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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11. 2024

조사 9일 차, 절망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조사관을 기다렸다. 오늘은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조사관이 조금 늦는다는 말에 괜히 더 긴장되고 떨렸다. 오늘은 내가 원하는 그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했으니 꼭 좋은 소식을 가져오길 바랐다. 혼자 생각에 늪에 빠져 있는 사이 조사관이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조사관에게 물었다. 조사관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단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선 위에까지 다 보고는 들어갔고요. 아직 결정이 안 난 상태고요. 소원씨가 많이 힘든 건 알지만, 솔직히 그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새아빠의 성폭행으로 생긴 아이라는 걸 저희가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조사관은 본인도 답답하다는 듯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조사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흘렀다. 맞는 말이지만, 나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상황을 보여 줄 수도 없고, 국정원에서 조사하는 입장에서는 온전히 나의 진술로만 그 상황을 판단하려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당시의 성폭행 기억을 되돌려 최대한 구체적으로 진술했지만, 계속해서 거부당하는 느낌이 들자 힘이 빠졌다. 성폭행을 당했던 순간만큼이나 나의 존재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는 조사관의 말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사관은 눈물을 흘리는 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휴지만 건넬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낙태를 원했기에 다시 한번 조사관에게 하소연했다.

“저 낙태 못하면 못살아요. 엄마 얼굴도 볼 수 없고요. 태국 교도소에서 있을 때 대사관에서 나온 분이 한국 가면 낙태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 희망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어요. 근데 이제 와서 당시의 상황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못해준다고 하면 저는 어떻게 살아요......”

진심이었다. 만약 낙태를 못해준다고 하면 나에겐 사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조사관도 나의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한 번 더 위에 잘 말씀드려 보겠다고 했다. 나의 컨디션 때문에 더 이상의 조사는 어려웠다. 일찍 조사를 마치고 독방으로 돌아왔다. 낙태를 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버텼는데 아직도 결정이 안 났다는 말을 듣자 내 인생이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샤워실 벽에 걸려 있는 샤워부스 줄을 한참 바라봤다. 저 줄이면 지금 나의 고통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못된 마음을 먹었던 후로 두 번째로 나쁜 마음을 먹은 날이었다. 욕조에 물을 받고 샤워부스 줄을 목에 감았다. 그리고 살짝 당겨봤다. 순간 목이 확 조이면서 헛기침이 나왔다. 나는 얼른 줄을 당기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몸에 힘이 빠지면서 나는 그대로 욕조 물 안으로 미끄러졌다. 그 자세로 앉아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온몸의 힘이 빠질 때까지 울었다. 비겁하지만, 샤워 줄이 내 목을 조여오는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나는 또다시 생존자의 고통을 선택했다. 욕조의 뜨거운 물에서 피어올라 유유히 사라지는 김처럼 나의 의식도 점차 희미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소리 없이 유유히 사라지는 김처럼 나도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어떤 고통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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