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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Mar 15. 2020

[에세이 92] 울지 말고 일어나 빰빠밤

Ong namo guru dev namo.. 힘을 주세요..

지난 일상 속에서 어떤 소중한 순간들이 기억에 남나요?


미셸의 질문을 받고 사실 대략 난감했다. 

2월 말부터 시작된 재택근무와 동시에 업무와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 이후부터는 업무-잠, 업무-잠만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 ㅏ...또? (탈주해)


무리 없이 진행되리라고 생각했던 프로젝트는 설마 설마 했던 한 순간의 생각과 동시에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 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가라앉는 배를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팀원들과 함께 퍼내도 퍼내도 끝이 안 보이는 물을 열심히 퍼내고 있었다. (젠장... 진짜 살고 싶다. 지금도)


어.. 이건 아닌 것 같아..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행복 회로를 돌려보아도 바닥난 내 인내심은 더 이상 핑크빛 필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매 프로젝트마다 보이는 구조적인 문제와 아무리 취미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어도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는 사실이 이제는 더 이상 기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더 무서운 건 아무리 힘들어도 일 할 수 있는 동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현재 직장을 선택하게 된 기준이 더 이상 나에게 메리트가 없다고 느껴져 나같이 귀차니즘과 도전정신이 부족한 사람이 언젠간 할 수 있을까(언젠가 해야겠지..?)라고 생각했던 이직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는 악에 받치면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디자인을 하는건지 논설문을 작성하는건지 아무리 논리가 중요한 분야라고 해도 이건 이래서 저렇고 저건 저래서 저렇고 한달 내내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으니 원래 틀어져 있던 골반부터 시작해서 주말에는 열감기까지(이..시국에..?)몸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야 알 것 같다. 항상 몸이 아프면 스스로를 이해시키려 했던 마지막 노력도 허사가 된다는걸.


응 진짜.. 그럴 것 같아요. 7시 퇴근만 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서론이 길었다. 

이번 에세이에는 정말 행복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데 매번 비슷한 감정의 글만 싣는 것 같아 참 아쉽다. 이래뵈도 즐거울 땐 참 즐거운 사람인데 정말 행복한 일은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진짜 진짜 없을까.. 정말로..? 리얼뤼?!


물론 소중한 일상이 모두 극적으로 즐겁다거나 유쾌한 일이여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이번글에는 즐거움이 뿜뿜 묻어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었다. 그래도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 그나마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했던 점들이 몇 개 있긴 하다. 


첫 번째. 이 힘듦이 나의 주말까지 침투하면 안 된다며 다급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누르며 아이맥 전원을 켜지 않으려 했던 점이다. 평소 같으면 주말마다 일했다. 나에게 이런 마음을 참는 일은 개인적으로 저엉말 크나큰 발전이다. 성격이 급한 것도 있고 프로걱정러에 애매한건 못보는 성격이라 문제가 발생하면 돌격!앞으로 행동을 먼저 보여주는데 이번에는 많이 꾸역꾸역 참았다. 대신에 그냥 못본 체를 하려니 이건 너무 힘들어서 월요일날 해야하는 일의 리스트업을 작성하고 혼자서 해결 가능한 것, 팀원들에게 공유해야 하는 것, 급한 업무등 일의 카테고리와 우선순위를 나눠놓았다. 리스트업만 해놓고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했다. 평생동안 일해야 하는데 매주 주말마다 이럴 순 없잖아?!라고 나름대로 합당한 근거를 들먹이며 스스로를 설득키시려 노력했다.

(추가: 이 글을 수정하는 일요일 오후 결국 일을 하고 있긴하다. 제엔장 일요일날 컨콜이라니 ㅠㅠ)


두 번째. 차근차근 언제나 지혜롭게 그렇게 해결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느리게 커피를 내렸던 일이다. 맛있는 커피를 먹는일은 언제나 즐겁지만 사실 커피를 내리는 일은 귀찮은 일이다. 원두를 계량하고 그라인더를 꺼내 팔이 아파질만큼 돌리고 뜨거운 물을 끓여서 주전자에 옮겨담은 다음 한 바퀴 돌고..기다리고..한 바퀴 돌고.. 기다리고..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위해 사용했던 도구들을 다시 돌려담고 설거지까지.. 결코 만만찮은 루틴이긴 하지만 토요일 오전 고정시간대에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만들려 노력했었다. 폭풍같은 주중을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 아침에는 일부러라도 무념무상으로 커피를 내리고 이번 주말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알차게 보낼지 고민했었다.


세 번째. 평일 내내 굳어있던 몸을 움직이고 싶어 직접 장을 봐와서 아침이고 저녁이고 가족들 식사를 요리했던 점이다. 하루 종일 12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이대로 굳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결제한 베이킹 클래스는 한 동안 코로나 때문에 가기 어려워졌고 덕분에 주말 동안 평소 하고 싶었던 요리를 직접 장을 봐와서 음식을 만들었다. 사람마다 각각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있겠지만 역시나 나는 손끝의 자극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제일 좋다! 뭐..스스로는 나름 맛이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은 어떴을런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 때문에 맛있는거 많이 먹었다구.


네 번째. 오랜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강아지와 함께 빈야사를 수련했던 일...요가 중에 제일 좋아하는 빈야사(반복되는 동작이 너무 시원하다)를 제일 좋아하는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수련하노라면 그 다음 샤워하고 마시는 맥주가 정말 맛있다(응?) 정말 신기한 점은 우리 집 강아지는 요가 매트만 깔면 좋다고 달려와서 운동하는 나를 뻔히 쳐다보다가 견자세의 정석을 보여주곤 한다. 진짜 선생님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견자세를 보여준다

(꿈이 만세!)


마지막. 디자이너 친구들이 모인 단톡 방에 고통을 토로하기(토로하고 공감받자!) 진짜 세상 단합심 진짜 힙해. 대화방에 '아... 술' 달랑한 줄 남겨도 눈치가 이 세상 누구보다 빠르다. 이러쿵저러쿵 초반 분노의 타자질은 그녀 또는 그의 위로와 함께 마지막에는 실없는 농담을 쳐내는 타자로 변해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소소한 작은 꿈 하나가 생겼는데 바로 디자이너들끼리 주말 요가 수련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토요일 오전에 함께 모여 요가를 수련하고 매우 헬시 하게 브런치를 먹으며(평소엔 술이니까..) 그 주의 서로의 고통을 들어주며(오ㅐ..!!? C 안이 셀렉된건데) 하하호호 우리 서로 업계에서 오래오래 버티자며^^ 응원해주는 요가 수련 모임 말이다.



벌써 2020년의 3월이다. 3월의 폭풍이 제발 끝나고 4월은 평화롭게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회사에는 적당히 충성해야지!)


Ong namo guru dev namo

Ong namo guru dev namo

지혜를 주세요.. 힘을 주세요..제발..plz..



다음 타자 지원님에게 질문합니다.

보통의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에세이 91]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움직이는 힘

https://brunch.co.kr/@visionary0115/109


[에세이 90] 혹시 한 주 동안, 계획 밖에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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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89] 5년 전에 생각하고 기대한 자신의 모습과 지금은 얼마나 가까워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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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88]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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