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우연히 완두콩을 샀다. "완두콩, 셀러리, 양파, 당근, 호박고지 주세요."라고 말하면 농부아저씨가 채소를 대충 한 줌씩 종이가방에 넣어준다. 가격도 아저씨 마음대로. 미니당근, 셀러리와 이리저리 뒤섞여 우리 집에 온 완두콩을 삶아 맛을 보았다.
농부시장에서 사온 채소들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달콤한 완두콩
"우와~ 정말 달다. 완두콩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모양이 제각각인 콩깍지 속에 각기 다른 크기만큼만 자란 완두콩들이 모두 같은 맛을 내고 있다. 제철에 먹는 완두콩은 정말 한 움큼씩 퍼먹고 싶은 행복한 맛이다. 그 뒤로 나는 완두콩을 좋아하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채소가 무엇이냐 물으면 바로 완두콩이라고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주제로 떠오르는 친근한 채소랄까.
하긴 그전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완두', 인형이 별로 없는 우리 집에서 몇 년 간 유일하게 버려지지 않은 것도 완두콩 인형, 솔티드캐러멜, 말차, 라즈베리 등등 각종 맛있는 빙수를 파는 곳에서도 나는 완두콩빙수를 고른다. 올여름에는 완두콩국수를 해 먹었고, 완두콩수프나 완두콩을 사면 주는 엽서를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인스타 아이디도 wandoo뭐시기로 바꿀까 생각도 해보았다.(인스타 아이디는 못바꿨지만 브런치 링크의 도메인은 wandoo가 들어간다.)
완두콩빙수
완두콩국수
맑은 초록색으로 알알이 빛나는 완두콩은 작고 귀엽지만 봄의 커다란 생명력과 활기를 담고 있다. 그게 내 입속으로 들어오면 나도 희망의 기운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쁘다. 어떤 요리의 주인공은 못되지만 발견하면 너무 반갑고 눈길이 간다.
완두콩을 보면 우리 집에 놀러 온 엄마에게 제철의 단맛이 깃든 완두콩을 대접하고 싶은 그 마음이 떠오른다. 멀리서 온 사랑하는 손님에게 내가 최근에 먹은 가장 맛있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엄마가 나처럼 완두콩을 많이 많이 퍼먹고 그 단맛을 한껏 느끼길 바라는 마음. 더 달콤한 케이크, 빵도 있지만 그보다 더 건강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완두콩은 사랑이다. 도시락을 쌀 때 흰쌀밥 위에 하트모양으로 올려지는 건 완두콩밖에 없다. 검은콩 하트는 영 이상하다.
어쩌다 완두콩 예찬론자가 되어버린 걸까. 쓰다 보니 내가 집어먹은 완두콩만큼 할 말이 많아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