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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Feb 23. 2023

원치 않는 너와의 동침

쭈니는 하루 종일 나랑 붙어 있다. 외출할 때만 빼고 나랑 붙어 있으니 이제는 정말 내가 엄마인 줄 아는 듯하다. 밥도 주지, 쓰다듬어 주지, 놀아주지.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쭈니방이 있다. 낮잠을 자거나 밤에 잘 때는 알아서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잔다. 그러다 가끔 침대에 올라와서 놀다가도 잘 때가 되면 자기 방으로 쪼르르 가는 쭈니를 보며 역시 천재구나 싶은 고슴도치 맘이 되었다. 쭈니는 침대를 올라가기 위해서 계단을 이용한다. 한 번은 계단을 올라가다 옆으로 떨어져서 ‘깨갱’하며 엄청나게 소리쳐서 난리 난 적이 있었다. 쭈니가 다친 줄 알고 둘째는 울고불고. 자기가 올라오라고 해서 그랬다며 쭈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 이후 쭈니는 계단에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침대에 올라오는 것을 거부했다. 어떤 유혹을 해도 계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침대에 오를 일이 없으니 한편으로 마음이 편했다. 가끔 침대 위에서 배변 실수를 해서 이불 빨래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쫄보 쭈니가 변했다. 중성화 수술을 한 이후 갑자기 용감해졌다. 계단 위로 점프를 해가며 침대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뭐지? 중성화 수술하면 남성성이 줄어드는 거 아니었어? 이건 잘못된 상식인가? 아무튼 쭈니가 수시로 침대에 올라오게 되면서 우리 집에 큰 변화가 생겼다. 

     

침대의 포근함을 알아버렸는지 아니면 내가 진짜 자기 엄마인 줄 아는지 밤마다 슬그머니 침대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에 쭈니가 침대에 올라와 내려갈 생각을 안 하더니 그냥 여기가 자기 침대인 양 잔다. 한밤중에 쭈니 뒷다리에 얼굴을 가격 당한 남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강아지가 옆에서 자다 보니 몸부림에 쭈니가 눌리거나 다칠까 봐 나도 남편도 잠을 푹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날 그리고 다음 날 이틀 연속 쭈니가 옆에서 자다 보니 이건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아침이면 온몸을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처럼 여기저기가 쑤셨다.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사흘째 되는 날 침대 위에서 쭈니가 잠들었다 싶을 때 쭈니를 자기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안방 문을 닫았다. 본인도 이틀 동안 불편했는지 아주 곤히 잠들었다. 남편도 나도 이틀간 못 잔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또 문제가 발생했다. 쭈니가 잠들면 자기 방에 데려다 놓는 걸 눈치챘다. 자기 방문이 닫힌 걸 알고 밤새 낑낑거리고 문 열라고 발톱으로 안방 문을 툭툭 두드렸다. 지칠 만도 한데 이 녀석 끈기가 대단하다. 밤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두 손을 먼저 든 건 우리였다. 도저히 쭈니의 간절한 부름을 모르는 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편, 쭈니, 나 이렇게 한 침대에서 동침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다. 10시만 되면 잠드는 쭈니는 자연스럽게 남편과 나 사이를 비집고 마치 자기가 침대의 주인처럼 이불속으로 쏙 들어온다. 작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누울 자리를 만들고 꼭 가운데서 잔다. 잠들었다 싶어 자기 방에 데려다 놓으면 이내 다시 침대로 올라온다. 몇 번 반복하다 결국 또 포기. 그렇게 쭈니와 원치 않는 동침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래, 같이 자자. 일주일이 넘어 한 달 가까이 쭈니와 동침하다 보니 나도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마음을 비우니 이제는 쭈니가 곁에 있어도 잠을 편히 자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다가 쭈니 숨소리가 안 들리면 이 녀석 어디 있나 하고 침대 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강아지를 키우며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사랑은 주는 만큼 받는다는 걸. 쭈니는 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아니 두 배는 더 부풀려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한없이 사랑스럽다. 내 곁에서 새근새근 잠든 쭈니를 보고 있으면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다. 원치 않는 동침이지만 품에 잠든 쭈니로 인해 온기도 느끼고 사랑도 함께 우리 곁에 머무는 기분이다.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줘!! 사랑해 쭈니야!!




비비작가의 쭈니의 견생사 더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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