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모든 것이 VIVID 했던 ROBOCON
[VIVISTOP] 한 문장으로 미리 보기
아이들의 호기심을 존중하는 전문가들이 아이들 스스로 작업을 통해 호기심을 키울 수 있도록 제대로 기획해서 만든 오픈 스페이스
태풍 JEBI가 일본을 휩쓸기 직전 주말, 일본 도쿄 Kashiwanoha지역에 있는 VIVISTOP에 다녀왔습니다. VIVISTOP에 매일 드나드는 아이들이 고심하여 만든 로봇들이 출전한 로보콘을 보기 위해서였는데요. 로보콘을 지켜보는 내내 정말 행복하였어서, 감동을 조금이나마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로보콘이 있기 전날 VIVITA의 서비스 플래너인 Ayumi Ono가 두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설명해준 내용과 행사 당일 공간에서 보고 느낀 점을 담았습니다.
VIVITA(https://vivita.co/)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팀입니다. 팀의 대부분이 개발자,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VIVISTOP은 VIVITA가 만든 “공간”입니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멋진 문장으로 VIVISTOP을 설명해두었습니다.
VIVISTOP is a physical space designed to fuel kids’ curiosity
아이들의 호기심에 연료를 주입하기 위해 디자인된 공간이라니요. 요즘 Playfund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가 “호기심”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재료 도구에 대한 호기심, 공간에 대한 호기심, 동네에 대한 호기심 등이 아이들을 조금씩 재미있는 세계, 색다른 세계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문장을 보는 순간 공간에 대한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상상력에도 연료를 주입한 걸까요?:))
VIVISTOP은 아이들이 무료로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활용하여 각자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어른들에겐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기 전 단계의 아이디어가 미래의 크리에이터인 아이들을 통해 검증되고 진화하는 R&D센터가 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에게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공간이기보다 미래의 사용자가 될 아이들, 항상 무언가 만들고 있는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피드백을 통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하는 공간으로 운영합니다. 이런 기능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료로 이 공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에게 명확한 역할이 있으니까요. 또한 아이들은 친구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른들과도 협업하게 됩니다. 이 공간의 크루들은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창의적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VIVISTOP 자세히 보기 : https://brunch.co.kr/@weseesaw/137
VIVISTOP은 도쿄 중심부에서 전철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Kashiwanoha 지역에 있습니다. 도쿄 외곽이라, 조용한 마을 같았지만 대학 캠퍼스들과 스타트업들이 이주해 있었고 새로운 가족인구가 늘어나면서 아이들 갈 곳이 필요했던 지역입니다. VIVISTOP은 이 지역 내 츠타야가 만든 서점인 T-SITE 건물 2층에 있는데, 도쿄 중심부에 있는 츠타야와 달리 가족 중심의 책과 퍼실리티가 갖춰진 공간입니다. 재미있는 그림책들이 많아서 중간중간 서점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서점에서 아이들이 테키한 작업을 하는 공간과 로봇콘테스트라니, 들어가면서도 계속 의심했지만, 공간을 맞닿는 순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묘했습니다. 아마도 이질적이지만 “아이들을 환대하는 공간”으로서 공간이 사용자에게 전하고 있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환호성을 지르는 공간 옆에, 어린아이와 부모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복합 문화공간이라면 이런 공간을 말하는 걸까요?
VIVISTOP은 오픈 스페이스입니다. 파이프 구조로 구획만 나눠 놓고 누구나 열수 있는 작은 문을 만들었습니다. 소음이 신경 쓰일 법도 한데 소음을 흡수하는 어떤 구조가 있는지 소란스럽다는 느낌이 없었고, 개방적이지만 몰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공간을 방문했던 날은 행사가 있던 날이라 일상적인 공간의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공간 구석구석, 재료 선반, 작업대, 의자 하나하나 잘 디자인된 가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나무로 만들어진 이동식 재료 바(하… 이렇게 밖에 이름 붙일 수 없는가..)는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밀기 적당한 손잡이와 칸칸이 서로 다른 크기로 채워진 서랍들, 맨 위칸에는 높이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작업물을 적재할 수 있는 공간까지. 이곳엔 60여 가지의 재료들과 200여 개의 도구들이 있습니다. 특히 재료들 중 일부는 산업현장에서 쓰기 어렵게 된 재료들을 재생한 에코 머터리얼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재료와 도구들로 아이들은 450가지가 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VIVISTOP의 철학이자 특징을 6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No Curriculum. No Teachers.
No Borders. No limitations.
Kids Initiatives.
Empower All kids
The Place to Find Interests.
Opportunities to Connect to the World.
가르쳐주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도와주는 시스템입니다. 단, 이곳엔 30명의 개발자 디자이너 등 전문가 팀이 언제나 도울 준비를 합니다. 4학년 이상이면 누구든, 어떤 제약 없이 들어와서 무엇이든 해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다양한 활동들은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합니다. 공간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아이들이 흥미로운 것들을 찾고, 끈기 있게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VIVISTOP은 전 세계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에스토니아에도 공간을 준비 중입니다. 각 공간의 모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6가지의 철학은 공유합니다. 이 공간을 거점으로 아이들이 서로의 작업을 통해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6가지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이문 238 (http://dd238.kr) 이 떠올랐습니다. 특징들이 놀랍게 비슷합니다. 공간의 외관만 본다면 서로 너무 다른 곳으로 여겨지지만, 아이들을 위한 일상적인 공간으로서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이든 해볼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공간과 이 공간을 운영하는 어른들이 서포트 하는 시스템. 이런 공간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라고 쓰고 제가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읽습니다)
로보콘은 VIVISTOP에서 3회째 진행되고 있는 콘테스트입니다. 아이들이 각자가 만든 로봇을 출전시켜 링 위에 공을 출발선까지 가져오면 점수를 얻는데요, 각 공의 위치가 얼마나 어려운 곳에 있느냐에 따라 배점이 다릅니다. 흥미로운 점은 매회 로봇들이 출전하는 링의 형태가 이전 회차 WINNER의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인데요. 첫회에 우승했던 친구가 두 번째 해엔 물 위에서 하는 경기를 원해서 크루들이 장비가 물에 들어갈 손상될 위험, 서점 내 위치한 공간에서 물이 흥건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물 위에서 하는 경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2회 때 우승했던 친구는 더 장애물이 많은, 그래서 공이 숨어있는 링을 원했는데 이번에 출전하는 친구들이 비교적 비기너들이 많아 다소 수월한(?) 형태의 링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매회 로보콘에서는 아이들에게 로봇을 만드는 기본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대로 그냥 만들면 점수가 낮은 공만 가져올 수 있다고 해요. 장애물을 거쳐 고득점 공을 획득하려면 아이들이 로봇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래서인지 정말 다양한 모양의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적절한 수준의 가이드는, 더 많은 시도 해 볼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바닥 놀이 프로젝트의 툴킷을 아이들이 받았을 때도 툴킷 그대로 만든다기보다, 그 툴킷을 지지대 삼아 이런저런 다양한 형태의 바닥을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보콘이 아이들 스스로 보기에도 훨씬 재미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로보콘이 진행되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건 “잘 기획된 세팅”이었습니다. 크루들이 로봇이 몇 초에 어떤 공을 집어넣었는지 현황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었고, 흐트러짐 없이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과한 경기장을 만든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충 만들지 않은 적절한 경기장 세팅, 아이들이 사회자로도, 사진기자로도 참여하였지만 낯설지 않고 운영 스탭 같았던 분위기, 구경하는 사람들, 출전하는 사람들 모두가 경기에 집중하게 만든 자리배치 등 학예회 같지 않으면서 과한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크루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이 행사를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전문적인 노하우가 있는 팀이 하나하나 뒤에서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이 세팅에서 가장 빛났던 건 참가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로봇을 링에 올리기 전 마음가짐을 말한 뒤, 로봇을 출전시켜 최선을 다하고 (로봇 움직임을 거의 따라 움직이며), 다 끝나고는 소감을 말하는데 (물론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응원과 시선이 참가한 친구들을 향합니다. 이렇게 몰입감 있게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세팅이었는데 자연스럽기까지 했던 건 화려한 공간을 대여해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항상 작업했던 공간에서 진행한 덕도 있었겠지요.
로보콘이 진행될 때 저에게 또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 경기를 옆에서 지켜보던 꼬맹이 아이들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동생일 수도, 지나가던 아이일 수도 있었는데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기 어려워 보이는 친구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 앉아 경기를 내내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자꾸 앞으로 가서 삼각뿔이 링에 거의 가까이 닿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는데 로봇이 움직이는 내내 아이들의 신기한 눈빛과 언니 오빠를 향한 존경의 눈빛이 번갈아 보이더군요. 공이 잡히지 않을 땐 같이 아쉬워하고, 아슬아슬할 땐 같이 숨죽여 지켜보는 꼬맹이 아이들을 보면서, 이 친구들까지 같이 공간과 행사를 함께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제가 때때로 잘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커뮤니티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들도 4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을 드나들겠구나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공간을 완성하는 건 어른들의 기획과 전문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고심한 기획과 가이드가 아이들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가끔 이문 238에 오신 분들도, 재료와 도구만 있으면 공간을 만들 수 있겠네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프로그램, 어떤 콘텐츠가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가, 아이들의 작업 테이블을 어떻게 세팅하고 있는가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어른들의 기획이 어떤 기준으로 세팅되어야 아이들의 잠재력이 극대화되는지, 아이들과 함께 테스팅해보며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문 238도 재료 하나, 도구 하나를 선정하는 것부터 아이들의 작업 동선, 작업 위치 등 열거하면 수백 가지가 될 것 같지만 매니저분들의 고민이 들어가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VIVISTOP은 바다 건너, 그런 공간을 또 한 번 마주하는 반가운 기회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모든 것들이 VIVID 했던 VIVISTOP.
4회 로보콘에 한 번 더 가고 싶습니다. 그땐 또 아이들이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요.
이 뿐만 아니라 서울숲놀이터, 북서울 꿈의숲, 서울시립과학관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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