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일
아침 7시 나는 홀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아빠는 경찰서에 가 할아버지의 죽음이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는 서류를 받아와야 했고 그 이후엔 묘지 터에 접수를 하러 가셨다.
초등학교 5학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처음 오는 장례식장.
그땐 너무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기에 사촌들과 어울려 놀기만 했지.
늦은 밤 술을 마시고 싸우던 우리 아빠와 삼촌이 떠올랐다.
과거를 회상하며 아무도 없는 빈소에 들어가 보았다.
빈소 제단 위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아.. 저 사진은..
고등학생 때 엄마와 할아버지와 함께 홍대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함께 영정사진을 찍으러 갔지.
그때 벚꽃이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유학생활을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만끽하는 한국의 봄이었지.
빈소에서 할아버지의 사진 속 얼굴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금세 눈을 피해버렸다.
도망치듯 나와 앉아있던 곳은 접수처.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접수처의 의자에 앉아 괜히 펜과 종이를 만지작 거려본다.
맞은편에 또 다른 장례식장 빈소가 보인다.
한 여자가 울다가 실신을 했다.
가족처럼 보이는 분들이 그 여성을 끌고 방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저리 슬플까.
난 아직 눈물조차 못 흘리는데.
난 울 자격이 있을까.
은연중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저 여인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핸드폰을 들어 구글을 켰다.
자살을 하는 이유.
자살에 관하여.
자살 유가족.
자살 유가족을 위한 복지.
자살 유가족 매뉴얼.
파도 타듯 타고 타고 들어가다 보니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24시간 운영되는 자살방지전화상담이 있다는 사실.
자살 유가족에게 심리상담 및 정신과 상담 치료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
죽은 이의 심리를 부검하는 심리부검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
시마다 진행하는 자살 유가족의 만남 자조모임이 있다는 사실.
장례식 비용에 사용할 수 있는 지원금이 있다는 사실.
자살유가족의 정신 및 심리상태는 재난 피해자와 같다는 사실.
메모지에 여러 가지를 기록하고 자살 유가족 매뉴얼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만든 유족을 위한 도움서.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글 하단에 링크를 첨부해두었습니다.)
자살 유가족은 단계별로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슬픔.
불안 및 공포.
죄책감 또는 자책.
원망과 책임 전가 그리고 분노.
무력감과 무망감.
나는 어떤 단계인가.
아직 슬픔에 다다르지도 못한 시작 단계임이 분명하다.
난 아직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내가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조차 안 나니 말이야.
도움서를 열심히 읽다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까 실신했던 여인이 있던 빈소 카운터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 불편해 빈소로 들어갔다.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찬송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꽃 화단.
그 중앙 머쓱하게 웃고 계신 사진 속 할아버지.
삼촌들과 고모들의 지인이 보낸 꽃 화환들.
나는 벽에 기대 주저앉듯 바닥에 앉았다.
이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나의 첫 기도는 아래와 같다.
"하나님, 저희 할아버지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그곳에서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모태신앙인 나였기에 자살로 인해 할아버지가 지옥에 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괴로워하다 가셨는데 죽음 이후에도 아프시면 어쩌지 싶었다.
담담한 기도를 시작으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은 따뜻했다.
나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들.
가지런히 모은 두 손.
맨바닥에 무릎 꿇은 나.
아주 잠깐이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 흘리는 눈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드리는 기도지만..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드린 후 눈을 뜨니 보이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말이구나. 정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구나.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나는듯했다.
나는 지금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와있는 거구나.
우리 할아버지는 어제 돌아가셨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구나.
이제 할아버지를 볼 수 없는 거구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흘렀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그 조차도 조문객이 올까 봐 눈치를 보던 나.
숨죽여 울며 바닥에 주저앉아 이내 원망의 눈으로 할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힘드신 건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후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분들이 오셨고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 금방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접수처에 가 앉아있었다.
곧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아무 일 없던 듯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고모들도 왔고, 삼촌도 왔다.
하나 둘 검은색 옷을 입고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멍한 눈.
갈 길을 잃은 눈이다.
손님들이 많이 오기 전, 오전 시간에 직원이 시신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 혼자 보내기엔 마음이 쓰여 함께 1층으로 올라갔다.
이를 꽉 깨물고 아빠의 손을 잡고 직원을 따라갔다.
눈물이 날듯 말 듯 앞이 뿌얫다.
나는 멀리서 할아버지를 보았고, 아빠는 직원을 따라 할아버지 시신 코 앞까지 갔다.
"우리 아버지 맞습니다."
아빠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다시 서로 꼭 잡은 손.
빈소로 돌아가며 나눈 이야기.
"할아버지 생각보다 얼굴이 괜찮다. 그냥 많이 부어있을 뿐이네."
"그러게."
“목은 천으로 가려두었더라.”
“그러게. 사려 깊네.”
오랜만에 만난 사람끼리는 안부인사도 하고, 조문객이 오면 접객도 하고, 식사를 준비했다.
금세 장례식장은 북적북적 해졌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너무 초라해질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했다.
손녀인 나는 정신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손자인 사촌오빠는 열심히 접수처에 앉아 부조금을 받고,
아빠, 고모, 삼촌은 빈소에서 접객을 하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금방 하루가 지났다.
오후가 되자 다시 직원이 내려와 입관을 해야 하니 참여할 가족은 모두 따라오라고 했다.
이번엔 고모, 아빠, 엄마, 그리고 내가 갔다.
고모는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아이고 아버지!”라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그런 고모를 보며 "형님.."이라는 말과 함께 고모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아빠와 나는 이를 꽉 물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절대 잊지 않을 것처럼 눈에 담고 있었다.
고운 천에 여러 번 감싸 할아버지를 꽉 조이는 직원들.
안 그래도 돌아가셨을 때 답답하셨을 우리 할아버지.
왜 저렇게까지 조여야 하는 건지.. 마음이 쓰였다.
사람의 몸에 힘이 다 빠지면 무거워진다는 설을 증명하듯 남자와 여자 직원 둘이 시신을 드는데 힘겨워하는 것을 보았다.
꽁꽁 천에 쌓여 들어간 할아버지. 이제 내가 자는 동안 날 못 보시겠지. 저렇게 묶여있는데 날 어떻게 해칠 수 있겠어.
입관식을 다 보고 또다시 빈소로 돌아갔다.
전날 저녁에 돌아가셨기에 사실상 오늘은 벌써 2일째인 것이다.
오셔야 하는 분들은 모두 오셨고, 늦은 시간이 되자 친척을 포함한 가족들만 남았다.
다들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농담을 주고받고, 어떻게 살았나 대화를 나눈다.
그런 담소의 시간을 보냈다. 누구 하나 울지 않았다.
거기 계신 많은 분들은 할아버지에게 지병이 있었고 심장마비로 편하게 가신 것으로 알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르겠다.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내고 뒷정리를 한 후 다들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걸까 금방 잠에 드셨다.
엄마와 나는 상주실에 누워 잠을 청했다.
엄마도 금세 잠에 들었다.
나는 여전히 잠에 들지 못했다.
몸은 너무 피곤했다.
그럼에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여전히 할아버지가 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아까 천으로 꽁꽁 싸매는것을 보았는데도.
죄책감이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잠을 잘 자격이 있느냐며 나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엄마가 깨지 않게 조용히 상주실에서 나와 장례식장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새벽 3시였음에도 내가 걱정되어 함께 잠에 들지 못한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기 위해 인적 드문 곳에 앉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첫 대화 내용의 감정은 분노였다.
"왜 내 상사는 답장을 빨리 안 해주는 거야? 벌써 이틀째인데." 내가 말했다.
"사정이 있겠지." 남자친구가 말했다.
몇십 분을 이 내용으로 화를 쏟아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슬픈 상태인데 엉뚱한데 감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
머뭇거리다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 자살하셨어."
남자친구는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 많이 놀랬지?"
놀란 나는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는 대답했다.
"그냥 정확상. 경찰서에 갔다고 했을 때부터 대충 알고 있었어. 네가 말할 때까지 기다린 거야."
나는 울면서 말했다.
"하나님은 왜 할아버지가 자살하게 내버려 두었을까."
그는 대답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뜻이 있을 거야."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자살에 어떻게 뜻이 있을 수 있어. 이런 끔찍한 일에 어떻게.. 좋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어."
그는 대답했다.
"우리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분명 나중에 돌아보면 다 필요했던 일이었을 거야."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제 있었던 일과 오늘 있었던 일을 남자친구에게 모두 말했다.
할아버지와 킹크랩을 먹은 것,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 경찰들이 찾아왔던 것, 헬스장에 가서 공고문을 붙인 것, 새벽에 분단위로 잠에서 깼던 것,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오늘 혼자 빈소에서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한 것.
속이 후련했다.
차분히 모든 내용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남자친구에게 너무 감사했다.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 조금이라도 잠들기 위해 다시 빈소로 돌아갔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엄마는 깨있었고 나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디 갔었어! 어디 갈 거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눈 떴는데 네가 없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아.. 엄마도 나처럼 긴장한 상태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다행이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엄마와 나란히 누워 아주 잠깐 눈을 붙였다.
[유족을_위한_도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