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뽑았다. 사랑니 발치 후기는 여기저기 넘쳐 나니깐 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 생각 하나는 기록해두고 싶다. 내가 지구에게 사랑니 같은 녀석일까?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고 저 혼자서 알아서 살 도리를 갖췄는데, 가만 놔두자니 점차 관리도 힘들고, 성가시게 만드는 존재. 내쳐 버리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혹시 모를 후유증과 또 다른 관리 때문에 큰 결심이 필요하게 되는…
인간도 지구에게 그렇지 않을까? 겨우 몇 백 년 사이에 자리 쫌 잡았다고 자원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더럽히고, 다른 생물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같은 종끼리 싸움박질하는 인간이 지구는 귀찮지 않을까?
지구가 인간을 뽑아내야겠다고 결심하면 어쩌지? 사랑니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음,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인 건가? 사랑니처럼 애초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건가? 아니다. 사랑니도 분명 원시인에게는 도움이 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퇴화되어서 쓸모없어진 거라고 했다. 뭐, 지구를 다른 행성과 달리 특별하게 만든 공로가 있으니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건 인간 네 생각일 뿐이지………
의사 선생님은 이가 제대로 나고 관리가 잘 되는 경우라면 굳이 사랑니를 뽑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어금니처럼 씹는 기능을 잘 해내니깐 가만 놔둬도 된다고… 이게 인간이 지구에서 살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자리라도 지키기 위해서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 되는 거다. 아무것도 더 손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하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