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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17. 2024

역시 돌잡이로 연필을 잡더라니...

8화 떠오르는 샛별, 역사상 가장 빨리 진 별.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부모님은 나의 이런 특이점을 특별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했다. 그 이유는 나에게 때때로 천재 같은 면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돌잡이로 연필을 잡았다. 네 살 때는 혼자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터득했다. 길거리의 전단이나 간판의 글자 몇 개를 읽어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 글자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해 모든 글자를 익혔다. 구구단도 비슷한 방식으로, 방문에 붙은 구구단 벽보를 보며 그 원리를 파악했다. 만화영화 ‘꼬마 자동차 붕붕’의 전편 대사를 모두 외웠다. 이뿐만 아니라, 이 만화의 영어판을 통해 자막과 음성을 비교하며 알파벳 발음을 익혔다. 서투르지만 대부분의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이 집중을 방해받으면 짜증이 솟구쳤다. 이러한 높은 집중력과 집념을 보고, 부모님은 내 미래에 학문적 영광이 펼쳐질 것을 기대했다.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예민함과 특이한 행동이 천재성의 증거라고 믿었으며, 이 천생재주꾼이 가문을 빛낼 것이라 희망했다. 중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부모님에게 나는 떠오르는 샛별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의 총명함은 유아기를 지나며 영영 사라져 버렸다. 역사상 가장 빨리 진 별이었을 것이다. 비범한 첫딸의 찬란한 미래를 기대했던 부모님의 눈에는 점차 실망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부모님은 그들의 시선에 완전히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전, 나의 특이성과 예민함을 이해하고 존중하려 잠시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은 것은 식사에 관한 배려였다. — 나는 냄새에 민감하고 편식이 심했다. 특히 된장 냄새가 나면 밥을 먹기가 어려웠다. 이에 부모님은 된장찌개를 먹고 싶을 때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식탁 아래에 찌개를 두고 조심스럽게 먹곤 했다. 또한, 나는 식사 후 반드시 아버지의 밥그릇에 남은 마지막 한 숟가락의 밥을 먹어야 했다. 아버지의 밥그릇에 밥이 한 숟가락 이상 남거나 전혀 남지 않으면, 나는 온몸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만약 아버지가 밥그릇을 완전히 비우면, 나는 그에게 다시 밥그릇을 가득 채우게 하고, 처음처럼 식사한 후 한 숟가락만 남겨주도록 요구했다. 이 습관 때문에 아버지는 항상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한 숟가락을 남겨 두고 기다렸다. — 사소한 듯해도, 부모님에게는 애면글면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공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문제 행동은 가정 안팎에서 계속됐다. 예민함은 점점 다루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모든 문제의 윤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선명히 드러났다. 이에 부모님은 나에 대한 기대를 신속히 접고, 실망과 좌절을 감추지 못하면서 자주 분노를 표출했다. 결국, 나는 유아기부터 이미 가족 내에서 영원한 골칫거리이자 애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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