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하는 방법은 왜 이렇게도 많은 걸까
가을이니깐 은빛 갈대를 보러 순천만 습지에 갔다. 아직 갈대꽃이 피질 않아서 노란 물결이어서 아쉬웠다. 이번에도 실패. 순천만에 3~4번 정도 왔는데 절경이구나 싶은 시기에 맞춰 온 적이 없다. 자연은 어려운 것.
딸이 생태 체험관에 꼭 가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서 나오는 길에 처음으로 들어가 봤다. 천문대와 갯벌 생태계를 설명하는 곳으로 나눠져 있었다. 찬 바람에 굳은 몸을 녹이면서 가볍게 구경하기 좋은 곳이었다.
순천만 습지에서 본 것과 간 곳 중 생각나는 건 딱 하나.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순천만 습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애썼다는 근처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용산전망대에서 본 경치보다도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 쓰게 됐다. 사실 생태관에서 개발에 맞선 사람들의 보존 연대기를 주의 기울여 읽지 않아서 자세히 쓸 말은 없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순천만 습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꼼꼼하게 읽지 않은 게 후회된다. 지켜지는 것들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예전 같았음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이야기인데, 환경에 관한 관심이 많아져서 그런지 스쳐 지나간 정보임에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게 신기하다.
최근 최원형 작가가 쓴 책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에서 새우 양식 때문에 망가지는 동남아의 맹그로브 숲에 관해 알게 됐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는 맹그로브 숲은 엄청난 탄소 흡수 능력을 갖고 있고 수중생태계의 보전에 큰 역할을 한다. 바닷가 주민들에게는 태풍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데, 새우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25% 이상의 맹그로브 숲이 사라졌다.
갯벌도 비슷한 것 같다. 갯벌 역시 탄소를 흡수하고, 갈대와 갯잔디,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이 해양생태계의 하위 먹이사슬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개발 논리에 밀리면 보존하기가 힘들어진다.
모를 때는 몰라서 그랬더라도 지금은 더 이상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순천만 습지를 지키기 위해 애쓰신 분들의 정성을 본받아 지금 우리도 소중한 습지를 후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을이라서 은빛 갈대 보러 가는 것도 낭만이 아니라 파괴인가?
세상에 너무 많은 곳들이 인간의 손길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 방법이 너무 다양하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벌목, 화전, 방목, 간척사업, 댐, 케이블카, 대체에너지 발전소, 터널 건설 등 구석구석에서 행해진다. 그 땅들은 인간의 쓰임이 끝나면 불모지가 된다. 또는 기후변화로 불모지가 된 땅도 이미 너무 많다.
순천만처럼 혹은 의도치 않게 잘 보존된 DMZ 같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는 땅은 많지 않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왜 자연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