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we see] 동네를 사랑하는 엄마 연구자, 최이명 박사님
[People we see]에서는 Play Fund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함께 나눈 대화를 전합니다. 일상적으로, 업무 차원에서, 사적으로, 혹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생각과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30대 초반까지는 동네 바보예요. 정작 본인 동네는 전철역, 편의점만 알고 다른 동네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느라 바쁘죠. 아이를 가지면서 비로소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공공 화장실이 어딘지, 공놀이 할 만한 운동장이 어딘지,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돗가가 눈에 보이고.. 예전엔 동네에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던 장소들에 하나씩 불이 켜지는 느낌이랄까요?”
Play fund과 15개월 동안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a.k.a 놀세권 연구)]를 함께 해온 최이명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연구 조사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GPS를 달아 동선을 추적했던 데이터를 가지고 요새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있는지를 한참 이야기하고 있었죠. 그러다 문득, 놀세권 연구를 잠시 제쳐두고, 연구자 “최이명” 박사님이 궁금해졌습니다. 동네를, 보행을, 아이들 동선을 연구하는 7세, 11세 남자아이를 가진 엄마 연구자로서 말이죠.
Q. 왜 동네를, 그중에서도 보행 환경을 연구하세요?
살기 위해서요! 저는 생존 연구자예요. 차 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운전을 무서워해서 무조건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저에게 살기 좋은 동네는 걷기 좋은 동네예요. 제가 잘 살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 동네를 연구하죠. 동네를 연구하다 보니 동네를 만드는 근본적인 틀의 실체를 밝히고 싶더라고요. 특히, 왜 신도시는 아무리 잘 계획해도 기성 시가지를 따라갈 수 없는지 궁금했어요.
Q. 신도시가 기성 시가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보다 보면 신도시를 계획할 때 마치 사람들의 삶이 이분화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산책길을 계획할 때 정작 사람들이 일상생활하는 곳과는 별도로 배치하죠. 그렇지만 오래된 도시는 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올 수 있어요. 이렇게 시장 가서 장만 봐도 저절로 운동이 될 수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어요. 아직도 신도시를 계획할 때 동네에 사는(Living) 사람들의 관점이 덜 반영되는 것 같아요.
Q. 왜 신도시가 자꾸 그런 모습으로 계획되는 걸까요?
동네 연구자로서 보면 정작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계획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상을 동네에서 보내는 사람들을 위한 동네가 되어야 하는데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것이 우선하는 경우들이 많죠. 핫플레이스를 생각해보면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간과는 전혀 다른 레이어예요. 이방인으로서의 동네를 바라보는 관점이죠. 역세권도 마찬가지예요.
역세권은 일상에서 동네에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네를 빠져나가는 사람을 위한 개념이에요.
Q. 동네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 마디로 사람 사는 곳이에요. 아이들과 엄마들과 노인들이 사는 곳. 사실 아빠에게 동네는 사는 곳이 아니라 자는 곳이죠. 대부분의 20~30대에게도 자는 곳. 자는 곳인 사람들에겐 편의점과 전철역만 있으면 되죠. 편의점은 냉장고, 전철역은 출입문이랄까? 하지만 동네에 사는 사람들,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네는 전혀 달라요.
Q.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동네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새로운 동네 갈 때는 항상 [초등학교, 시장, 마을버스 노선, 공원]을 살펴봐요. 이 것만 봐도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다닐지 거의 예상이 돼요.
Q. 흥미롭네요. 마을버스 노선을 보는 특별한 이유는요?
많은 사람들이 마을버스를 아파트 단지에서 전철역으로 이어주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데요. 사실 마을버스는 경사지에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이동수단이에요. 할머니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짐을 잔뜩 들고 내려오신다거나,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을버스는 걷기를 확장시켜주는 좋은 매개체예요. 본인이 걷다가 피곤해서 지쳤을 때 기댈 수 있는 대체수단이 있어야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거든요. 결국 마을버스가 있어야 오히려 사람들이 더 걷고 다닌다고 볼 수 있어요.
마을버스 노선을 짤 때 동네에 놀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핵심 장소들을 이어주는 노선이 되면 좋겠어요
Q. 박사님에게 살기 좋은 동네는 어떤 동네인가요?
다들 걷기 좋은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라고 하죠. 놀기 좋은 동네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득 "어른이 걷기 좋은 동네가 아이에게도 놀기 좋은 동네일까?"란 의문이 들었어요. 결론적으로 어른이 걷기 좋은 동네는 아이가 놀기 좋은 동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어른이 걷기 좋은 동네에는 보통 상업시설이 많고 보도와 차도의 혼용 가로가 들어오도록 재미있게 만들죠.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차와 사람이 같이 쓰는 길은 대개 좁기 때문에 대로변에서 느낄 수 없는 아기자기한 재미 요소를 가지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위험한 길이에요. 또한 상업시설은 재미있긴 하지만, 주차를 유발하니까 위험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동시에 어른들에게도 재미있게 걸을 수 있는 동네의 구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이들 놀이공간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으면 동네가 재미가 없고, 걷기에 흥미로운 동네라고 소문난 곳들은 아이들 놀이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으니 생활패턴과 사고방식이 이분화되는 경향이 있어요. 어른들에게 편리하고 재미있는 동시에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은 동네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앞으로 제가 지속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Q.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기 좋은 동네는 어떤 동네일까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제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동네는
아이가 커서도 밖에서 잘 놀 수 있는 동네예요.
저는 아이가 커가는 과정 속에서도 같은 동네에서 지속적으로 놀 수 있고,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도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동네에 사는 게 꿈이에요. 의외로 많은 부모님들이 동네를 고를 때 결국 사는 곳(Living)인데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학군이 좋은 동네도 의외로 살기엔 열악한 곳들이 많죠.
그 외에 살기 좋은 동네의 요소를 생각해본다면, 마을버스가 연결되어 있고 시장이 가까이에 있어서 제가 필요한 것들을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고 놀이터들이 주변에 있는 동네라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제가 걸어서 필요한 것들을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는 동네죠.
Q.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동네,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부모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웃으며) 민원?!!! 민원을 꼭 넣지 않더라도, 민원을 넣을 정도로 동네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네를 알아야 민원을 넣을 수 있거든요. 원래 그래 왔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서는 수동적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이 좋은지를 알아야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부모로서 정확한 지식, 직관, 경험을 쌓도록 노력해야 해요. 예를 들어 동네에서 놀고 있을(방치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 공간들을 가보면 전부 성인 동아리들이 쓰고 있거든요. 부모로서 그런 공간들에 아이와 함께 직접 가보고, 일정 시간을 써보는 것. 이런 것부터 조사를 하면서 동네를 스터디하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모두의 동네에는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를 잠깐 찾아온 이방인도 있고 낮에는 빠져나갔다가 밤에만 돌아오는 직장인도 있고, 하루 종일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일상을 동네에서 보내는 핵심 동네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정작 동네를 아이들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대화와 시선은 많지 않죠. 최이명 박사님과 Play Fund가 함께 15개월 동안 진심을 다해 연구한 놀세권 연구(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가 그 대화를 여는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lay Fund는 부모님 누구나
쉽게, 구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우리 동네가 아이가 뛰어 놀기 좋은 동네인지, 어떤 동네가 좋은 동네인지
알 수 있도록 놀세권을 알리고, 놀세권 체크리스트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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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서울숲놀이터, 북서울 꿈의숲,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박 2일 캠프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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