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but, I'm worthy.
나는 현재 엄마를 만나지 않는다.
안 본 지 꽤 된 것 같다.
나이가 사십이 다 되어가도 엄마의 향수는 옅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면
더 이상 엄마가 그립지 않을 줄 알았다.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나는 반드시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했기보다 나를
있는 그래도 수용해 줄 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누군가의 적절한 이름을 "엄마"라고 붙여줬다.
친정 엄마는 날 참 부단히도 밀어냈다.
내가 하는 말, 생각, 감정 어느 것 하나도 인정해 주기 싫어했다.
잘하려고 애썼지만, 못하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무안을 주곤 했다.
내가 엄마 앞에 서면 항상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혼하기 전부터 몇 년 간은 얼마나 심각한지 친정에도 말할 수 없었고,
(가출해서 나는 모텔 밖에는 갈 곳이 없었다.)
이후 몇 년 동안은 내가 현재 얼마나 힘든지,
왜 현재 이런 상태인지를
때론 차분히 설명하고 어쩔 때는 울부짖으면서도 말해봤지만,
항상 날아오는 것은 날 선 원망과 책망의 말이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우리 딸, 많이 힘들었겠구나.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어......
지금 엄마가 듣는 데 너무 속상해."
(이런 말 한 번만 들어보면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갈 것 같다. 하하)
엄마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반대하기 바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나쁜 것처럼 말했다.
엄마는 나에게 끊임없이 주장이 너무 세고 자기 말만 맞다고
하는 아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
"너, 남자 있지?"
한 번은 전 남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또 무너지고 상처받아 카페에서 엉엉 울며 일기를 쓴 뒤,
말할 곳이 없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기를 부여잡고 30분을 통곡하며 말했다.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나에게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참 매정했다.
꼭 내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길바닥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울고 있는 한 명의 여자 아이였다.
엄마의 음성이 전화기 저편에서 매몰차게 들려왔다.
"O서방만 이상한 게 아니야, 내가 봤을 때는 너도 이상하다. 너 정신과 가서 치료나 받아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나마 속을 터놓을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은 참 애매한 반응을 보인다.
남의 엄마를 이상하다고 하자니, 본인들이 나쁜 사람이 되긴 싫었을 것 같다.
"엄마가 이혼하는 게 너무 걱정되셔서 그런가 보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이후 엄마가 저지른 실수들은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많았다.
왜 '실수'라고 하냐면, 이제는 그 애매한 반응을 보이던 지인들 마저 이야기를 듣고는 손절하기를 잘했다고 거리를 좀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한다.
엄마는 딸이 괜찮은지 보다는 딸의 이혼으로 인해
자기에게 오는 스트레스와 부담을 더 염려하고 있는게 느껴져서
엄마와의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별거시작 2달 이후부터는 엄마에게 아이들 양육 관련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기생충'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밤 11시에 장모에게 전화해서 딸 데려가라는 소리를 하는 사위에 대해서는
극진한 긍휼함을 베풀었다. 아이들을 못 보니 불쌍하다고 나보고 독한 년이라고 했다.
보통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더 잘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이 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전에는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더 괴로웠는데,
이제는 엄마가 나한테는 나쁜 사람은 맞지만, 많이 아픈 사람이구나 하는 인지가 생겼다.
전남편과 꼭 닮은 엄마를 보며 왜 나에게 '이혼'이 현실이 되었는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하듯이,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학대하는 가해자이자, 세상 모든 일은 혼자 다 억울한 엄청난 피해자로 인생을 점철하고 있다.
참으로 불쌍한 영혼이다.
그렇게 살면 본인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렇지만 그 괴로움을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 밖에는 없다.
나의 엄마에 대한 마음이 '용서'를 나타낼 때를 위하여
가만히 기도하는 것, 그것이 엄마에 대한 나의 최선이다.
처음엔 원망만 많았다가 엄마가 엄마 삶을 대하는 방식을 내가 내 삶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깨달음을 느낀 후로는 거리를 두고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나는 현실 엄마는 없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사랑해 줄 내 마음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내 삶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에 대해서 매일 체감하며 살고 있다.
엄마가 했던 책망과 원망의 말, 그때의 표정, 전해지는 감정들
무의식에 잠기어 있던 생각,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나는 예전에는 그 마음들을 버리려고만 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전의 내가 통쨰로 없어져 버릴까 봐.
사랑받지 못한 나를 들여다보기가 무서웠다.
내가 정말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일까 봐......
나도 사랑받고 싶은데, 나도 내 사랑 주고 싶은데,
아무도 내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까 봐.
그런데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너무너무 아팠다.
이 아픔은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번져갔다.
처음엔 눈물도 안 났다.
점점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보고,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생명의 방향으로 조금씩 길을 옮겼다.
혼자서 참 엉엉 많이도 울고, 많이 적었다.
자라면서 내 감정과 생각들이 한 번도 수용된 적 없었다는 것에
참으로 놀랐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에 대한 엄청난 회의감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을 내 생명을 엄청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구나.
존중받고 싶구나.
나는 내 안의 사랑이 엄청나게 많은 아이야.
이런 것들을 다 모르고 내가 나를 데리고 열심히 산다고 했구나.
나는 있는 그대로 나를 수용해 줄 진짜 '엄마'로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래, 현실의 엄마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하지만,
그럼 내가 나에게 엄마가 돼줘야지.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 토닥여주는 나의 엄마.
지금도 여전히 기억의 파편들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떠오르는 생각, 마음, 감정에 대해서는 내 안의 엄마로 토닥토닥해준다.
평생 죽을 때까지도 이 작업은 계속되겠지.
하나님, 하나님이 다 아시잖아요.
제 마음, 누구한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참 외롭고 슬펐어요.
내가 마치 버려진 것 같아서, 모든 사랑을 다 빼앗긴 것 같아서.
그렇지만 이제는 알아요.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해 주는 '나'를 만나게 해 주심을.
우리 모두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엄마가 필요하다.
현실에서 주어지지 않는다면,
마음에서 만나면 된다.
이 치유의 과정에서 놀랍게도 나는 내 삶의 의식이 더욱 확장되고 저변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 모든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들에게,
이 글이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한다.
전투토끼 #8번째 글.
"우리 모두는 조건 없이 수용될 수 있는 존재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현실 엄마가 힘들다면, 내 마음의 진짜 엄마가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