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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Apr 03. 2021

한번 한 번 써보세요.

한국어 너무 어려워요

-오만 자 중에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리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배워요?
도대체 전하의 글자는 몇 자나 되십니까?
오천자요? 아니면 삼천자? 천자입니까?     

-스물여덟 자     

-천 스물여덟 자요?

-아니 그냥 스물여덟 자

-(두둥, 많이 놀람)  이 헛간 안에 있는 물건만으로도 스물여덟 개가 넘습니다. 글자는 세상을 다 담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만 가지 아니 십만 가지 백만 가지도 다 담을 수 있다!!!

                                                                                                    - 2011년 뿌리 깊은 나무 중-



  약 10년 전 방송했던 ‘뿌리 깊은 나무’의 한 장면이다. 참으로 소름 돋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외워야 하는 게 28개밖에 없고 그걸로 모든 걸 쓰고 말할 수 있다니 말이다. 당시 드라마를 보면서 쭈뼛쭈뼛 닭살이 돋았다. 소위 말하는 국뽕에 차올랐다.      


‘그래 한국어야말로 가장 위대한 언어야!’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     


  한글과 한국어가 위대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장면만큼 읽고 쓴다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이다. 언어의 단순 표기와 실제 활용을 구분하지 않은 나의 착오도 있다.      


  한글의 표기와 독음은 세계 어느 언어보다도 쉬울 것이다. 외울 것도 많이 없고 모양도 복잡하지 않다. 실제로 한국어 학급 아이들도 글자를 금방 읽고 쓴다. 하지만 한글 표기가 다가 아니다. 한글이 한국어로 넘어가는 순간 난이도는  달라진다.      


  한국어 학급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한국어가  어려운 언어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말과 표현이 다문화 학생들에겐 유추 조차 할 수 없는 외계어다.  역시 쉽게 사용하는 표현을 설명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는 누군가에겐 당연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최근 2학년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그런 상황이 있었다. 저학년 다문화 학생들은 아직 발달 중이다. 경험이 부족해 배경 지식도 넉넉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모국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적다. 그런데 한국어로 단어를 배우고 표현하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그러다 보니 한국어 의사소통의 기본 단위인 기초 단어 공부에 시간을 많이 쏟는다. 단어를 익히는 방법은 우리가 영어 단어를 혔던 방법과 비슷하다. 여러  읽고, 쓰고 하게 한다.


   시간도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공책에 쓰고 있었다.   쓰면 쉽게 잊으니  번씩 쓰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딴짓을 하는  아닌가?  아이의 공책을 들여다보니  번만 적혀있었다. 겨우   적고  친구 어깨너머 구경하고, 겨우   적고 뒤돌아 다른 친구를 쳐다봤다. 아이의 그 행동이 신경 쓰였다. 다문화 학생이라고 해서 산만한 수업 태도를 눈감아 줄 수 없었다.

바로 앉으세요! 선생님이   쓰라고 했죠?,   쓰라고 했어요. 쓰세요.’ 그랬더니 아이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썼다.      


  집중력은 얼마  갔다. 다시 산만한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강한 어조로 ‘   밖에  썼어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쓰라고 했어요.’      


  이해가 안 됐다. 나는 분명 세 번 쓰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아차 싶었다. 계속 ‘이제 한번 공책에   써보세요.’라고 했던 것이다. 한번이 나의 입버릇  하나인데 그걸 ‘  쓰세요.’ 앞에 붙여 말했다. 그러니  아이가 헷갈릴 수밖에... 상황이 재미있었고 한편으론 당혹스러우면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는 내가 얼마나 이상했을까?   쓰라고 했다가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쓰라고 했다가 다시   쓰라고 했다가 많이 억울했을 것이다.

※ ‘번’이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한 번’, ‘두 번’, ‘세 번’과 같이 띄어 쓴다. ‘한번’을 ‘두 번’, ‘세 번’으로 바꾸어 뜻이 통하면 ‘한 번’으로 띄어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한번’으로 붙여 쓴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라는 문장에서 ‘한번’을 ‘두 번’으로 바꾸면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한번’을 붙여 쓰지만, “한 번 실패하더라도 두 번, 세 번 다시 도전하자.”라는 문장에서 ‘한 번’은 ‘두 번’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하므로 ‘한 번’으로 띄어 쓴다.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한번 ‘ 처럼 한국어 아주 작은 차이로 다른 의미를 뜻하는 표현이 많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서 깊이 생각해본  없다.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칠  언어적으로도 민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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