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민스파이의 숨겨진 '속사정'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았다. 마트 크리스마스 디저트 코너엔 크리스마스 푸딩과 독일에서 유래한 렙쿠헨, 스톨렌, 이탈리아 빵 파네토네 등 다양한 달달구리들이 날 유혹한다. 민스파이만 해도 5-6가지 종류가 진열되어 있다.
민스파이는 영국의 역사 깊은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디저트로,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와 '위대한 유산'에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론 내 입맛엔 너무 달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올해엔 유난히 전통 레시피에 변형을 준 상품들이 많은 것 같아 나도 한번 사보았다.
솔티드캐러멜 크럼블 민스파이. 스페퀼로스 아몬드 민스타르트. 블랙포레스트 민스파이. 심지어 민스파이 맛 아이스크림과 스트뤼델, 바클라바까지 나왔다. 로투스 비스킷을 워낙 좋아하는 난 스페퀼로스가 들어간 민스타르트를 골랐다.
전통적인 민스파이엔 버터가 듬뿍 들어간 쇼트크러스트 속에 브랜디에 절이고 향신료를 첨부한 건과일이 들어간다. 이 파이 소를 민스미트(Mincemeat)라고 부르는데, 민스미트는 영어로 '다진 고기'란 뜻이다.
'다진 고기 파이'속에 고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스파이의 '복잡한 속사정'을 알려면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2세기, 십자군들이 중동에서 향신료가 들어간 알싸한 맛의 고기 파이를 잉글랜드에 가지고 온 게 민스파이의 유래다. 이때 만들어진 파이 속엔 주로 양고기나 소고기, 토끼고기, 돼지고기 등을 사용했고, 다진 과일을 섞기 시작한 건 17세기부터다. 고기를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고기 속 지방은 추운 겨울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 크리스마스에 먹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기록을 찾아보면 1413년 헨리 5세의 대관식 만찬 메뉴로 민스파이가 올라왔고, 헨리 7세 왕도 민스파이를 메인요리로 먹는 것을 좋아했다. 이때 민스파이의 크기는 지금 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오래된 역사를 반영하듯 민스파이의 이름도 다양하다. '크리스마스 파이', 또는 고기를 조각조각(shred) 냈다는데서 유래한 '슈레드 파이'로 불리기도 했다. 옛날엔 민스파이를 직사각형 틀에 구웠는데, 완성된 파이의 모습이 아기 예수의 구유(crib)를 연상시킨다며 '크립 케이크'라고도 불렸다.
튜더 시대의 민스파이 위엔 페이스트리로 만든 아기 예수 모형을 올리기도 했고, 이때 당시 민스파이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를 상징하는 13개의 재료로 만들어졌고 한다. 파이 속에 들어가는 고기는 성탄절 이야기에 등장하는 양치기들을, 주 향신료인 넛멕, 정향, 계피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바친 세 가지 선물을 상징한다.
영국 전통에 따르면 민스미트를 만들 때 꼭 시계 방향으로 저었으며 각 가족 구성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소원을 빌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재료를 섞으면 한 해 동안 불운이 따른다고 믿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스파이는 크리스마스부터 12일 동안 한 개씩 먹었다.
주 재료가 고기였던 민스파이는 18세기에 설탕이 유럽에 유입되면서 점점 달콤해지기 시작했고 20세기 들어서는 건과일만 사용되기 시작했다. 파이의 크기도 훨씬 작아져 한 입에 쏙 하기 제격이다.
#크리스마스 #파이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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