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날마다 실패하기로 마음먹는 자가 강자다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김승옥이 힘이 센 것인지 염소가 힘이 센 것인지 모르겠지만 반세기나 지난 이 명문장은 여전히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출처도 잊은 채 수도 없이 인용되는 'OO이 힘이 세다'는 문장은 염소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쉬우면서도 명징한 문장의 힘이 가지는 진수다.
아무튼 명문장의 패러디로 제목을 쓰기에 명확하게 출처를 밝히고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다.
실패, 슬픔, 수포, 신파, 세파...
모질고 부정적이며 시련을 닮은 낱말들은 하나같이 시옷과 피읖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세상의 단두대에서 승패(앗! 이 단어도 ㅅ,ㅍ으로 구성)로 결정지어져야 하는 숙명의 인간이 ㅅ과 ㅍ에 갇힌 형상이다. 가만 보니 ㅅ은 사람 인人자처럼, ㅍ은 사방이 막힌 공간처럼 보인다.
실패는 누구나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래서 입에 올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한다. 허나 관점을 달리하면 실패는 과정에서의 작은 현상에 불과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잠시 쉬는 휴게소 같은 지점일 뿐이다. 적어도 휴게소를 목적지로 잡은 여행자가 아니라면 잠시 머무른다. 몸 상태를 새롭게 하고 연료를 보충하고 다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이곳을 뜰 것이다. 갈 곳이 멀기에 이 순간의 가치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대체로 실패는 비교에서 탄생한다. 이 또한 타자에서 자신으로 비교대상을 옮기면 실패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글쓰기에서도 발견된다. 매일의 글쓰기는 아름답게 실패하는 과정이다. 여타의 실패들과는 달리 글쓰기에서의 실패는 어떤 불이익도 손실도 없기에 실패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행위이다. 실패도 연습해야 실패를 더 실패하지 않게 된다. 실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경험하는 순간 성공이다.
II 조금 버겁지만 내 안에 염소 한 마리 살려두자
부정적인 것들의 힘을 믿는 것은 용기의 몫이다.
그것은 염세적인 사고와는 다르다.
서로의 갈등을 피해 라이킷 하는 것과는 달리 부정적인 것은 보다 정교한 차이를 고민한다.
긍정적인 것들은 계산의 산물이라면 부정적인 것들은 사고의 결과일 것이다.
내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함부로 치워버리지 않고 그것의 가치를 헤아리려는 의미 있는 수고이다.
기쁜 순간보다 슬픔의 순간마다 우리는 내적 성장의 나이테를 가질 수 있었다.
적어도 힘이 센 것이라면 염소처럼 죽일 것이 아니라 내 곁에 두고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슬픔도 실패도 아직 멀리 하기에는 내가 겪어야 할 힘센 외부의 상대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III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님의 침묵_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