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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Oct 16. 2018

내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품과 대화하는 시간

엄마로, 헬로우뮤지움 아트동동 토들러반에 다녀와서

어른의 시선과 투자자의 시각으로 헬로우뮤지움을 이해했던 미 매니저가 아이를 데리고 아트동동 토들러반에 다녀왔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의 시선을 같이 따라가며 느꼈던 점을 담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헬로우뮤지움 역삼동 시절부터 수십 번 공간을 오가며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아이들의 움직임, 표정, 대화들을 옆에서 들으며 헬로우뮤지움이 아이들에게 좋은 곳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직접 경험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보면서요. 그런데 내 아이가 직접, 아트동동에 참여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헬로우뮤지움의 금호동 공간이 생길 때쯤 뱃속에 있었던 아이가 태어났고, 어느새 컸습니다. 감사하게도 헬로우뮤지움에서는 조금 더 어린 친구들을 위한 아트동동 토들러반이 생겼습니다. 아트동동에 갈 수 있을 날을 고대하였는데, 조금 앞당겨 갈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번엔 아이의 손을 잡고 헬로우뮤지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부모의 마음으로 미술관을 경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진행 간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긴 하지만요..

헬로우뮤지움 아트동동은 90분 동안 5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작품연계 예술활동과 체험활동이 포함된 감상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헬로우뮤지움 아트동동 토들러반은 60분 동안  3~4세까지의 아이를 대상으로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공간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곳

헬로우뮤지움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갈 때, 아이들 눈높이의 흥미로운 사이니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곳은 너희들의 공간이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따뜻한 이미지들로 채워진 계단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크게 “Hello”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헬로우뮤지움에 대한 저의 첫 번째 기억입니다.  

신발을 벗고 미술관 곳곳을 맨발로 돌아다니다, 발도 씻을수 있는 곳. (사진제공: 헬로우뮤지움)


헬로우뮤지움은 입구뿐만 아니라, 공간 곳곳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곳입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아이들이 올라가기 편한 높이의 계단과 작품 옆 낮게 손글씨로 쓰여있는 작품 설명, 중간중간 놓여있는 작은 의자들.  아이들 화장실 안에 발을 씻을 수 있는 곳, 발을 딛고 올라가면 더 넓은 캔버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들, 옥상에 올라갈 때 해를 가릴 수 있는 큰 모자까지, 열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는 세세한 환대의 장치들이 아이들을 맞이 합니다.

공간 곳곳에 놓여있는 작은 의자들과 손글씨로 써있는 친근한 작품 설명 (사진제공: 왼쪽_헬로우뮤지움, 오른쪽_미매니저)

 

머리로만 이해했던 따뜻한 환대를, 아이를 데리고 가보니 바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 힘든 나이기도 해서, 실은 미술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아이는 신발을 벗겨주니, 집으로 들어가듯 편한 자세로 공간에 들어가고, 제일 먼저 일층에 눈에 보이는 책으로 달려가 익숙한 그림책을 꺼내어 공간 구석에 앉습니다. (물론 이 책을 오래 보고 있진 않습니다) 구석에 앉아 있다가 분홍색 플러피를 보고는 뛰어들어가 만져 보기도 하지요. 이 모든 과정이 미술관에 들어갔을 때부터 경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키즈카페 같은 화려한 장치들이 있었던 건 아닌데,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 공간이 내가 누벼도 되는 곳임을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공간에 있는 내내 아이는 앉아도 보고 뛰어도 보고 걸어보기도 하고, 작품에 올라가기도 하면서 공간과 금방 친해졌습니다. 아이들이 공간을 누벼도 엄마인 내가 불편하지 않은 미술관, 세세한 배려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책을 만나니 바로 집어들고,  줄잡고 작품으로 올라가고 . 넓은 챙 모자를 쓰고 옥상으로 가는게 자연스러웠던

 

작품을 일상과 연결하는 시간.

헬로우뮤지움에서의 현대미술전시는 항상 저에게 낯선 경험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친숙한 소재’를 택하고 있지만, 현대 미술 작품은 난해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번 “No War” 전시 때는 그 괴리감이 가장 컸고, 이번 “헬로 초록씨” 전시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같이 작품을 찬찬히 따라가 보니, 멀리서 작품을 봤을 때 난해한 것과 다르게 나의 일상과 연결된 것처럼, 작품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지만, 일반인으로서 미술관과 작품이 여전히 낯선 저에게도 조금은 더 친근하게 작품을 대하고 일상과 연결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음식으로 만들어먹는 잡곡들을 만져보니까 어떤지, 코끼리의 모습은 어떤지, 소는 사람을 도와 이런 일을 하는데 그 소에게 고마운지 등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고 멈칫하던 표정이, 대화가, 대화 끝의 시선이, 작품을 만지고, 보고 들었을 때 감각이 일상과 연결된 느낌이었어요. 토들러 반 아트동동은 아이들이 혼자 선생님 말을 이해하기 어렵고, 혹은 선생님의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가 동행하는데요, 나중에 여쭤보니 프로세스는 거의 동일하고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조금 더 쉽게, 재미요소를 넣어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같이 참여할 기회를 얻은 부모인 제가 더 도움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아트동동 토들러반의 시작은, 선생님과 둘러앉아 우리가 오늘 미술관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미술관을 친구들과 잘 즐기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에 대해 이야기하죠. 물론 아이들은 집중하기 어려워하지만, 그 이후로 작품을 손으로 잡고 끌어내리거나 과격하게 다루는 일은 없었어요.


아트동동 토들러반의 시작. 작품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시어) 이야기해요

작품으로 이동하고서는 각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시선을 멈추고, 소리를 듣고, 손으로 만져 느낌을 기억하고, 상상합니다.


손채수 작가님의 이번 작품에선, 지구, 여러 대륙에서 인류의 문명 발달에 협력해준 대표적인 곡식과 가축들을 추려 황토 천 위에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곡식들을 직접 만져보고,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새깁니다. 시선으로, 소리로 기억하는 그 무언가가 땅을 사랑하고,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진 못하겠지만,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곡식을 마주했을 때, 이때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친구들은 너른 밭이나 논, 가축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요.

전시장으로 뛰어들어가는 아이들, 만지고 들여다 보는(?) 아이들.

우주선 지구호 사용 설명서라는 작품을 대할 때는, 아이가 눈으로 작품을 스캔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여길 올라갈 수 있는 곳인지를 보는 것이죠. 만지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솔직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작품이 아이들의 시선을 머물게 하고, 그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하게 한다는 건 신기한 일입니다. 키즈카페에 가면, 시설마다 예상되는 활동이 있어요. 근데 이 작품은, 예상되는 활동이 없습니다. 아이의 발걸음이 닿고 무언가 잡으면 매번 다른 장면입니다. 올라가다 보면 밑의 공간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아이는 이 공간을 유독 좋아하였는데, 발끝을 들고 서서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체크도 해보고, 털썩 주저앉아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과는 이 공간에 들어가서 대화를 시작했는데요, 이끼를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이 안에 무엇이 살지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는 꼬물이라고 해서, 모두를 웃게 했는데요, 초록색에 사는 초록색 애벌레를 떠올리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했어요.

우주선 지구호를 만난 지구별 아이. 발끝을 들어 높이감도 체크. 태어나서 처음본 이끼를 마주하는 자세.


거대한 공기조형물 플러피를 만났을 때도 아이는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부드럽지만, 힘겹게 숨 쉬는 플러피를 만져보고,  TV 속 플러피를 쳐다봅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쓰다듬어 줘야 할 것 같아 계속 만지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그냥 부드러워서 그랬을 지라도, 아이는 그 촉감을 기억하고 어떤 존재에 쓰담쓰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플라스틱 SEA 구하기 작품을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북극곰을 구해주고 싶어 하는 것. 도슨트의 질문으로 아이들은 벽속 북극곰을 공감했습니다.

영상속 플러피를 가르키는 아이, 북금곰을 보고 있는, 쓰레기를 주워보는 아이.


아트동동 토들러반을 하면서, 특히 아이가 어떤 생태적인 의미를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특히 토들러반이었으니까요. 다만, 오늘의 즐거운 경험이 일상에서 곡식을 대하고, 플라스틱을 대하고, 이끼를 만날 때 어떤 감정으로 남는 것, 시선을 멈추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랬습니다.

 

이런 시간이 가능하게 된 건, 아이가 아이의 속도로 찬찬히 해볼 수 있게, 듣고, 만지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작품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도슨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언어적 이해력은 떨어졌겠지만, 아이들을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질문하고 기다려주는, 눈을 맞추고 함께 따라 하며 미술관 경험을 같이 해주는 어른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삶이 풍성해질 수 있는 그릇을 넓혀주는 일.

헬로우뮤지움 '숨은 미술관 찾기' 책에 보면, 관장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예술이 아이들의 삶이 풍성해질 수 있는 어떤 그릇을 넓혀주는 일을 한다고. 삶에서 예술이 ‘생산적’인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더라도, 삶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어떤 사물, 장면, 상황을 만났을 때 인지할 수 있고, 나름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조금은 다른 생각까지 해볼 수 있게 되는 것. 저는 아이가 작품을 만날 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관에서 아이의 여러 표정을 만나게 된 게,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어떤 순간은 집중하는, 골똘히 생각하는, 뿌듯해하는, 낯선, 신난, 의지에 찬 표정들, 그냥 어떤 신나는 경험을 할 때와는 또 다른 표정이었습니다. 풍요롭게 느끼고 표현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 그리고 헬로우뮤지움엔 질문하고 기다려주면서 아이들의 속도로 그 과정을 함께 해주는 따뜻한 어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떨땐, 집중하고, 뿌듯해하기도, 무언가 발견하기도 하는 평소에 보지 못한 표정들.




헬로우뮤지움 홈페이지에 아트동동은 전문 에듀케이터와 함께하는 놀이형 체험전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어린이들은 오감을 깨우는 놀이형 작품 감상으로 작품을 쉽게 이해하고, 예술과 연계한 창의 체험 교육을 통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의 말로 다시 해석하자면, 아이들의 시선과 속도로 작품과 대화할 수 있게 돕는 따뜻한 어른과 함께, 일상을 조금은 다른 감성과 생각으로 채워보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그 일상은 풍요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풍요로운 일상, 어떤 경제적인 것이기라기보다 아이들의 정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투자자로서의 옷을 벗은) 엄마로서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토들러반은, 그런 저희 아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공간이자, 작품이자, 시간이었어요. 내 아이에게 첫 번째로 말을 걸어준 미술관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더 많은 아이들이 미술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미 매니저의 아트동동 체험기, 어떠셨나요?


이 뿐만 아니라 헬로우뮤지움 에듀케이터가 추천하는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북서울 꿈의 숲,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1박 2일 캠프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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