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시작 0분 전, 멘탈사망
드디어 시험 D-데이.
올 것이 왔다.
아침부터 긴장감이 목을 조였다.
시험장은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떨어진 반이라는 곳.
전날 잠은? 한숨도 못 잤다. “이민의 무게는 불면으로 온다.”
가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러 맥모닝 두 개와 커피를 샀다.
심신을 달래보겠다고 맥주 한 캔까지 따서 마셨지만, 불안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이민 점수 앞에서는 알코올도 무력하다.”
시험장은 Xyna International School.
구글 리뷰를 검색했을 때부터 불안했다.
아이엘츠 응시자들이 남긴 리뷰엔 이런 말들이 있었다.
“여기 스태프들 점수 짜다. 조심해라.”
시험 보기 전부터 이미 멘탈을 반쯤 잃었다.
홈페이지에는 45분 전 입실이라더니 막상 가보니 늦는 사람도 다 받아줬다.
그걸 보는 순간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이건 영어 실력보다 운의 시험이구나.”
“그래 너네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즐거운 토요일 아침을 이렇게 망쳐놓은 건 너희가 아니라 캐나다 정부지.”
신원조회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묘한 유대감이 생겼다.
“그래, 우리 다 같은 배 탔다. 버텨보자.”
마음속으로 모르는 친구들을 조용히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까지 여권 검사를 마치자, 드디어 사진 촬영.
그리고 번호표가 부여됐다.
이제 우리는 이름도 없는 숫자들.
시험실에 들어가기 전, 사물함 앞에서 본격적인 검문이 시작됐다.
시계, 핸드폰, 모든 개인 소지품은 박제된 듯 사물함 안으로.
심지어 물도 투명 병만 허용. 내가 가져간 텀블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낙오됐다.
“3시간 뒤에 보자”
텀블러와 이별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내 모습은 거의 전쟁터에 남자를 보내는 연인의 심정 같았다.
시험 전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별별 생각을 다 했다.
“평소 집에서 쓰는 귀마개랑 펜을 쓰면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민 점수가 걸리니 이제 귀마개 하나도 전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험장 문 앞에서 감독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용기가 증발했다.
그 무표정하고 차가운 시선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뭘 꺼내려고 하는지 다 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영주권을 걸고 도박을 할 텐가?”
혹시 내 펜을 썼다가 커닝으로 오해받아 퇴실당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내 손에 식은땀이 맺혔다.
결국 내 주머니 속에 있던 펜까지 탈탈 털어내고 반납했다.
시험이 끝난 후 알게 된 진실.
감독관들, 말만 무섭게 했지 책상 위는 아예 확인도 안 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자라가슴일까.”
나쁜 짓 하면서는 절대 못 사는 운명. 선량함이 아니라, 그냥 쫄보 DNA였다
시험이 치러질 공간은 칸막이가 쳐진 좁고 밀집된 공간이었다.
생각보다 협소했고, 의자도 애매하게 높아서 불편했다.
나는 구석 코너에 숨어야 안정감이 생기고 실력 발휘를 하는 타입인데, 왜 하필이면 정중앙 자리에 배정됐을까?
“이민 점수는 이제부터 멘탈 게임이다.”
게다가 쓰라고 준 펜은 왜 이렇게 뻑뻑한지.
종이에 글씨를 쓰려면 팔꿈치까지 힘을 줘야 했다.
별게 다 거슬린다.
종이 한 장도 그냥 안 주는 자비 없는 감독관은 왠지 더 매정해 보였다.
시험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패배자의 마음.
“그래, 나는 이미 이 시험에 지배당했다.”
내 왼쪽에는 수염이 거뭇거뭇한 중동 남자. 왠지 목소리가 클 것 같았다.
오른쪽에는 타자 소리를 세상 시끄럽게 낼 것 같은 멕시코 여자.
내 멘탈은 이미 얇은 얼음판 위에 있었다.
“하나님 제발 이 흔들리는 멘탈 좀 붙들어주세요”
그러는 사이, 내 속도 모른 채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리스닝 테스트가 시작됐다.
아 내가 과연 이 시험을 무사히 보고 나올 수 있을까?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건 뻑뻑한 펜 한 자루, 그리고 내 영주권의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