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만난 제인 구달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
[People we see]에서는 Play Fund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함께 나눈 대화를 전합니다. 일상적으로, 업무 차원에서, 사적으로, 혹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생각과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서 빌려 쓰는 것이다. 단기적인,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희생하지 않도록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관심과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며 (Every individual matters) 우리는 매일 변화를 만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Every individual makes difference everyday)."
지난 11월 홍콩에서 열린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첫 아시아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첫 행사는 <Screening and Dialogue with Jane Goodall> 세션이었는데요. 1960년대 탄자니아 곰비(Gombe)에서의 첫 연구 생활부터 제인 구달의 일생을 기록한 약 100시간의 아카이빙 영상 풋티지를 편집해 만든 다큐멘터리 <JANE>을 상영하고 제인 구달과 대담을 나누는 행사였습니다. 위인전으로만 접했던 제인 구달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니, 페스티벌에 가기 전부터 제일 기대했던 세션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누구든지 제인 구달을 만나면 기쁨과 감동에 압도되어 울게 된다면서 이러한 현상을 The Jane effect라고 칭했는데요. 민 매니저가 직접 경험한 그 감동의 순간을 공유합니다.
제인 구달(제인)의 일생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책, 방송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JANE>처럼 초기 답사 때부터 실제 제인의 모습만을 가지고 만든 콘텐츠는 없습니다. 26살 때 탄자니아 곰비(Gombe)에서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지난 50년 이상 축적해온 제인의 사진과 영상을 가지고 브렛 모겐 감독이 <JANE> 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제인은 카키색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금발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채 뱀을 만날 위험을 감수하며 수풀을 헤쳐 다니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변함없이 침팬지를 관찰하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영상 내내 제인의 눈빛이 정말 인상적인데요. 호기심 가득하면서 애정이 넘치는 반짝반짝한 눈빛. 명성이나 펀딩이 목적인 필드 리서치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표정이죠. 그녀의 눈빛을 보니 학력도 경험도 없는 영국인 26세 여성에게 침팬지 연구의 기회를 준 루이스 리키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인 이전에 침팬지를 연구한 학자들은 모두 남성이었고 고작 수개월 정도의 단기 연구만 진행되었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기존의 것에 휘둘리지 않는 신선한 관점과 동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인이 적격이었죠.
Open mind, passion for knowledge, love of animal
and monumental patience
다른 연구자들처럼 제인에게도 두려움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침팬지와 가까워지기 전까지 크고 작은 사고도 있었고 정글 속에서 말라리아, 기생충, 폭풍우 등 온갖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에겐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아프리카와 침팬지의 곁, 숲 그리고 자연 전체가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자연과 가까워지는 기회로 만들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침팬지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던 어느 날, 침팬지가 제인의 숙소에 있는 바나나를 훔쳐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인은 침팬지가 더 이상 바나나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침팬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매개체로서 바나나를 이용합니다. 바나나를 상자에 숨겨 침팬지들이 어떻게 가져가는지 관찰하고 손으로 바나나를 들고 침팬지와 접촉을 시도하죠. 침팬지를 단순히 관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다면 이렇게 용기 있는 발상의 전환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인이 확신을 따를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인의 엄마인데요. 제인이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대해 가지는 호기심이 남다르다는 걸 알고 호기심을 키워갈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해주었습니다. 제인이 2살 때 흙과 지렁이를 가지고 집에 들어와 침대 위에 올려두었을 때도 혼을 내지 않고 왜 지렁이에게 흙이 필요한지 친절히 설명해주고 함께 정원에 놓아주지요. 제인이 23살 때 친구 가족이 운영하는 케냐의 농장에 가려고 할 때도 주변 사람들이 여성 혼자 가기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엄마가 지원군이 되어줍니다. 제인이 침팬지를 연구하러 처음으로 곰비에 갈 때에는 영국 정부가 제인 혼자서는 아프리카 숲에 갈 수 없다고 하자 심지어 함께 따라가지요. 수개월에 걸친 첫 리서치 기간을 함께 하면서 제인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용기를 줍니다. 제인은 지금의 내가 나 다울 수 있도록 지지해준 단 한 사람을 "엄마"라고 이야기합니다. 1960년대에 "여성은 ~해야 해"라고 단정 짓지 않고 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존중하고 응원하고 지지해준 엄마가 있어서 지금의 제인이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관련 영상: Jane Goodall on her mother)
My family has very strong women. My mother never laughed at my dream of Africa, even though everyone else did because we didn’t have any money, because Africa was the ‘dark continent,’ and because I was a girl. - Jane Goodall
현재의 제인은 활동가입니다. 1977년 the Jane GoodallInstitute를 설립한 이후 약 30년 이상 어린이, 과학자, 연구자, 정부 관계자, 세계적인 리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침팬지를 보호하고 자연을 보존하도록 영감을 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84세의 나이에도 1년 365일 중 300일 이상을 전 세계를 돌아다닐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죠.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Roots & Shoots라는 프로그램입니다. 1991년에 시작한 Roots & Shoots 프로그램은 모든 연령대의 청소년들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고, 사람, 동물, 환경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포용적인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누구나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페인을 직접 시작하거나 그룹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Roots & Shoots 프로그램은 136개국에서 열리고 있으며 약 16만 개의 그룹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인이 이 프로그램에 특별히 애정을 가지는 이유는 미래의 희망이 다음 세대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개인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제인은 미래의 주인인 어린이들이 각자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어른이 되도록 만드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Roots & Shoots 영상: http://bit.ly/janeroots)
I’m afraid for my grandchildren’s children.
Greatest hope is in next generation.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순간은 젊은 연구자를 위한 조언(Piece of wisdom for future researchers)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한 제인의 답변입니다. 머리보다는 마음과 가슴으로 연구하라는, 연구 대상을 사랑하라는 조언이었는데요. 평생 침팬지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실제 손을 잡고 터치할 만큼 교감을 이뤄온 제인의 일생을 대변하는 듯한 답변이기에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연구자라면 차가운 이성에 기반하여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연구 대상과 감정적으로 깊게 교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된 열정과 연구가 조화를 이룰 때 진짜 위대한 연구,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음 세대,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제인의 태도였습니다. 상영이 끝나자마자 어린아이들이 앞다투어 제인에게 질문하기 위해 계단 한편에 줄을 지어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초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 질문하기가 저에겐 부담스러웠는데, 제인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자신의 차례까지 마이크가 오길 설레 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떤 환경에 노출되면 이렇게 거리낌 없이 겁내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는 건지 궁금했죠. 게다가 아이들이 질문하는 것 자체에 감동할 줄 알았던 제인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과하게 차갑지도 않았죠. 어른의 질문에 대답하듯 차근 차근 답변을 해주었고 이 모습이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질문의 우선권을 주지만, 과한 친절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 존엄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희망이 아이들에게 있다고 굳게 믿고 Roots & Shoots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연령의 청소년들을 다음 세대의 리더로서 존중하는 제인의 모습이 짧은 Q&A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토리텔링에 대한 제인의 대답이 와 닿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행동에 옮기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데이터, 연구, 발견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지구는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서 빌려 쓰는 것이기에 단기적,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희생하지 않도록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과 맞닿아 있었죠.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관심과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는 제인의 이야기. "동물이든 사람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며 우리는 "매일" 변화를 만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제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Every individual matters.
Every individual makes difference everyday!
제인은 항상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분신처럼 침팬지 인형과 컵을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침팬지 인형과 침팬지 컵을 들고 오셨는데요. 탄자니아 곰비의 침팬지들과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항상 마음이라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출장을 오기 전에는 저에게 탐험가(Explorer)는 저와는 전혀 다른, 지구 반대편에 사는 별개의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사회와 동떨어져 연구실 밖을 나오지 않고 연구만 하는 그런 덕후들이라고 생각했죠. "지구를 보호하자"는 이야기도 중요하긴 하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인 구달을 만나면서 탐험가는 동물과 환경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이자 우리 모두가 사는 지구를 위해 개개인의 크고 작은 선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일생을 바치는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지구의 변화를 만드는 의사결정을 매일 선택하는 일상 탐험가 (Everyday Explorer)로서 보다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반성도 했습니다.
80세 넘는 나이에도 365일 중 300여 일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Next Jane Goodall이 될 수 있다는 영감과 매일매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제인 구달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내셔널 지오그래픽 Explorer Festival 참관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감상글, 서울숲 놀이터, 북서울 꿈의 숲,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1박 2일 캠프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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