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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n Aug 17. 2024

갈등과 갈증의 파도 속


이달 Y의 출근길은 가뿐하다.

김팀장이 발령받아 해외로 갔기 때문에.

그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거침없이 말하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다.

성격도 급하. 오전 지시한 일은 퇴근 전까지 보고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퇴근하면 다음 날 아침부터 분위기가 살벌하다.


김팀장은 Y를 '386 MZ'라 불렀다.

일 시작 전 준비 시간이 필요한 Y의 성향을 이렇게 비꼬았다.


Y는 지시받은 일을 당일에 잘 끝내지 못한다.

꼼꼼하고 차분한 스타일로 예열에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만, 일 수행 결과는 꽤 괜찮다는 평이다.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니 내용의 깊이도 있고,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니 오류가 거의 없다.


이런 성향은 박팀장과는 코드가 잘 맞았다.

박팀장은 시간은 걸리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Y를 예뻐했다.

대부분의 보고서가 큰 수정사항은 없고, 한두 번 리뷰하면 마무리지을 수 있어 전체 시간이 줄었다.



김팀장은 박팀장과는 다르다. 질보다는 속도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늘 Y가 못마땅했고 여지없이 불편을 드러냈다.


매일 김팀장을 봐야 하니 스트레스받았는데,

필터링 없는 말에 명치가 묵직했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이제 한결 낫다.




한기가 막 베는 바람에 홀가분한 마음이 더해져,

"요즘 같으면 회사를 십 년은 더 다니겠다. 훗~"

수요일 출근길 혼잣말이 뱉어진다.



그런데, 아뿔싸!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져 있다.


2주 전 해외 고객사에 약속한 샘플이 오늘 꼭, 꼭, 꼭 발송되어야 하는데,

아직 사무실에 전달되지 않은 거다.

어제저녁 와 있기로 한 게 무슨 연유인지 어긋났다.


고객 약속을 지키려면 오후 2시까지 보안 반출해 해외 배송 업체에 인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늦어도 오늘 오전 9시에는 평택 라인에서 사무실로 발송해야 한다.

11시가 넘은 지금에서야 그러지 않았음을 알게 된 Y는 열이 오른다.


‘하,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왜 아무 말도 안 해 준 거지? 어떤 생각으로 일하는 거지?’

모니터에 고정한 시선 사이로 미간 주름이 잔뜩 엉킨다.



하지만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개발 샘플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해 본다.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수화기를 들었다.


“장대리님, 어떻게 된 건가요? A 고객에게 나갈 샘플이 아직이라는데요?”


전화기 너머로 장대리의 한숨이 전해 온다.

"그게 말이죠. 하, 저희도 참 힘드네요. 어제 오전 샘플 제작은 무사히 끝났어요. 근데, 샘플 간이 신뢰성 시험으로, 20개 중 6개를 랜덤하게 테스트했는데 2개에서 잠재 불량이 검출되었대요. 품질이 절대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고 버티네요."


샘플 제작 후 시범삼아한 간이 신뢰성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거다.

개발과 품질 담당자 간 갈등으로 샘플이 갈 곳을 잃어버렸다.


품질은 강경하게 개선 방안을 갖고 오든, 다시 제작하든 하라고 하고,

개발은 잠재 불량이지 확정은 아니니 샘플 반출에는 문제없는 거 아니냐 하고.

두 부서 담당자 대립이 갈등으로 번져 어제 오후부터 제작을 마친 샘플은 얼음 상태다.


Y는 일정 맞추려 꼼꼼하게 준비하고 2주 동안 매일 상황을 체크했는데,

안심한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오늘 꼭 나가야 할 핵심 고객의 중요 샘플은 그렇게, 일정이 어그러졌다.

"나만 이 일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네. 휴~"


고객사 담당자에게 아주 정중한 사과 메일을 쓰기 위해 Y는 '메일 쓰기'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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