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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May 26. 2024

조용히 자란다.

손톱깎이 독립

초등학교 5학년. 지독히도 늘지 않는 몸무게. 깡마른 아이와 내 몸을 비교해 보면 아이의 키를 내 몸무게로 가지고 온 것처럼 미안함이 느껴진다. 


어느 날 쑥 커버린 아이. 오래간만에 내 곁에 선 아이를 보니 가슴께 왔던 키가 내 귀 언저리까지 자랐다. 

언젠가 내가 올려다볼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이. 

내 품을 벗어날 때가 곧 온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시리다.


얼마 전부터 손톱깎이를 가르쳤다. 늘 나를 기다리고 있던 30개의 손톱과 30개의 발톱 

이제는 스스로 깎을 줄도 알아야 한다며 한사코 아이에게 손톱깎이를 쥐어 주었다. 


정말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이제 내 품을 벗어나는 것 같았던 손톱깎이 독립

얼마간은 '오늘은 손톱 깎아'라고 말해줘야 겨우 한번 깎는 시늉을 했다. 

아주 천천히 손가락이 잘릴까 조심스러운 모습에 내가 깎아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손톱 깎아야겠다"라며 스스로 이야기한다.

아직도 서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의 손톱 깎는 모습이지만 

물끄러미 내려다보니 첫날보다 능숙한 그 모습과 사뭇진지하게 앙다문 입술이 아이의 조용한 성장을 내 눈에 보여준다. 


고맙고도 미안한 내 첫아이. 손톱 깎는 걸 뭘 찍냐며 무심한 듯 건네는 네 목소리에서 제법 의젓함이 느껴진다. 

천천히 떠나줘. 아쉬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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