘 지키고 항상 주의한다면, 위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목숨을 걸어야 할 대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사한 결과 이미 한국에서만 수백 명이 참가해 상당수 완주를 한 대회들이고, 참가 후기를 보니 이 중에는 놀랍게도 마라톤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사람이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재빠른 조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긴 하다. 4대 사막마라톤 시리즈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Desert Runners>를 보면, 2010년도 고비 대회(Gobi March) 당시 주로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후 끝내 사망한 30대 미국인 참가자에 대해 나온다. 참가를 결정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본 영화라 그런지, 불의의 사고가 내게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인(故人)이 당초 체력적으로 준비되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극한의 사막에서는 나를 포함한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동시에 들었다. 그러므로 철저한 체력 훈련은 사막마라톤 완주를 통한 '프로젝트의 성공'뿐 아니라, 나의 무사귀환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했다. 다만 내가 조금 안심할 수 있었던 사실은 내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운동을 해 온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2개월이라는 다소 짧은 훈련 기간을 정한 것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파타고니아에서 이를 크게 후회했지만. (다음 대회인 사하라 레이스가 2016년 5월에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기도 했다.)
사막마라톤 완주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마라톤에 대해서는 남들에 비해 경험이 좀 있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2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고, 직장 다니는 동안에도 시간을 쪼개 마라톤을 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유난히 전쟁 같았던 직장 생활이 큰 기여를 했다. 업무에 찌들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견디다 못해 시작한 달리기가, 건강 유지와 스트레스 해소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학생 때보다 물리적인 여가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짬을 내서 하는 운동은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의 유일한 돌파구가 되어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근 속에서도 나는 최소 일주일에 2-3회씩 꾸준히 달리기와 웨이트 등의 운동을 했고, 주말마다 동기 SW와 함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며 달리기 실력을 향상시켜나갔다. 그 결과 10km 코스를 넘어 하프코스에 도전하고, 가을에는 대망의 풀코스(42.195km)까지 제한시간 내로 완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비록 초라한 기록이지만 직장 다니면서 약 반 년만에 이루어낸 성과에 참 뿌듯해했던 기억이 난다. 또 도로를 달리는 일반 로드러닝(road running)뿐만 아니라, 산과 숲에 난 비포장길(trail)을 달리는 트레일러닝(trail running)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삭막한 도시의 아스팔트보다는 숲 속을 달리는 것이 더 좋았고, 평지만 계속되는 로드러닝에 비해 오르막·내리막이 있는 트레일러닝이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아예 주법까지 바꿨는데, 이를 통해 마라톤 풀코스 때 나타난 무릎 통증을 방지할 수 있게 되는 효과까지 있었다.
가벼운 10km 러닝을 통해 가볍게 몸을 푼 나는, 집에 돌아와 훈련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매달려 있는 완주 메달에서 보듯이, 달리기에 기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히 잘 한다고는 볼 수 없었다. 나의 가장 좋은 하프마라톤 기록(1시간 43분)의 경우, 일반적인 아마추어 남자 평균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고, 마지막에 거의 걷다시피 한 풀코스의 경우는 완주 기록을 차마 밝힐 수 없을 정도다. 연습한답시고 무작정 내키는 대로 달리기만 했지 어떤 전문적인 방법을 가지고 훈련해본 적도 없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사막마라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종목이고, 총 거리 250km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직선거리 240km)에 가깝다. 1회 완주에도 일주일 넘게 그 여파에 시달렸던 풀코스 마라톤을 일주일 동안 매일 달린다고 생각해보니 힘이 쭉 빠졌다. 사막마라톤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제껏 없던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중요한 것은 순위가 아닌 완주 여부였다. 무엇보다 250km나 되는 장거리를 무리 없이 달릴 수(혹은 걸을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서는 절대적인 훈련량(거리)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흔히 250km를 무사히 완주하려면 한 달 내로 최소 같은 거리를 뛰어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긴 300km를 8월 내에 채우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사실 하루 10km씩 달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리 긴 거리는 아니었다. 다만 격일로 하더라도 하루에 최대한 많은 거리를 한 번에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평일 주 3일(월·수·금)만 달리기를 하되 한 번에 20km(약 2시간)씩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또 마라톤의 대표적인 훈련법 중 하나인 LSD(Long Slow Distance/장거리를 천천히 오래 달리는 훈련법)를 위해, 주말 하루는 꼭 30km 이상 뛰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체력 소모가 많겠지만 장거리 훈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훈련이기 때문다. 두 번째는 폐활량과 민첩성을 기르는 산악훈련 및 트레일러닝 훈련. 도로가 아닌 모래 위에서 뛰고 언덕을 오르내릴 사막마라톤을 위해서는 빠질 수 없는 훈련들이었다. 그래서 러닝을 하지 않는 화·목에는 짧은 등산 혹은 1시간 이내의 트레일러닝을 넣어, 지루할 수 있는 달리기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물론 이미 운동량이 많기 때문에, 정규 훈련(3일)의 목표 거리를 채운다는 전제 하에, 너무 계획에 얽매이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2주 차가 끝나는 8월 15일, 일종의 중간점검으로서 지리산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기념 '화대종주 산악마라톤(47km)' 참가를 미리 신청해두었다.
월요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더운 날씨를 고려해 훈련 시간대를 늦은 오후로 잡았다. 훈련 장소는 내가 평소 즐겨 달리는 양재천에서 출발, 탄천을 거쳐 한강까지 갔다 돌아오는 코스였다. 보통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를 반환점 삼아 양재천으로 돌아오면 딱 20km 정도였다. 오랜만에 하는 달리기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려 완주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바로 근육통이 찾아왔다. 알프스에서 돌아온지 3주 만에 다시 몸이 '운동 안 하는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초반일수록 게을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뛰러 다시 집을 나섰다. 화요일은 수서부터 시작해 대모산·구룡산을 거쳐 양재까지는 가는 서울 둘레길(대모산 구간) 10km를 뛰었고, 수요일에 다시 한강으로 나가 20km를 뛰었다. 예상대로 사흘 만에 온 몸이 욱신거렸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그렇게 훈련 첫 주 3일 동안 연달아 50km 정도를 뛰어보니, 조금 피곤한 것 외에는 몸에 심각한 무리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회사 다닐 때 열심히 했던 마라톤의 느낌을 몸이 기억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알프스에서 수도 없이 산을 오르면서 나의 폐활량과 지구력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우리 몸은 고통받은 만큼 성장한다. 물론 그 정도가 지나쳐 '혹사'가 되면 안 되겠지만.
목요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청계산을 천천히 올랐다. 다리 근육의 얼얼함이 오히려 기분 좋아,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정상에 갔다. 그날 점심 하산하고 혼자서 밥을 먹는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토요일 첫 LSD 훈련 대신, 그다음 주에 달릴 지리산 화대종주 산악마라톤을 미리 연습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알프스에서 썼던 버너와 코펠을 챙기고 약간의 음식을 준비해 전남 구례로 내려갔다. 정말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훈련방법 변경이었다. 참고로 지리산 화대종주란 구례 화엄사에서 출발해 지리산 천왕봉을 거쳐 산청 대원사까지 주파하는 코스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종주 코스에 속한다. 금요일 새벽 2시, 나는 혼자 어둠 속에 잠긴 화엄사를 출발했다.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습인 만큼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한밤중 지리산 숲 속은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반달곰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생각에 가끔 주위를 불안하게 두리번거렸다.
끝이 없는 오르막길을 올라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고 나니, 그제야 일반 등산객들이 보였다. 그날 점심 무렵 미리 예약한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고, 가지고 온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가지고 온 책 <Wild(와일드)>를 읽었다. 혼자서 미국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PCT)' 4,300km를 걸은 여성의 실화였다. 저물어가는 지리산 산장의 오후를 원서를 읽으며 보내다니, 굉장히 낭만적인 시간임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험난한 길을 걸어서 삶의 아픔을 치유받고자 했던 주인공의 이야기에 참 많이 공감했다. 나 역시 퇴사 후 알프스부터 시작해 '행복'을 찾아 끝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아타카마에 가면 행복이 있을까?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반추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Wild>의 실제 주인공인 작가에게 '용사'의 타이틀을 수여했다. 그리고 내 버킷리스트에 PCT를 추가한 후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산장을 출발해 정상까지 가는 바위길을 올랐다. 정상인 천왕봉(1,915m)에서 멋진 일출을 맞이하고 약 3시간 만에 대원사에 내려오니 아침 10시. 계산해보니 첫날 10시간, 둘째 날 6시간으로 총 16시간 정도 소요된 듯했다. 화대종주의 악명에 조금 겁먹었었는데, 이 정도면 실제 산악마라톤 대회도 제한시간(14시간) 내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틀 간에 걸친 충동적인 지리산 전지훈련 45km은 첫 LSD 훈련을 대체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꿀맛 같은 일요일 휴식 후, 월요일부터 2주 차 훈련이 계속되었다. 사실 지리산 종주산행의 여파가 하루로는 가시질 않아 저녁이 돼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8월은 다행히 흐린 날이 많았는데, 해가 없어도 한여름 습기와 무더위는 여전히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10km만 달려도 옷이 완전히 젖어버렸고, 온몸이 무거워졌다.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기도 해서, 계속되는 갈증에 가지고 다니는 500ml짜리 작은 생수병은 항상 모자랐다. 화요일에는 서울 둘레길을 달렸고 수·목요일도 정해진 계획에 따라 훈련했다. 그리고 금요일 밤, 일주일 전 연습한 지리산 화대종주 산악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다시 구례로 향했다. 출발지인 화엄사에 가 보니 각지에서 찾아온 수백 명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데, 저마다 고수의 분위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특히 참가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40-50대의 중장년층 선수들은 작은 키에도 불구, 단단하고 마른 몸집으로 '산 좀 타시는' 풍모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프스에서 살아 돌아온 '용사'였다. 퇴사 후 알프스를 거쳐 8월 마라톤 훈련까지, 정신적·신체적으로 강해진 스스로를 격려하며, 첫 화대종주 마라톤 또한 부상 없이 완주해내리라고 다짐했다.
새벽 2시, 출발 신호와 함께 대회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코스는 노고단 고개(1,440m)까지 가는 엄청난 오르막길. 처음 출발하는 화엄사의 고도가 300m 정도로, 한 번에 약 1,100m를 올라야 하는 난코스였다. 보통 지리산 종주는 성삼재(1,102m)까지 차를 타고 올라와서 시작하기 때문에, 화대종주 말고 이 정도 오르막을 오를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워낙 오르막 일변도다 보니 처음에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선수들의 발걸음도 30분 만에 대폭 느려졌다. 나 역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땀을 뻘뻘 흘렸고, 혀가 입 밖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알프스에서 2,900m짜리 고개를 두 번이나 올랐던 '흑역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오로지 앞만 보고 내 앞의 경사를 한 발 한 발 밟아나갔다. 그 결과 산을 오른지 1시간 30분 만에 노고단을 통과했고, 이후 삼도봉(1,500m)까지도 꽤 빠른 속도로 주파할 수 있었다. 삼도봉에서 바라보니 새벽 어스름 속에 후발주자들의 헤드랜턴이 장관을 이루는 것이 인상 깊었다. 화개재(1,316m)를 지나 토끼봉(1,534m)을 가면서 일출이 시작되었지만, 난 레이스에 집중하느라 아무 생각 없이 헉헉대며 산을 내달렸다. 형제봉(1,442m)에서 아름다운 아침해를 보며 한숨 돌린 후, 비교적 잘 정비된 트레일을 빠르게 따라 도착한 연하천 대피소(1,518m). 여기서 가져온 빵과 초콜릿바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식수를 채우려는데, 기다리는 선수들이 많아서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초콜릿바를 입 안에 욱여넣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침 7시, 해가 완전히 떴을 때 벽소령 대피소(1,340m)에 도착하고 나니 밤을 새워서 달린 피로가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을 채우며 거리를 확인하니 약 22km 지점으로,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다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가파르고 재미없는 돌길만이 이어졌다. 중등산화라면 문제없었겠지만 밑창이 얇은 트레일러닝화라 그런지 금방 발에 피로가 가서 힘들었다. 다음 대피소인 세석 대피소(1,590m)까지 약 6km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너무나 지쳤는데 아직 반 정도밖에 안 왔다는 사실에 급속도로 힘이 빠졌고 잠을 못 자서 졸리기까지 했다.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속보로 걸어가기만 하는데도 강렬한 햇빛에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일주일 전 연습 때와 별 차이 없이 2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세석에서 이온음료를 하나 사서 한동안 뻗어있어야 했다. 사막마라톤 할 때는 이런 것도 못 사 마실 텐데... 시간은 벌써 아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리산 산속을 달린지 무려 8시간째. 12시까지 정상인 천왕봉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인데, 느려진 속도로는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 스퍼트를 내어 300m를 미친 듯이 올랐고, 다행히 계획대로 12시에 천왕봉(1,915m)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지리산은 호락호락하게 나를 보내지는 않았다. 천왕봉 다음에도 중봉(1,875m)과 써리봉(1,604m) 등 가파른 경사의 봉우리를 넘나들어야 했고, 이후 지루하게 이어지는 화강암 돌길은 발과 다리를 고통스럽게 했다. 잠도 없이 10시간을 달리고 나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종종 위험하게 비틀거리기도 했다. 중간쯤 하산했을 때는 길이 계곡 옆으로 나있어서 그런지 물에 젖은 바위가 매우 거슬렸다. 또 이런 바위만 계속 밟고 내려오다 보니, 온몸을 울리는 충격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히말라야와 알프스를 겪은 나였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지리산의 돌길에는 정말 혀를 내둘렀던 것 같다. 심지어 하산길이 노고단 가는 오르막길처럼 내리막길 일색이었기 때문에 서서히 무릎 부상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앞으로의 훈련에 지장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 그냥 걷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치밭목 대피소(1,444m)를 지나 대원사(약 300m)까지 1,100m를 내려가는 동안 거의 50명 넘게 나를 앞질러 가고 말았다. 하지만 레이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나에게는 사막마라톤이라는 더 큰 목표가 있는 만큼, 다른 선수와의 쓸데없는 경쟁은 피해야만 했다. 발 디딜 스텝을 찾느라 눈까지 아플 정도였던 지루한 내리막길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제한시간을 30분 정도 남긴 오후 3시 반, 나는 결승선을 통과해 13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마라톤을 마칠 수 있었다.
연재 순서
제 1편. 네팔과의 첫 인연 : '달밭킬러'가 된 해외봉사단원
제 2편. 히말라야 트레킹 도전기 : 에베레스트와 고추장아찌
제 6편.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의 탄생
제 7편. 사막마라톤 훈련기 : 양재천에서 천왕봉까지
제 8편.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리는 청년'이 되기 위해
제 9편. 사막마라톤 전초전 : 바람의 땅 남미 파타고니아
제 10편.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도전기 : 죽음의 계곡
제 11편.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도전기 : 악마의 발톱
제 12편.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도전기 : 소금달의 별빛
제 13편. 사막마라톤 그 후 : 다시 '너머스떼(नमस्ते)'
에필로그 : 끝나지 않은 레이스
■ <용사의 탄생>의 '서브 연재물'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시리즈는 2010년도 해외봉사단원으로 네팔에서 활동했던 제가, 2015년 직장 퇴사 후 네팔 지진 피해 지원 후원금 마련을 위해 칠레 아타카마 사막마라톤에 도전한 소셜펀딩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지난 이야기들을 구경해보세요.
https://www.facebook.com/imgoing2nepal
■ 2015년 8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과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의 진솔한 이야기를 유튜브 영상으로 먼저 확인해보세요. https://youtu.be/ntiof25Z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