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2019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최연소이자 역대 두 번째 여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이 찐천재는 과연 누구인가? 29세에 MIT 종신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맥아더재단의 천재 회원이자, TIMES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에스테르 뒤플로’.
그녀는 남편과 2003년 MIT 빈곤퇴치연구소를 공동 설립하여 전 세계 50여 개국 700여 건의 현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연구 결과의 정수가 담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읽어보았다. 어떻게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일까?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다.
개발도상국일수록 출산율이 높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 일까? 종교 때문에, 혹은 무지해서 피임을 하지 않아서일까? 실제로 현대적 피임법 접근성이 확대됨에 따라 의도치 않은 임신을 연간 7500만 건에서 2200만 건으로 줄일 수 있고, 임신부 사망률도 27%로 낮아질 수 있다.
10대 여성의 피임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10대의 피임도구 사용은 임신을 예방하여 일자리를 구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에이즈 감염 확률도 낮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낮은 인도네시아 10대 여성 피임률, 어떻게 높일까?
첫 번째 전략 – ‘금욕하라, 배우자에게 충실하라, 콘돔을 사용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ABCD, Abstain, Be faithful, use a Condom or you Die)
- 이 교육으로 얼마나 피임률이 높아졌을까? 정답은 ‘효과 없음’이다.
두 번째 전략 – 하려면 젊은 남자랑?
여학생에게 나이 많은 남자와 성관계할 경우 에이즈 감염 확률이 높다고 교육했다. 실제로 나이 많은 남성과의 성관계가 많이 줄어들고, 동시에 피임 율도 높아졌다.
세 번째 전략 – 성교육은 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교복비를 지급했다. 교복이 없어 학교에 나오지 못하던 여학생이 출석하면서 세 명에 두 명꼴로 임신율이 크게 줄어들었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매력적인 또래 남성을 만나게 되고, 교육 수준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 전략, ABCD 교육(금욕하지 않으면 죽는다!)과 교복비 지급 전략을 동시에 진행하자 오히려 피임률 저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왜 일까?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사용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다니. ‘배우자에게 충실하라’(혼외정사가 아닌 정식 결혼을 권장하는 성교육)는 메시지는 여학생이 남자 친구가 아닌 남편감(경제력 있는 나이 많은 남성)을 찾는데 집중하게 하여 교복의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했다. 여학생들은 임신의 대가가 큰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력 있는 남편을 찾고자 결심했다. 다시 말해, 피임법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안 했다는 것.
대한민국에 사는 부부. 집은 어디에 마련할지, 어떤 차를 살지, 아이는 몇 명이나 가질지 함께 의논한다. 두 사람이 함께 의사 결정하여 미래를 설계한다. 잠비아의 한 부부. 남편이 아내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학력 수준도 높다. 돈도 꽤 벌어 준다. 이 경우 아내는 얼마만큼의 발언권을 낼 수 있을까? 이혼의 자유가 있는가, 이혼 후 스스로 살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의사결정에 미치는 여성의 영향력은 크게 달라진다. 남편이 피임을 원치 않는 경우 피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피임을 원하는 여성을 도울 수 있을까?
잠비아 기혼 여성 836명에게 피임 도구 교환권을 나누어 주었다. 일부 여성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일부는 남편 모르게. 결과는 놀라웠다. 남편 모르게 받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23% 더 가족계획 간호사를 찾았고, 피임도구 교환율도 38%나 더 높았다. 발언권이 없는 여성에게, 우회적으로라도 선택의 기회를 주자 피임률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분명한 사실은 가난한 사람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자녀 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7억 명이 넘는 사람이 극빈층의 삶을 살고 있다. 20년이 넘게 UN 구호단체가 많은 일을 했지만 극빈층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해외 원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까?
뉴욕대 이스털리 교수는 저서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에서 원조는 독자적인 해결책 마련을 막고 피원조국의 기구를 부패로 내몰고 기반을 약화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원조 기구가 개발도상국에 영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제프리 삭스는 ‘빈곤의 종말’에서 해외 원조로 가난한 나라가 주요 분야에 투자하게 된다면 소득이 늘고 추가 투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언뜻 생각하기엔 두 의견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조의 득실을 따지는 논쟁이 돈의 흐름과 쓰임새라는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시설을 운영하고 인력을 배치하는 방법만 해도 수만 가지인데,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다툼보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고민해야 한다.
가난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재능 낭비를 낳는다.
가난은 단순히 돈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다.
- 인도 노벨 수상자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
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0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사람과 사람들의 접점을 이어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석유화학회사 환경법, 환경정책 관련 업무
와인 21 객원 기자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