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갑처럼 생긴 게 하는 짓은 을이네."라는 말은 즉 세게 생겨서 속은 물러터졌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너 유리멘탈"라며 타인이 날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타인들이 나에게 들이밀던 잣대에 나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들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냈다.
왜 그 때의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을까, 왜 날이 선 커터칼과 같은 소리에 나는 뛰어들었나. 돌이켜보면 성장 과정에서 가족의 날 선소리가 있었다. 유년 시절, 나는 지독히도 친구 관계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내 학창 시절은 매 순간 따돌림이 존재했다. 유독 중학교 1학년 내내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따돌림과 구겨지고 함몰되던 나의 자존감 그리고 그럴수록 치켜세우고 물러서지 않았던 나의 자존심이 공존했고 집에만 가면 전학 보내달라던 내게 다 그렇게 산다며, 이겨내라며 날 몰아세우던 엄마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단단해지긴 했으나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우울증, 불면증, 그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길 바라는 죽음에 대한 욕망과 갈망은 심해졌다.
이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들에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혼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라에서 정한 법적인 성인이 되었고 첫 직장에서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그들의 이상하리만치 높은 기대감, 그것을 충족시켜줄 필요는 없지만 인정받기 위한 과도한 몸부림을 쳤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회사 내 폭언과 성희롱으로 돌아왔다. 원인도 결과도 그들에게 있었지만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하고 나도 같이 그들처럼 스스로를 정신적 벼랑 끝으로 몰아 까치발로 서서는 버티려 한 내탓도 있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 을이 되었다.
스스로 을로 살던 시기의 나는 늘 누군가에게 속으로 "나를 봐줘, 나를 사랑해줘!"라고 하고 싶었고 늘 허한 마음을 채우려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에서의 단발적 즐거움은 그 순간을 벗어나 더한 공허감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 때문에 나의 밤은 매일 술자리로 가득했고 술만이 불온전한 밤을 지켜주었다. 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었고 내 모든 밤은 가위와 허상에 시달리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술이 없으면 한 시간도 채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 점점 사람에게 기대가 없어졌다. 이윽고 혼자가 편해지게 된 시점이 찾아왔다. 나를 위한다는 말의 탈을 쓴 채 공격하는 사람에게 감정 낭비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고는 했다. 연애 또한 감정 낭비, 감정 소모라며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치부하고는 기존의 인간관계만 유지한 채 회피했다. 그러다 어느 날, 지인이 내게 폭탄을 던졌다. "스스로 을이 되지 마. 언제까지 인간관계에서 애처럼 굴 거야? 너자기연민에 휩싸여 정신 승리하면서 살지 말고 현실을 봐. 언제까지 징징댈 거야?"라는 말이 마치 무자비한 폭격같았다. 처음엔 '왜 나한테 뭐라 하나. 나는 그저 피곤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인데'로 시작해서 '정말 내가 자기연민에 정신 승리하고 징징대나? 내가?'라는 의문을 거쳐 자가진단을 통해 "불안정 애착 회피형"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마주했다. 그 무자비한 폭격이 결국은 많은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더는 내가 을임을 자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매번 을이었다. 나를 갈아 넣는 미슐랭 레스토랑에 앞치마를 던지고 나왔고 이제는 상업적인 요리를 하자며 압구정의 한 와인바에 취직했다. 그 와인바는 외식업 종사자가 아닌 다른 분야종사자가 와인이 좋아 차린 바였는데 어느날 자신들은 원래 그렇다며 내게 다가와 한 달간 일하며 느낀 점, 회사에 관한 생각 등을 물었다. 이전부터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저와는 약간 다른 것 같지만 저는 오래 일하고 싶기 때문에 제가 잘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덤덤히 대답했다. 그리고 대표가 내게 와서는 "이곳은 매력적인 사람만 일할 수 있는 곳이야. 각자 본인이 좋아하는 게 뚜렷이 있어. 너는 그렇지 않아. 휴무 이틀 동안 잘 생각해봐."라고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자며 자기최면을 걸던 나는 결국 그날 새벽 4시에 이불을 발로 퍽 걷어차 버렸다. "네가 뭔데 나에 대해 왈가왈부야? 난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는건가?"라고 단전에서부터 묵힌 울분이 터져나왔다. "왜 나는 또 누군가에게 판단과 평가를 받았지? 왜 난 또 나를 못 지켰지??" 라는 묵직한 울분에 휩싸인 휴무가 끝나고 돌아간 날, 출근하자마자 불 앞에서 토마토소스를 끓이고 있던 나는 대표에게 갑작스런 한소리를 들었다."너는 인사도 눈 보고 똑바로 못하니? 나이가 몇인데 내가 인사부터 가르쳐줘야하니?" 이 말은 나의 퇴사 트리거가 되었고 처음으로 할말하고 나온 나의 첫 통쾌한 퇴사경험이 되었다.
"저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저도 좋아하는 브랜드 있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가 몇 군데인데 제가 그러면 그동안 전 회사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저를 이 조직에 외부인인것 처럼 취급하시는 것도 제가 소속감을 못느끼는데에 문제가 있는거 같습니다. 밥먹을때 왜 안웃냐, 왜 말안하냐고 하시는데 제가 의무적으로 밥먹는 시간에 그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저 일 잘해요. 요리하는 5년 내내 어디서도 제가 일못한다는 소리 들어본적도 없고 전 직장은 제가 파트장까지 달았어요 최연소로. 심지어 제가 나이도 제일 어렸구요. 제가 실력이나 일에 대한 실수로 쓴소리를 들었다면 받아드리고 시정했겠지만 제 개인의 매력과 같은 인격이나, 식사자리에서 웃지 않는다는 걸로 뭐라고하시는건 그저 제가 마음에 안들어서 공격하시는 걸로 느껴집니다. 저 오늘부로 퇴사하고싶다는 말씀드립니다. 한달 노티스 드리면 될까요?"
기분이 얼떨떨했다. 멍한 기분으로 사후약방문 같은 방식이었어도 할말은 했네. 라는 생각으로 앞치마를 풀면서 담담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벙쪄버린 매니저, 동그래진 대표의 눈 그리고 내 사수와 몇 직원들. 그들은 나를 동그랗게 둘러싸고있었고 구도도 마치 이지매같았던 기억이 선하다. 대표는 "아니 오늘부로 그만둬." 하고 나를 그날부로 내보냈지만 아직도 3-4년 전 그 순간의 공기와 분위기, 공간의 가구배치가 눈에 그려진다.
더는 스스로 을이 되지 말자. 계약서상 을일 수는 있으나 사실 을이 진정한 갑이다. 자신이 누구보다 매력 있고 강한 사람임을 저 무저갱 같은 내면에 인지하고 살아가야한다. 남이 나를 ‘을’로봐도 내가 ‘을’이지 않을 때 비로소 “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