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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an 03. 2023

할머니 집에서 잘래

"할머니 집에서 잘래에!!

  엄마아빠 없어도 돼, 혼자 잘 수 있어!!

  곰이 없어도 돼!!

  할머니랑 잘 거야 아~!!!"


쭈가 고집을 피웁니다.

신년맞이 할머니댁 방문에 사달이 나고야 말았어요.

쭈는 고집도 있고 떼쓰기도 가끔 하지만 엄마 말을 귀담아듣고 참을 줄 아는 아이예요.

그런데 할머니랑 자는 건 도통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언뜻 보면 할머니와 엄청 먼 거리에 살아서 왕래가 잦지 않은 것만 같은데요.

차 타고 20분 거리, 옆옆 동네에 계세요.

거기다 유치원이 이른 방학에 들어간 덕분에 쭈는 불과 이틀 전까지 할머니 집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쭈야, 할머니가 바쁘셔서 그래. 오늘은 할머니랑 약속만 잡고, 약속한 날 자러 오자."

"싫어어어어!!! 할머니랑 잘 거야 아~!! 할머니가 내일 아침 데려다주면 되잖아아~~!!"


손녀의 눈물바람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척 난처한 표정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얼른 부둥켜안고 '그러겠노라.'라고 하고 싶지만,

자녀 교육에는 물러섬이 없는 딸내미 눈치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시는 거죠.


쭈는 저를 이길 수 없단 걸 알아요.

훈육을 할 때 저는 굉장히 단호한 엄마여서요.

아이 입장에선 때론 넘을 수 없는 벽 같이 느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지만,

용납되지 않는 상황을 그냥 넘길 수는 없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엄마의 선을 너무나 잘 알아요.

지금이 물러서야 할 때란 것도요.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쭈가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에 안쓰러움이 가득해요.

할머니의 안쓰러운 눈빛에 애써 잡은 마음이 무너질까, 아이를 얼른 차에 태웁니다.


돌아오는 차 안은 눈물 삼키는 훌쩍임으로 가득합니다.

저 훌쩍임 안에 엄마에 대한 원망 한 스푼이 섞여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릿하네요.

슬며시 딸아이에게 말을 건네 봅니다.   


"쭈야, 할머니 집에서 자는 게 그렇게 좋아?"

"응, 당연하지."

"할머니 집에서 자면 어떤 게 좋아?"

"할머니가 옆에 있는 게 좋아."


의외였어요.

저는 기껏해야 텔레비전을 많이 본다거나,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있다거나, 응석을 부릴 수 있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쭈는 그냥 할머니 옆에 있기만 해도 좋다는 겁니다.

잘 때 토닥여 주는 것도, 할머니 냄새도, 목소리도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쭈였어요.


 




차에서 까무룩 잠든 쭈를 안고 집에 들어옵니다.

두꺼운 외투를 벗기고 이불속에 고이 눕히니, 은은한 수면등 아래 퉁퉁 부은 두 눈이 보이네요.

녀석, 어지간히 서러웠나 봅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현이에게 책을 한 권 읽어주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친 뒤 현이도 재웠어요.

조용한 거실에 이제야 저만 남았습니다.


차에서 쭈와 나눈 대화가 내내 마음에 걸려요.

할머니랑 같이 있는 게 좋다는데, 저는 그게 왜 이상한 걸까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론 와닿지 않는 게 참 이상했어요.


"그거야 당연하지. 네 할머니랑 너는 그런 관계 아니잖아."


다음 날, 어제 잘 들어갔는지 안부를 묻는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저는 답을 얻었어요.

엄마가 아주 명쾌하게 말해 주시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저와 저희 할머니는 절대 그런 관계가 아녔으니 말입니다.

할머니라는 존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의 크기'라는 개념이 애초에 제겐 없었으니 말이죠.


저희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는가 하면,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국밥집 맏아들'의 대사로 짧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고약한 노인네' 한 마디로요...


그러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던 겁니다.

제가 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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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기일을 몇 번 보낸 건지 생각이 나질 않아요.

그만큼 할머니를 잊고 지냈단 거겠죠.

그런데도 이따금씩 떠올리고야 맙니다.  

어김없이 가슴 한편이 허전해지네요.

 

그러고 보면 저희 할머니는 참 힘이 세죠.

아직까지도 손녀딸을 이렇게 아프게 하시니 말입니다.


인색하고 고약한 할망구 같으니.


전 단 한 번도 쭈처럼 고집을 피워본 적이 없어요.

할머니의 싸늘한 눈빛 아래에서 고집이란 걸 피우기엔 제 간이 그리 크지 못하거든요.

 

쭈의 고집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어쩌면 할머니에게 한 번도 응석을 부려보지 못한 제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쭈가 부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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