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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Jun 23. 2023

너와는 몇 번의 가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해

너와는 몇 번의 가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지난가을 쭈니를 처음 본 순간 우리 가족이 되리란 것을 직감했다. 사실 평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 마음을 몽땅 뺏겨버렸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강아지에게.

     

처음 강아지를 키워보는 초보 가족은 뭐든 조심스러웠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봤고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랐다. 일단 쭈니는 예방접종을 완료해야지만 산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예방접종이 끝나고 나면 초겨울이 된다. 아쉽게도 쭈니는 알록달록한 단풍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창을 통해 생애 처음 맞이하는 가을을 보내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2월. 쭈니는 예방접종을 끝내고 생애 첫 산책을 시작했다. 바람이 유독 많이 부는 우리 동네는 겨울만 되면 사람들이 ‘송베리아’(시베리아 같은 송도)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 집은 바닷가 바로 옆이라 바람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혹시나 쭈니가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태산인 나는 쭈니에게 이 옷 저 옷 번갈아 입혀가며 어떤 옷이 쭈니를 더 포근하게 감싸줄지 고민했다. 이런 나의 고민과 달리 남편은 강아지는 모피 코트를 입고 사는 거라며 일단 패딩 하나 입혀서 나가보자고 했다.

      

처음 집 밖으로 나가는 쭈니는 우리 집 현관 입구에서부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때의 떨림은 새로운 공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출입문에 도착하자 쭈니도 공기의 온도가 다름을 느꼈는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었다. 이때의 떨림은 온전히 추위 때문이었던 듯하다. 순간 다시 집으로 들어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언제까지 쭈니를 집안에서만 놀게 할 수는 없었다. 강아지도 산책을 통해 사회성을 키워야 한다, 하루에 최소 1회 이상은 산책을 시켜야 한다 등등 인터넷에 떠도는 별별 이야기들에 내 마음도 갈팡질팡했지만 일단 나왔으니, 땅이라도 밟게 해주고 싶었다.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쭈니. 한 발도 못 떼는 쭈니가 왜 그렇게나 안쓰러운지. 어미 잃은 새처럼 방황하는 듯한 쭈니의 눈빛에 “쭈니야 엄마 여기 있어.” 했지만 망부석이 되어버린 쭈니는 꼼짝을 안 했다. 남편이 내 손에 있던 쭈니의 목줄을 자기에게 넘기고 저 멀리 걸어가 보라고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한발 떼자마자 쭈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예상이 맞았다. 그렇게 한발 두발 떼는 쭈니가 어찌나 기특해 보이는 던 지. 물론 집에서도 잘 걷고 뛰어노는 쭈니지만 처음 걸어보는 아스팔트의 촉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쭈니에게 따스한 집안의 공기와 비릿한 바다 내음 나는 겨울 공기는 다를 것이며 늘 곁에 머물던 엄마가 저만치 멀어져 가는 상황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모든 게 다 처음인 쭈니는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첫 산책이니 무리하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 다시 쭈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물부터 마시더니 이내 엄마 품으로 쏙 들오는 쭈니. 잘했다 잘했어. 첫 산책을 마친 쭈니가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나는 쭈니를 포근히 감싸 안아 주었다.

     

첫 산책을 시작으로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쭈니와 하루에 한 번 하는 산책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어느덧 단단하게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고 습기 머금은 땅에서 초록의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 이 봄 또한 쭈니는 처음 맞이하는 봄이었으리라. 산책길에서 때로는 달큼한 향이 나는 풀, 씁쓸한 향이 나는 풀도 쭈니는 마음껏 탐닉했다. 하지만 산책할 때마다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아직 아기라 그런지 쭈니는 뭐든 입에 넣고 씹어보는 걸 즐겼다. 심지어 돌도 씹는 경우가 있어서 나의 시선은 늘 쭈니의 입으로 향했다. 돌도 씹는 데 풀은 말해 뭐 해. 향이 나는 풀을 뜯어서 오물오물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굳게 다문 입을 벌려 입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풀을 끄집어낼 때면 ‘엄마 너무해.’하고 나를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놈!” 한 마디에 또 신나게 다음 목표물을 향해 달려가는 쭈니를 보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늘 운동 부족이라고 남편에게 핀잔을 들었는데 쭈니와 산책하다 보니 하루 만 보쯤은 쉽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집 바로 앞에 위치한 해변 공원은 쭈니의 쉼터이자 놀이터가 되었다. 이런 공원 옆에 살 수 있다니 이 또한 쭈니가 없었다면 몰랐을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다. 쭈니를 키우며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살게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한 번 더 눈이 가게 되었고 이해할 수 없는 견주들의 행동(강아지 배변 처리 문제, 강아지 학대 등)에 씩씩거리게 되었다.

      

쭈니와 함께 보낸 지난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 곧 맞이할 여름이 설렌다. 사계절을 온전히 보낸 후 쭈니와 우리는 얼마나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될지 궁금하다. 쭈니와 처음 만났던 가을을 나는 몇 번이나 더 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마음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하련다. 쭈니와 함께하는 오늘을 어제보다 더.



               


쭈니의 견생사 더 둘러보기

https://brunch.co.kr/@viviland/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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