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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엔젤 May 18. 2024

인생은 운빨

적나라한 셀핍 시험 후기

시험을 치라는 감독관의 말에   시작버튼을 누르니 마이크 테스트를 하라고 한다.


"Tell me about your favorite person"


대충 생각나는 아무 이름이나 말했다. 녹음이 잘 되었는지 들어보란다. 다행히 녹음이 잘 되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녹음이 잘 안 되었다고 컴플레인을 거는 불상사를 방지하려고 그랬는지 스피커 세팅을 크게 해 놓은 느낌이 들었다. 볼륨이 너무 커서 쩌렁쩌렁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였다.


마이크테스가 끝나니 리스닝테스트가 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안내가 나오는 동안에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접어서 노트테이킹 할 준비를 해놓았다.


첫 문제가 화면에 뜬다. 두 사람이 하는 일상 대화를 듣고 5문제를 푸는 건데 너무 금방 지나가서 무슨 문제였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파트 2, 파트 3까지는 노트테이킹 안 하고 풀어도 맞는다는데 나는 노트테이킹을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해서 틀릴까 봐 그냥 처음부터 노트테이킹을 하면서 풀었다.  파트 4는 뉴스, 파트 5는 세 사람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하는 얘기, 파트 6은 opinion이다. 생각보다 리스닝은 주제가 어렵지 않아서 푸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다행히도 과학 분야가 하나도 안 나오고 내가 아는 분야가 나와서 당황하진 않았던 것 같다.  1분 안에 답을 골라야 하고 답을 고르면 "다음"을 클릭해서 넘길 수 있는데 그냥 컴퓨터가 자동으로 지나갈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파트 3까지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알쏭달쏭했던 문제도 있었다. 막바지에 가니 헷갈리는 문제들이 점점 나온다. 노트테이킹 한 것을 계속 바라보면서 답이 뭘까 생각을 하고 풀게 되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차라리 다 풀면 휙휙 넘겨버리는 게 나을 뻔했던 게 어차피 대화가 끝나면 내용도 생각이 안나거니와 정답이 헷갈리면 처음 찍은 게 답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리딩은 리스닝보다는 수월하게 푼 것 같다. 모니터만 보고 38문제를 풀면 되는 거라 부담이 없었다. 역시 알쏭달쏭한 문제는 있었는데 집에서 풀 때는 많이 틀리면 10개 내외고 10개 내외면 적어도 12점 만점에 9점은  나오기 때문에  헷갈린 3문제가 있어도 그냥 10개 내외로만 틀리자 하는 생각으로 라이팅으로 넘어갔다.


라이팅은 문제가 생각이 난다. 글을 보는 분들 중에 셀핍 시험을 앞으로 보실 분들도 계실 수도 있으니 무슨 문제였는지 써보면


1. 놀이공원에서 스태프한테 잡 오프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담당자한테 취업문의를 하라

2.  지역 커뮤니티에 stadium을 세우는 게 낫냐 , 아니면 공원을 세우는 게 낫냐


To whom it may concerns으로 시작하고 나서 내가 캐나다 정부에서  security officer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뽑아줘라, 모기지 페이먼트를 내야 한다,라고 썼고 마지막은 시급, 근무시간 알려줘라고 하고 끝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한 답은  공원을 세우는 게 낫다고 했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운동할 곳이 별론 없고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 안된다고 하면서 대학을 들어가야 하니 공부에 더 전념해야 한다고 , 그리고 티켓이 비싸서 모두가 stadium을 이용할 수 없으면 돈만 날리는 거라고 썼다. 라이팅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스피킹을 하고 있어서 집중이 잘 안 됐다.



마지막으로는 대망의 스피킹.

다른 건 점수 안 나와도 스피킹만은 욕심이 나서 그동안 준비한 대로만 하고 싶었다.


1번 문제는 졸업을 앞둔 친구에게 졸업 후 무엇을 하라고 할 거냐라고 조언하는 질문인데 흥분을 해서 그만 목소리 톤을 올리고 말을 했다.


내가 한 대답은

안녕 애나야, 일단 졸업 축하해! 한국으로 여행 가는 걸 추천해.

일단 네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에서 우리 가족도 볼 수 있을 거야. 한국에서 길거리음식도 먹어 엄청 맛있어 외국인들도 좋아해, 그리고 BTS 콘서트가 이번달에 있어, 외국사람들이 엄청 와, 정부에서도 이익증진을 위해서 외국인들한테 discount 많이 해줘  마지막으로 한국은 교통수단이 잘 돼 있어서 길 찾기 쉬울 거야.  내 조언이 도움 되길. 안녕!


두 번째 문제는 기억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책, 유익했던 것들,

뭘 배웠고 네게 어떤 영향을 끼쳤냐


세 번째는 그림묘사였는데 그림이 공부한 것과 비슷하게 나와서 놀랐다. 하지만 대답은 연습한 만큼 잘하지 못한 듯하다. 미래예측 하는 다음 문제도 표현도 많이 안 썼다. 시간에 쫓기어 기본 동사로만 여러 가지를 말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고 알고 있는 다양한 표현은 쓰지도 않았다.


다섯 번째는 봄재킷, 여름옷, 겨울옷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서 남편을 설득하라는 문제였고 여섯 번째는 친구가 할머니한테 비싼 노트북을 사줬는데 할머니가 계속 그걸 가지고 있어야 하냐 아님 친구한테 다시 팔려고 말할 거냐 라는 문제, 7번째  의견문제는 요가수업이 필요하냐 안필요하냐였고 마지막 8번 그림문제는  장갑이랑 모자 쓰고 있는  눈사람모양 아이스크림을 설명해서 친구한테 사라고 설득해라는 문제였다.


1분 30초 안으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할 말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니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는 부사들, 그리고 뒷받침해 주는 설명도 못하고 똥을 안 닦으면서 말만 빨리하고 끝내는 느낌을 받았다.  셀핍 스피킹에서 중요한 것은 안정된 " 톤"으로 말하는 거라고 했는데 톤이 올라가 버리니 스스로 앗! 망했다고 인식을 했는지 말도 빨라지고 말도 꼬여버렸다. 영어는 목소리를 깔아야 같은 시간에도 말을 많이 할 수 있는데 말하고 나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스피킹 시험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끝은 인사로 마무리를 하려고 했지만 한 문제 한 문제 넘어갈 때마다 아 이제 나밖에 안 남았구나. 시험도 이제  끝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문제에 왔다.


뭘 했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얘기하니 마침내 시험이 종료됐다는 허무한 메시지가 모니터에 떴다. 예상대로 내가 마지막으로 교실에 남아있었고 감독관한테 종이와 펜을 돌려주고 소지품을 다시 돌려받고 씁쓸한 발걸음으로 시험장을 나왔다.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은 왜 빨리했지?
아까 그 문제는 답 고치지 말 걸 그랬나
아  물병도 가지고 들어갈걸


아니, 그 그림 문제는 아예 똑같이 나왔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리딩을 더 공부할걸!! 3주 동안 공부한 게 시간낭비였었나? 이럴 거면 차라리 공부를 안 했어도 됐던 건가?


어차피 셀핍이라는 건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확 오르는 시험이 아니라  그날 컨디션에 좌우되는 거라 운이 좋으면 몇 개 더 맞는 거라고  친구가 다독여준다. 평소실력대로  한번 쳐본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3주 동안 열심히 공부한 나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올해 새로 생겼다는 한국 치킨집에 들러 부대찌개떡볶이, 허니갈릭 치킨, 양념치킨으로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대형 몰에 들러 스케쳐스에서 신발 한 켤레도 샀다.



점수야 어디 한 번 나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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