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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Oct 29. 2020

마지막 선물

사랑을 느끼는 시간!

 

요즘 방영이 되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시청자가 사연을 보내면 그 내용에 맞춰 집을 구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집들이 있고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을 뛰어넘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석양을 바라보며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다락방에 편하게 앉아 책을 보며 여유로운 휴일을 보낼 수 있는 집도 있다.


 언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뼈대만 앙상한 공간 금방이라도 유령이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고 난 뒤 들여다본 아파트는 정말 근사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건축이란 짓다 말면 흉물이 되지만 완성하면 훌륭한 건축물로 탈바꿈한다. 집도 건축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완성해 나가는 곳이다. 아무리 대궐 같은 집도 애정이 없고 함께할 가족이 없다면 삭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달려가면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집이 아닌가 싶다.

 몇 해 전에 상영되었던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혜원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한다. 그런 그녀가 팍팍한 현실을 떠나 찾은 곳은 어머니와 살던 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혜원은 어머니가 해 주셨던 요리를 해 먹으며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낀다. 처음 봤던 그 차갑기 그지없던 집은 혜원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온기를 찾아간다. 그것은 혜원도 마찬가지다. 웃음기 없던 얼굴은 그곳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으며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혜원은 봄이면 쑥과 고사리로 음식을 해 먹고 가을철이면 떨어진 밤으로 달달함을 채우며 감을 깎아 매달아 곶감이 익어 가는 겨울을 기다린다.

 이제 그 집에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는 혜원도 시험과 취업에 대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는 혜원도 없다. 다만 따뜻하게 위로받은 혜원만 있을 뿐이다.

남편과 나도 30년 가까이 언제든지 찾아가면 따뜻한 휴식 공간이 되고 부모님이 기다리던 집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이 얼마 전에 팔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 년만의 일이다. 구매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왔던 터라 마음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가슴 한쪽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서운하다. 남편도 말은 안 하지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느 날 우리와 거래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옆집 사는 사람이 부동산으로 찾아와 며칠 전부터 어머니 집에서 뜨거운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뜨거운 열기라니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허둥지둥 달려가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끼친다. 허겁지겁 들어가 가스불과 전기부터 살펴보니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런데 방바닥이 장작불을 지핀 온돌방처럼 뜨끈뜨끈하다. 그때 남편이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남편이 눈짓으로 방 보일러 온도계를 가리킨다. 무려 39도로 40도를 육박하고 있다. 바깥은 19~20도를 오르내리는데 39도라니 우리는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남편은 비어 있는 어머니 집이 걱정된다며 가끔 들러 살피곤 했는데 그때 보일러 온도를 조금 낮춘다고 한 것이 오히려 온도를 올려 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실 바닥에 누웠다. 찜질방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따끈따끈한 온기가 기분 좋게 온몸에 퍼진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침묵을 깨고 남편이 이제 이 집에서 이렇게 눕는 것도 마지막이네 한다. 남편의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 있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아픈 마음을 추억으로 한 땀 한 땀 기우고 있으리라.


순간 오늘 일이 우연히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따끈하게 불을 지펴 놓고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일 년 동안 우리에게 많은 일들과 추억을 안고 있는 이 집과 이별할 시간을 주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쉬워하자 이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게 선물을 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끝까지 받기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밀려왔다. 조용히 누워 있던 남편이 말없이 내 손을 잡는다.


 창밖 하늘엔 아직 덜 여문 반달이 가만히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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