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과거에 살고
윤벙무,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과거에 매달려 살지 말자는 말, 과거에 발목이 잡히지 말자는 말, 과거의 상처 같은 건 딛고 일어나자는 그 모든 말들이 위안이 되는 날이 있었어. 네 무릎을 베고 누워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당장 내일 맞이해야 하는 절망도 모두 절망이 아닌 것만 같았거든. 그 순간만큼은 네가 내 모든 절망을 안고 간다고 생각했어. 그 절망을 네가 모두 지고 있는 게 힘들진 않을까, 하고 걱정하다가도 네 괜찮다는 말 한 마디면 내 마음의 짐까지 전부 덜어지는 것 같아서. 비겁하고 이기적이지만 우리의 이별을 맞이한 순간에 앞으로의 내 절망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했어.
그런데 있잖아.
사실은 네가 내 절망을 가져간 게 아니더라. 나로 인해 늘 아팠을 네가 들으면 이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네가 내 절망을 가져간 뒤에는 너의 부재라는 새로운 절망이 태어났어. 왜 그 자리에 새로운 절망이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 자리에 새로 태어난 절망은 네가 가져간 절망을 모두 한 곳에 모아둔 것처럼 크고 깊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