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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Apr 19. 2020

눈을 맞추다 알게 된 것

네번째 이야기, 2020년 4월 19일 일요일. 날씨 바람(강) 

토요일 아내가 외출했다. 봄이와 단둘이 거실 매트에 모로 누워 얼굴을 마주했다. 눈동자를 바라보니, 눈동자를 바라본다. 눈을 맞춘 게 고마워서 빙그시 웃었더니 저도 꺄꺄 소리를 낸다. 내가 무엇을 하면, 저도 무엇을 한다. 그게 신기하고 고마운 시기다. 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맞추지 못한다. 대개 다른 곳을 보고 이야기 하거나 잠깐잠깐 눈을 맞출 뿐이다(인중을 바라보면 눈을 바라보는 효과가 난다하여 대개 그리한다). 부모님과도 동생들과도 그렇다. 아내는 내게 뭐를 그리 겁내하냐, 말한 적이 있다. 그리 보였나보다. 감춘 것이 많고, 부풀린 게 많아 겁내한 것 아닐까 싶다.


눈을 맞추다 알게 된 것

아. 아빠는 어쩌면 간난아기인 너보다도 겁이 많을 지 몰라. 아빠는 그동안 아빠가 너를 바라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거든.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 상대방과 눈을 맞춘다는 것은 적어도 아빠에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어. 


조용한 거실에 누워 너와 눈을 맞춰보니 오래 전 눈을 맞췄던 몇몇 순간의 잔상들과 당시의 느낌이 되살아나더구나. 아빠에게 눈을 맞춘다는 건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닌 일이었단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은 눈을 감을 순 있어도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은 감출 수가 없거든.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피하는 것 뿐이지. 


눈을 맞춘다는 것이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그 일은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행위일지 몰라. 어떠한 말과 행동이 개입되지 않은 나의 마음을 보여주는 용기있는 행위일지 몰라. 내가 상대방에 눈을 맞추고, 상대방이 내게 눈을 맞춘다는 것은 두 사람이 동시간에 겪을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순간일 수 있겠지.

영화는 두 인물이 서로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단지 바라볼 뿐인데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다.


둘 만의 순간, 둘 만의 공간.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알게 되는 시간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빠보단 조금더 상대방을 바라보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어. 너를 드러내는 데에 겁먹지 않고, 용기를 내 자신을 보여주는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와 아빠는 모르는 네가 만든 순간과 공간들이 네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어. ♣


이번주 봄이는

슬슬 뒤집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엉덩이를 밀어보기도 하고 심지어 옆에 누워서 뒤집는 시범을 보여주기까지 했지만 별 관심이 없다. 머리칼이 많이 자라 눈을 찌르는 것 같은데 곱슬머리가 베베꼬여 있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자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혀 보지만 고개를 꼿꼿히 세우기는 아직 무리다. 엄마가 외출해도 울진 않는다. 그게 고맙다.


이번주 아내는

이태원에 행차하신다 하여 놀고 싶은만큼 놀다오라 하였다. 실평수 15평짜리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외출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침부터 드라이를 하고 화장을 하셨다. 외출 직전 모습을 보고 누군가 했다.


이번 주 아빠가 읽은 문장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상의 양식>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아올 때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알베르 까뮈, 섬에 부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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