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바라보는 이기적인 엄마
13살 초등 6학년 첫째 아이가 아프다. 3월에도 고열로 학교를 하루 쉬었다. 오늘도 어제부터 기침과 고열을 동반한 감기로 아침부터 선생님께 결석계를 제출했다. 의도치 않게 한 달에 한 번씩 결석하고 있는 아들.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학교 가는 날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아파도 학교는 가야지.”라고 했다. 나조차도 학교에 빠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당시에는 개근상을 졸업할 때 주던 시절이었다. 6년 개근상. 6년 정근상도 있던 시절. 초중고 12년간 아파도 가야 하는 곳이 학교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알았다. 학교는 아프지 않아도 안 가도 되는 것을. 친구랑 놀다 보니 수업시간에 늦고, 어젯밤 술을 마시다 보니 아침 수업에 빠지게 되고 어쩌다 보니 학교에 안 가는 날도 있었다. 대학생인 나를 제지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대학 졸업 성적표에 나의 성실함이 나타날 뿐이었다.
아픈 아이의 머리에 물수건을 올려주고 야채죽을 끓여 한 그릇 주었다. 아파도 먹성 좋은 아이는 한 그릇을 말없이 다 비운다. 식후 30분 후 먹으라는 약이지만 아이가 그냥 바로 먹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했다. 이제는 엄마 말 보다 본인의 의견이 더 중요한 예비사춘기가 되었다. 굳이 30분 후에 먹으라는 한 마디를 더해 아픈 아이와 나 사이의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까. 약을 먹은 아이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열이 38도가 넘으면 몸이 쳐지기 마련이다. 아플 때는 푹 쉬는 게 최선이지. 그래 건강이 최고야. 건강을 잃으면 억만금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어.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오늘 문득 아픈 아이를 보며 나의 태도를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아프니까 용서가 되는 아이의 말. 평상시 같으면 예의를 지키라며 말이 그 사람의 인생이야,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법이야 등등 온갖 잔소리를 했겠지만, 오늘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도 마음 저기 한 구석에서 점심때 약 먹고 말끔히 나아 저녁에는 학원 가겠다는 아이의 말이 듣고 싶어지는 참 이기적인 엄마다. 학원에 가려면 숙제도 해야 할 텐데... 학원이 뭐라고. 학교도 안 갔는데 학원에 가기를 바라는 내가 어쩐지 참 이상하다.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힘든 것은 내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밑바닥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때 엄마가 아닌 한없이 작고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만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나를 진정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아이도 성장하고 엄마도 성장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유가 되고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허물어지지 않는 탄탄한 성을 만드는 것이 육아의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파랑새가 되어 나도 그 성을 훨훨 벗어나고 싶다.
이기적인 엄마는 오늘도 아픈 아이를 보며 온갖 상념에 사로잡힌다. 얼른 낫자.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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