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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y 20. 2020

UN에서 일하고 싶었던 강력한 동기(는 없었다)

01. UN을 목표로 삼게 된 썰 (속물주의)

왕따라서 공부했어요.
머쓱한 쉬는 시간을 때우는 몇 안 되는 방법이 공부였죠.
소심했던 제가 저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숫자뿐이었어요. 



대학 입학 전 - 잘하는 게 없으면 공부라도 하자


천성이 소심했던 터라 새 학기가 너무 두려웠습니다.(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지만) 새 친구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 제게 말을 걸어오는 모든 일들이 큰 부담이었죠. 운동도 못 했고 친구도 몇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가 특히 심했어요. 당시 학급의 실세(?)였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예쁜 데다가 성격도 똑 부러지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선생님이 청소 구역을 배정해주시면 그 여학생이 임의로 구역을 재배정해서 급우들에게 나눠줬습니다. 


hoxy... 아시나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선생님보다 강력한 '엄석대'가 반 아이들을 좌지우지합니다.


실세와 그의 친구들이 술래잡기를 할 때 저는 혼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어리다고 슬프고 자존심 상하는 감정을 모르는 건 아니잖아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습니다. 

다른 걸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걔보다 성적은 잘 받자. 악에 받히기도 했고, 쉬는 시간에 공부 말고 달리 할 것도 없었다 보니 성적이 쭉쭉 오르더라고요. 그러다 반 1등까지 하자 실세였던 여학생은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아, 성적이 좋으면 무시받지 않는구나.'를 느꼈죠. 딱히 하고 싶거나 갈망하는 무언가는 없어도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숫자, 즉 성적뿐이라고 느꼈습니다. 



장래희망도 구체적인 미래 계획도 없었지만 명문대에 입학하고 싶었습니다. '인정' 받기 위해서요. (과연 누구로부터의 인정이었을까요?) 다시는 그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등학생 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쉬는 시간, 등하교 시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하루 15분의 산책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과외는 꿈도 꾸지 못했고, (아빠가 불법으로 다운받아주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후회 남지 않게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수능 점수를 받았습니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 이걸 일 년 더 해야 하나,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앞이 캄캄했죠.


너무 끔찍해서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성적


정말 다행히도 정시 말고 수시로 갈만한 학교가 몇 군데 있었습니다. 성적을 맞춰보니 S대 의류학과랑 과학교육과는 잘하면 들어갈 수 있겠더라고요. '패션, 의류...' 진짜 열정 있는 친구들이 지원할 테고, 노력만으로 성공하긴 힘든 분야겠죠. 


제겐 이런 센스와 깜냥은 '지금도' 없습니다... (출처 :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홈페이지)


'과학교육과'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운 좋으면 학교 선생님이 되거나, 학원 강사를 해서 돈을 좀 벌 수도 있겠죠. 달리 어떤 길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큰 목적은 S 대를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지원합니다. 그리고 최종 합격을 하죠. 



대학 후 - 목표 상실, 의욕 상실, 뭐해먹고살지?


그렇게 합격을 하고 나니 인생에 목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목표한 바는 다 이뤘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막연했죠. 대학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고, 살면서 난생처음 연애라는 것도 해봅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탈 같은 삶이 퍽이나 재미있었지만 막연한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나 뭐해먹고살지?' 


학교만 들어가면 인생 다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무한 경쟁입니다. 목표 없이  고시 준비하다 잠수 타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목표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어느 날, 짧은 강의 하나가 제 마음속에 UN이라는 불씨를 피웁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속물주의)

  - UN 연봉은 UN 가입국가 기준, 임금을 가장 많이 받는 공무원보다 높다

  - 5년만 일하면 평생 연금이 나온다

  - 외교관 급을 여권을 발급받아, 어느 나라든 편하게 출입국 할 수 있다

  - 엄청난 휴가와 복지가 보장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사회적 인정과 명예' 


'와... UN 들어가면 진짜 간지나겠다. 누구한테든 인정받겠네.' 그때부터 제 목표는 UN이 되었습니다. 결코 '사회정의 실현, 인권 보장, 환경 질 개선'처럼 거창하고 착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였죠. 당시의 저는 그런 제 생각을 스스로 부인했고, 마치 오래전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아 UN에서 일하고 싶다고 자기 합리화했습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어쨌든 'UN'이라는 새 목표가 생긴 그 시점부터 닥치는 대로 환경에 관한 공부와 일을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환경경영'을 복수 전공하고 1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공모전, 대외활동을 했죠. (세부 내용은 다음 회에 다룰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시각이 넓어지고 관심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업무로서 즐거운지 확신이 들진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 한 대표적인 활동들 몇 가지]

녹색성장위원회 그린칼리지(독일, 스웨덴 탐방)

서울대학교 글로벌 챌린지(몽골 전력 실태 조사)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환경 정책 부분 인턴

4-H 국제기구 농업환경 실태 조사 (캐나다)

지속가능경영학회

서울대학교 학생대사

한국장학재단 홍보대사(인도네시아 봉사)


표지모델 보는 재미도 덤이었던 '대학내일'


매주 학생회관에서 '대학내일' 잡지를 읽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어떤 공모전이 있는지 파악했고 별 고민 없이 지원했습니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땐 해라. 그러다 보니 웬만한 학생보단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운 좋게 결과도 괜찮았어요. 조금씩 스펙을 쌓아가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대학내일' 잡지를 펼쳐본 그 날, 인생을 바꿀 공고를 보게 됩니다. '환경부'가 지원하는 국제기구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이것이 제 UN 입문의 첫 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 전환의 시발점이었죠.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지금 하는 일들이 어떻게든 미래와 연결될 것이라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당신의 마음을 따르는데 확신을 줍니다.
스티브 잡스 아저씨의 명연설, 시간 되시면 풀버전을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무엇이든 목표를 세운다면 어떤 형태든, 인생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고 들이받아보자고 이맘때쯤 확신이 섰습니다. 인생 2장을 열기 위한 고군분투를 다음 화에 소개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기깔나고 간지나게 살아야지.
누구보다 찬란하고 눈부시게.



Upcoming.. 목차


· (있어 보이는 삶을 위한) 대외활동 성공기

· (부모님이 낸 세금을 잘 써먹는) 정부지원 프로그램

· (주전공으로는 부족하니) 서울대학교 글로벌 환경경영 전공

· UN 입사지원, 어떻게 하는데? 이력서, 인터뷰 팁

· 붙었다고 끝이 아니다. 출국 전 준비해야 할 A to Z (피곤 주의)

· 독일에서 둥지 틀기 - 완벽한 워라밸이란 이런 것?

· 인턴 나부랭이는 무슨 일을 할까? (1 - 잡무 편)

· 인턴 나부랭이는 무슨 일을 할까? (2 - 꽤 괜찮은 일 편 ; 국제회의 지원)

· 인턴 나부랭이는 무슨 일을 할까? (3 - 자랑할만한 일 편 ; 직원 교육)

· ★ (번외 특집) 장거리 연애를 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 인턴십이 끝나고... 이제 뭐 먹고살지?

· 환경부 장관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다 (석유화학회사 근무기)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을 찾다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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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2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FCMI 팀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1기 인턴 팀장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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