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우연히 다꾸를 하게 된 건 내 고질병의 각막 손상으로 책을 못 읽게 되던 2020년 9월 말. 그때 나는 한창 켈리 최의 독서 챌린지를 하고 있었다. 각막의 상처 때문에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눈을 집중해서 하는 모든 일 들은 모조리 할 수 없었다. 왜 나만 이래야 하지 하며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삶의 재미마저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이러한 생활이 무료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무렵, 우리 집 한 켠에 있던 잡지와 포장지 그리고 스티커가 새롭게 보였다. 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의 빈 다이어리를 꾸몄다.
처음 다이어리를 꾸밀 때는 단순하고 만만한 작업으로만 느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이건 예술이구나 싶었다. 어느 날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세 시간 이상 걸렸고, 어느 날은 한 시간에도 세네 작품을 할 수 있었다.
빈티지다꾸는 한낱 다이어리 꾸미기가 아니라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들, 내 딸들을 양육했던 추억들, 필사하고 노트를 꾸미고 낭독했던 그러한 오감이 공존하면서 빈티지와 미술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엮어진 듯했다. 그로 인해 나도 알지 못했던 내 안의 거인이 꺼내졌다.
다꾸는 나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조화와 융합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니 집 안의 모든 재료들이 나에게는 귀중한 소재가 되었다. 재료가 풍성할수록 작품은 깊은 맛이 나왔다. 그러나 재료가 풍성하다고 무조건 좋은 작품이 나오지는 않았다. 우리 삶에서 균형이 중요하듯 이것 또한 발란스가 잘 맞을 때 그 빛을 발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한 두 작품씩 꾸준히 하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위로받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곧 마음치유였다.
그 해 겨울 트렁크 하나를 다꾸용품으로 채워 한국에 갔다. 덕분에 지루할 뻔했던 격리가 다꾸에 몰입하는 충분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기대도 안 했던 서포터즈에 뽑혀 협찬받으며 할 수 있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그 과정들 속에서 내 작품뿐 아니라 남의 작품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나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견해가 어떠한 지 묵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참신하게 꾸미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려고 무던히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제품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까지도 깊어져만 가게 되는 건 덤이었다.
오늘도 나는 꾸준히 빈티지 다꾸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고 시도해 본다. 이곳이 한국이 아니기에 지속적으로 협찬받기는 쉽지 않다. 또 나에게 어떤 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선은 열심히 해보고 싶다. 빈티지 다꾸는 내가 사랑하는 일이고 나의 마음을 치유하여 내가 좀 더 성숙하게 무르익게 도와주는 행위이다.
오늘도 여전히 필사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융합한다. 낭독하는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다꾸를 아직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내게는 힐링이고 내 꿈을 찾아가는 매개체임은 틀림없다. 어른이 되어도 소녀스런 감성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내 안의 어린 자아를 매만져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과정 중에 하나라 여겨진다. 다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동지들과 자아를 찾아 떠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