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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웃는 사람

by 위드웬디

엊그제 고2 아들과 30분도 넘게 신경전을 벌였어요.


공부 해야 하는 이유도 알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그냥 멍하게 시간만 보내게 된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다른 부모님들만큼 경제적, 정신적으로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못해 미안한데, 공부가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면 미안함이 극에 달합니다.


"공부는 네가 하는 거고, 엄마가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도 안 되고"라고 말하지만,

좋은 정보를 알아봐 주고, 먹거리와 운동 시간 등 건강을 챙겨 주고, 넓은 이해심으로 아이를 품어주는 다른 어머니들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쩌지 못합니다.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엄마가

자신의 우울이에게 휘둘려 오히려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더욱 라앉았고요.


이렇게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에게 원망과 후회를 듣고 나면 몸의 모든 기운이 빠져버립니다.

좋은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 주제에 무슨 글을 쓰나 하며 그냥 엎드려버립니다.


엄마 노릇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서 자책에 빠지고, 심할 때에는 술을 또 찾습니다.


이러다가는 끝이 안 나겠다!


우울이 몰려와서 술을 찾는 것인지,

술을 먹겠다는 핑계로 우울 탓을 하는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습니다.


좋은 엄마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우울한 건지,

우울함을 핑계 삼아 엄마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걸 애써 가려보려는 건지

그 어떤 이유에서든 부끄럽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무지성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고 스스로 동네방네 소문 다 내서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능력의 부족을 인정하는 게 아직도 잘 안되나 봅니다.


에잇, 웃어나 보자.


더 이상 부끄러울 게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오히려 편안해집니다.


지 마음대로 그만 살겠다면서 이미 친정 부모님 속을 다 썩였습니다.

시댁 친척분들 다 모인 장례식장에서 우울증 앓는 며느리로 다 소문이 나서, 이미 시어머님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무너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더 이상 울 면목도 없겠다는 생각에 편안해집니다.

웃어서 내 기분이 나아진다면, 더 나빠질 것도 없다면

그냥 웃는 또라이가 되는 게 어떤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라, 당장은 입꼬리부터 올리고 봅니다.


'날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일을 끌어당기는'

그것조차 못하는 사람이라 일단 입꼬리를 끌어올립니다.


정체성 정하고 갑니다.

웃을 일 하나도 없고 속이 다 문드러졌어도 나는,


'그럼에도 웃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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