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2, 진취적이면서 보수적인 공주의 내면과 외면
전국 2600관 상영, 1주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 2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 주말 기준 전체 영화관 좌석 수를 기준으로 70~80%를 점유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영화 개봉 2-3주 전 미리 OST가 오픈되어, 노래를 외우고 영화관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겨울왕국 1편은 마법으로 엇갈린 자매의 성장 스토리였다면, 2편은 선조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역사 바로잡기 이야기다. 크리스 벅과 제니퍼 리가 공동 연출했는데, 제니퍼 리의 경우 2011년 주먹왕 랄프로 본격 데뷔했고 (놀랍게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최초 여성 영화감독이다. 기존 스테레오 타입을 파괴하는 공주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 감독의 역할이 꽤 컸음을 알 수 있다.
디즈니 작품은 당연히 수백수천 명의 스텝이 함께 만든다. 예를 들어 엘사의 경우엔 캐릭터, 의상, 목소리 담당 등이 따로 있다. 슈퍼바이저는 엘사의 성격을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보일지 연구하여 거의 수백 명의 애니메이터의 공동 작업을 한 사람이 한 듯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안나 캐릭터의 슈퍼바이저는 한국인 이현민 씨로 화제가 되었다. 마음 깊은 곳에 왠지 모를 불안정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엘사 캐릭터 또한 슈퍼바이저로부터 탄생했다.
일반적인 디즈니 스토리라인은 어떤 문제 때문에 왕국에서 쫓겨난 공주가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왕궁으로 들어오고, 이 과정에서 사랑도 꽃핀다. 반대로, 겨울왕국의 엘사는 오히려 스스로 왕궁 밖으로 나가길 자처하며 썸남조차 없다. 전형적인 공주상을 벗어던진 보다 진취적인 캐릭터로 아이들에게 여성 롤모델을 확고히 제시했다. 또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을 탈피하여 현실성을 가미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향적인 ‘여성스러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엘사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 모험을 떠날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풀 메이컵을 고수한다. 험난한 길에서도 굽 있는 신발과 치마는 필수! 눈부신 금발에 깡 말랐지만 글래머러스한 몸매. 그나마 치마인 듯 망토인 듯 느낌적인 느낌의 옷 아래 레깅스형의 바지(?)를 입은 것이 엄청난 변화다.
(역대 디즈니 공주 중 바지를 입은 것은 알라딘의 자스민이 유일하다) 아동용 코스튬의 인기도 덩달아 하늘을 찌른다. 이랜드 리테일 기준, 겨울왕국 1편 때 코스튬은 5억 원 매출 수준이었지만 2편에서는 거의 24배인 120억 원으로 엄청나게 늘었다. 코스튬뿐 아니라 메이크업 세트 또한 엄청난 인기다. 심지어 여자아이를 모델로 내세워 메이크업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실사판 ‘알라딘’의 자스민,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 모두 과거의 수동적이고 연약한 스테레오 타입의 디즈니 공주에서 꽤나 멀어졌다. 진취적이고,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도움을 청하기보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공주는 여전히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워야 한다. 역경과 고난의 상황에서도 불편한 드레스와 하이힐, 그리고 풀 메이크업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힘들면 하루 이틀쯤 머리 안 감을 수도 있고,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면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성에서 뛰어나올 수도 있다. 화장을 못했으면 알 커다란 왕눈이 안경을 껴도 된다. 디즈니 스스로가 규정한 외형적 아름다움을 탈피할 때, 더 진실된 아름다움으로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지 않을까?
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 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0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사람과 사람들의 접점을 이어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석유화학회사 환경법, 환경정책 관련 업무
와인 21 객원 기자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