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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 Jul 23. 2020

익사

류근, 상처적 체질을 읽고

우리는 서로 비껴가는 별이어야 했던 주제에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바다를 만들었어. 그게 문제였지.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으면서도, 시작이 비이상적인 관계의 끝은 언제나 서로를 할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년간의 삶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어.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 따위가 폐부로 바닷물이 가득 차는 걸 방치했어. 결국 숨이 다 막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에야 겨우 머리를 내밀게 했지. 꽉 잡았던 두 손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때에 이미 놓아버린 지 오래였고, 내 옆에 있던 너는 이제 어디로 갔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번호를 바꿔 버리고, SNS 계정 따위는 아이디를 바꾸는 게 비밀번호 바꾸는 것보다 더 쉬운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서로를 외면하는 법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어. 얄팍한 실낱같은 간간한 연락이 마치 우리가 만들었던 아름다운 시간을 다시 살 수 있을 거라고 속삭이는 것도 같았어.

나는 내가 살기 위해 당신을 죽이고 네 손을 처음 잡았던 벚나무 아래에서 오래 울었어.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서 슬프다는 그 모순이 가득한 상황에도 나는 너를 살릴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둘이 하는 사랑에 왜 그렇게 패널들이 많은지, 왜 나는 여기서는 주인공이었다가 거기서는 악역을 자처해야 했는지, 간혹 어디에서는 눈치 없는 주인공의 친구 정도의 조연을 맡아야 했는지 모르겠어.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은 오작교 가운데에서 만나 반가움에 울음을 운다는데, 고작 100 년도 채 살지 못하고 스러지는 존재의 사랑은 얼마나 잘못한 것이 길래 자는 네 머리를 쓰다듬는 데에만 나는 열 번도 더 넘는 고민을 해야 해. 그 고민이 서러워서 울음을 삼키면 너는 귀신처럼 일어나 나를 안고 다시 잠드는 일을 반복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자꾸 너를 살리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

네 마음도, 내 마음도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은 서로의 것이 아니었고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었을 뿐인데 그 스쳐가는 바람이 우리에게는 너무 컸던 거지. 이제는 그냥 머리카락 몇 가닥이나 겨우 흔들리게 하는 바람도 아닌 것이 그때는 전부를 뒤흔든 폭풍 같았을 뿐이잖아.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때는 하필이면 전부였던 거잖아. 나는 그래서 슬펐던 그날을 모두 잊지 않을 거야. 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시간을 포함하면 나는 너와 손을 잡고 있었던 그 순간보다 더 오래 너를 사랑했어. 너를 사랑했던 그날의 나는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주제에 행복했대. 그 행복은 결국 네가 준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우리는 오늘에서야 정말 이별하는 거야. 잘 가. 나는 네 손을 놓는 데에도 천 번의 고뇌가 필요했지만 네가 다른 사람 손을 잡는 데에는 열 번의 고뇌도 없기를 빌어. 그래도 한 번은 해 줘, 그 순간에 내가 떠오르길 바라는 욕심도 오늘까지만 부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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