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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 Nov 14. 2021

스스로 을이 되지 마세요

불안정애착 회피형

"얼굴은 갑처럼 생긴 게 하는 짓은 을이네."라는 말은 즉 세게 생겨서 속은 물러터졌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너 유리멘탈"라며 타인이 날 단정 짓는 소리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타인들에게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탄식이 비집어 나온다.


왜 그 과정에서 나를 지키지 못했을까, 왜 날이 선 커터칼과 같은 소리에 나는 뛰어들었나. 돌이켜보면 성장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가족들의 날 선소리가 있었다. 씨앗에서 새싹이 피어나 줄기를 펼친 시절, 나는 지독히도 친구 관계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내 학창 시절은 매 순간 따돌림이 존재했다. 유독 중학교 1학년 내내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따돌림과 구겨지고 함몰되던 나의 자존감 그리고 그럴수록 치켜세우고 물러서지 않았던 나의 자존심이 공존했고 집에만 가면 전학 보내달라던 내게 다 그렇게 산다며, 이겨내라며 날 몰아세우던 엄마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단단해지긴 했으나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우울증, 불면증, 그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길 바라는 죽음에 대한 욕망과 갈망은 심해졌다.


이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들에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혼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라에서 정한 법적인 성인이 되었고 첫 직장에서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그들의 이상하리만치 높은 기대감, 그것을 충족시켜줄 필요는 없지만 인정받기 위한 과도한 몸부림을 쳤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회사 내 폭언과 성희롱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탓이 큼이 분명하지만, 가만히 노출된 채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까치발로 서서는 버티려 한 내게도 탓이 있다. 그렇게 점점 상대에게 자발적 을이 되었다.


나를 봐달라고, 나를 사랑해달라고 하고 싶었고 늘 허한 마음을 채우려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에서의 단발적 즐거움은 그 순간을 벗어나 더한 공허감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 때문에 나의 밤은 매일 술자리로 가득했고 술만이 불온전한 밤을  지켜주었다. 술에서조차 나는 을이 되어버렸다. 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었다. 내 모든 밤은 가위와 허상에 시달리며 괴로움에 몸부림쳤고 술이 없으면 한 시간도 채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20대 초반은 을로 점칠 되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 점점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이윽고 혼자가 편해지게 된 시점이 찾아왔다. 나를 위한다는 말의 탈을 쓴 채 공격하는 사람에게 감정 낭비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고는 했다. 연애 또한 감정 낭비, 감정 소모라며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치부하고는 기존의 인간관계만 유지한 채 회피했다. 그렇게 20대 중반이 된 어느 날, 과거에 일방적으로 날 손절하고 이제는 절친이 된 언니가 내게 폭탄을 던졌다.  "스스로 을이 되지 마. 언제까지 인간관계에서 애처럼 굴 거야? 너 이제 20대 중반이야. 자기연민에 휩싸여 정신 승리하면서 살지 말고 현실을 봐. 언제까지 징징댈 거야?"라는 말이 마치 무자비한 폭격같았다. 처음엔 '왜 나한테 뭐라 하나. 나는 그저 피곤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인데'로 시작해서 '정말 내가 자기연민에 정신 승리하고 징징대나? 내가?'라는 의문을 거쳐 자가진단을 통해 "불안정 애착 회피형"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마주했다. 그 무자비한 폭격이 결국은 많은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더는 내가 을임을 자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매번 을이었다. 나를 갈아 넣는 회사에 앞치마를 던지고 나왔고 이제는 상업적인 요리를 하자며 압구정의 한 와인바에 취직했다. 그 와인바는 외식업 종사자가 아닌 다른 분야종사자가 와인이 좋아 차린 바였는데 태초부터 외식업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이 대표인 회사는 지나치게 정상적이다. 사실 지나치게 정상적인 것은 외식업에서는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맺는 인간관계는 소위 사무 직종에서나 볼 법했다. 남자들과 부대끼며 칼과 불을 다루고 민낯에 가까운 언어들을 내던지는 사회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모든 것들이 낯설었고 그만큼 그들은 나를 불순분자로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원래 그렇다며 어느 날 내게 다가와 한 달간 일하며 느낀 점, 회사에 관한 생각 등을 물었다. 이전부터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저와는 약간 다른 것 같지만 저는 오래 일하고 싶기 때문에 제가 잘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덤덤히 대답했다. 그리고 대표가 내게 와서는 "이곳은 매력적인 사람만 일할 수 있는 곳이야. 각자 본인이 좋아하는 게 뚜렷이 있어. 너는 그렇지 않아. 휴무 이틀 동안 잘 생각해봐."라고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자며 자기최면을 걸던 나는 결국 그날 새벽 4시에 이불을 발로 퍽 걷어차 버렸다. "네가 뭔데 나에 대해 왈가왈부야?"라고 단전에서부터 묵힌 울분이 터져나왔다. 울분에 휩싸인 검붉은 밤으로 가득했던 휴무가 끝나고 돌아간 날, 일이 너무 많아 바빠서 불 앞에서 토마토소스를 끓이며 일과를 보던 내게 인사도 눈 보고 똑바로 하지 않느냐며 인사부터 나이까지 들먹이며 모두 다 그들에게 씹어 먹혔다. 결국 나는 그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불순분자였고 마지막도 을로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사실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아니요. 저는 이것과 이것을 좋아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에요. 저를 얼마나 아신다고 판단을 내리시나요? 대표님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셀린 백 많이 들고 다니시던데 셀린을 좋아하세요? 페미닌 무드를 좋아하시나 보죠? 저는 요리도 글을 쓰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잘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나를 그리 속단하고 단정 지을 만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사실 세상 그 누구도 그렇게 단정 지어질 수 없어요.”라고 말해야 했다. 마치 내가 이 순간 만은 당신에게  을이 아닌 것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고개를 저 하늘 향해 빳빳이 들고, 말이다.


더는 스스로 을이 되지 말자. 계약서상 을일 수는 있으나 속은, 정신은 을이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누구보다 매력 있고 강한 사람임을 저 무저갱 같은 내면에 인지하고 살아가야한다. 남이 나를 ‘을’로봐도 내가 ‘을’이지 않을 때 비로소 “을”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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