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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장례식-2

발인일

by 비비안

새벽 5시쯤 되었을까.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주실에서 씻을 사람은 씻고, 정리를 조금 하다 보니 미국에 있던 오빠와 새언니가 왔다.


이틀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새벽에 전화를 받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온 오빠와 새언니.

여행가방을 끌고 온 두 사람.


"어머니.."

새언니는 엄마를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곧 발인을 해야 했기에 어서 할아버지에게 인사부터 하자고 했다.

빈소에 들어가니 앉아있던 아빠가 오빠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아빠가 오빠를 와락 끌어안으며 흐느끼셨다.

"아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조금씩 우는 아빠는 봤지만 이렇게 무너지듯 통곡하는 아빠의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아빠도 기대고 싶은 곳이 필요했구나.

오빠가 와서 참 다행이다.


빠르게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남은 음식을 담아 아침을 먹었다.


곧 직원이 찾아왔고 발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운구를 해야 하는데 남자가 하나 부족했다.


고모부가 어디로 가신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름 트레이너였기에 남자들 사이에 서있었지만 갑자기 마지막에 직원이 여자는 하는 게 아니라고 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왜 안 와."

"어디 간 거야?"

"이제 시간이 다 되었는데.."


다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중 갑자기 고모부가 돌아왔다.

그렇게 수가 맞아 관을 들고 운구차량으로 이동했다.


영화 속처럼 슬프진 않았다.

그냥 차량이 어디에 있는지, 관이 무거워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건지 등의 걱정이 주된 감정이었다.


관과 함께 모든 사람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그냥 자연을 즐겼다.

여름이었기에 푸릇푸릇했던 창 밖 자연.


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낮이었기 때문일까 살짝 졸기까지 했다.


약 한 시간 후 묘에 도착하였고 다들 기지개를 켜며 직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곧 직원을 따라 터로 올라가는데 남성분들은 무거운 관을 들고 가며 몇 번 휘청였다.

'내가 안 들길 잘했다. 나였으면 놓쳤을 수도 있어.'라는 생각을 하며 뒤따라 올라갔다.

오르고 올라 할아버지의 터에 도착했다.


묘역은 묘지 인부들이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지 옆 크고 깊게 파진 흙덩이들.


인부들은 땀이 뻘뻘 흘러 옷이 다 젖어 보였다.

장례식장에서 챙긴 과일, 떡, 시원한 음료를 인부들에게 나눠주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몇 분 후, 하관을 해야 하는데 인부들이 말을 걸더니 돈을 요구했다.

이미 내야 할 돈은 사무실에서 다 냈지만.. 관습적인 행위처럼 보였다.

사위들에게 5만 원-10만 원씩 걷어가더니 그제야 일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이들은 또 이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것이 참으로 묘하게 다가왔다.


힘겨워하며 관을 내리고, 흙을 조금 덮더니 가족 하나씩 나와 삽으로 흙을 파 덮으며 고인 마지막 길을 함께하라고 했다.


아빠부터 나가 흙을 퍼 할아버지의 관에 부으며 힘차게 외쳤다.

"영면하세요! 아버지!"


엄마도 나가 삽으로 흙을 푸며 조용히 말했다.

"하늘나라 가셔서 어머니 만나 행복하세요. 아버님.."


오빠도 나갔고, 새언니도 나갔다.


나는 나가 울먹이며 말했다.

"할아버지. 하늘에서는 원하는 것 많이 드시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이 말을 할 때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 자리로 돌아오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 앞에서 운 것은 처음이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용기 내 한 말이었다.


한 번씩 돌아가며 흙을 푸고 다시 차량을 타고 모두 갈길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향했는데, 오빠와 새언니는 할아버지의 자살을 모르기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오빠는 안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봐 그들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글이 퍼지고 퍼져 언젠간 오빠와 새언니도 알게 될 수 있겠지만..

알게 되더라도 이젠 시간이 꽤 흘러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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