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다락방 Apr 04. 2023

엄마는 결국 이기적인 사람이야

아픈 아이를 바라보는 이기적인 엄마


13살 초등 6학년 첫째 아이가 아프다. 3월에도 고열로 학교를 하루 쉬었다. 오늘도 어제부터 기침과 고열을 동반한 감기로 아침부터 선생님께 결석계를 제출했다. 의도치 않게 한 달에 한 번씩 결석하고 있는 아들.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학교 가는 날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아파도 학교는 가야지.”라고 했다. 나조차도 학교에 빠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당시에는 개근상을 졸업할 때 주던 시절이었다. 6년 개근상. 6년 정근상도 있던 시절. 초중고 12년간 아파도 가야 하는 곳이 학교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알았다. 학교는 아프지 않아도 안 가도 되는 것을. 친구랑 놀다 보니 수업시간에 늦고, 어젯밤 술을 마시다 보니 아침 수업에 빠지게 되고 어쩌다 보니 학교에 안 가는 날도 있었다. 대학생인 나를 제지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대학 졸업 성적표에 나의 성실함이 나타날 뿐이었다.      


아픈 아이의 머리에 물수건을 올려주고 야채죽을 끓여 한 그릇 주었다. 아파도 먹성 좋은 아이는 한 그릇을 말없이 다 비운다. 식후 30분 후 먹으라는 약이지만 아이가 그냥 바로 먹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했다. 이제는 엄마 말 보다 본인의 의견이 더 중요한 예비사춘기가 되었다. 굳이 30분 후에 먹으라는 한 마디를 더해 아픈 아이와 나 사이의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까. 약을 먹은 아이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열이 38도가 넘으면 몸이 쳐지기 마련이다. 아플 때는 푹 쉬는 게 최선이지. 그래 건강이 최고야. 건강을 잃으면 억만금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어.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오늘 문득 아픈 아이를 보며 나의 태도를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아프니까 용서가 되는 아이의 말. 평상시 같으면 예의를 지키라며 말이 그 사람의 인생이야,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법이야 등등 온갖 잔소리를 했겠지만, 오늘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도 마음 저기 한 구석에서 점심때 약 먹고 말끔히 나아 저녁에는 학원 가겠다는 아이의 말이 듣고 싶어지는 참 이기적인 엄마다. 학원에 가려면 숙제도 해야 할 텐데... 학원이 뭐라고. 학교도 안 갔는데 학원에 가기를 바라는 내가 어쩐지 참 이상하다.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힘든 것은 내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밑바닥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때 엄마가 아닌 한없이 작고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만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나를 진정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아이도 성장하고 엄마도 성장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유가 되고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허물어지지 않는 탄탄한 성을 만드는 것이 육아의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파랑새가 되어 나도 그 성을 훨훨 벗어나고 싶다.


이기적인 엄마는 오늘도 아픈 아이를 보며 온갖 상념에 사로잡힌다. 얼른 낫자. 얼른...



비비작가의 일상이 인생이 되는 순간 더 둘러보기

https://brunch.co.kr/@viviland/40

https://brunch.co.kr/@viviland/30

https://brunch.co.kr/@viviland/20

https://brunch.co.kr/@viviland/10


매거진의 이전글 여수에서 인생해물탕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