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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Mar 23. 2024

회식

주절주절 #1


#회식


회식이 있었다. 일과 외 개인 시간에 대한 중요성과 더불어 음주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직장에서 회식은 점차 뜸해지는 분위기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된 식사 후, 술을 마시는 대여섯 명 정도의 인원이 모인 2차에서 관리자는 개인주의에 대한 푸념과 더불어 팀워크의 중요성을 논한다. 알코올이 어느 정도 들어간 채 발그레해진 얼굴로, 옆 사람들은 요샌 너무 정이 없다며 맞장구를 친다. 친목 간사를 맡은 내게 옆자리의 선생님이, 올해에는 반강제적으로 이런저런 모임을 추진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애초에 술과 모임을 좋아하는 소수만 남은 자리이니, 그런 의견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여겨진다. 나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쉽지 않을 거라고 두루뭉술하게 말을 건넨다.


집단주의의 기원은 가족이다. 출생과 동시에 인간은 가족이라는 집단 내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 규율과 질서는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 요소이며, 아버지의 존재는 이러한 기준의 상징으로써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성장과 동시에 개인은 학교, 사회로 나아가며 점차 소속 집단의 범위를 넓혀나간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법을 준수하며 노동을 통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집단주의는 개인화된 의식에 점차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피임법의 발명과 함께 출산은 선택이 되었으며, 노동의 목적은 사명감보다 보수와 자아실현에 초점이 맞춰진다. 계속 줄어드는 출산율은 이러한 개인주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개인은 결집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집단의 권위는 무관심 속에 빠르게 침잠한다. 아버지의 호통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푸념하는 관리자는, 모임을 활발히 갖자는 술자리의 열띤 대화 속에서도 어느 정도 깨닫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몇십 년 전의 그림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는걸. 결국 집단은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연결고리만을 걸쳐놓은 채 헐거워질 것이라는걸.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이대로 줄어들고 멀어지며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천 년 뒤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 세상 안에 인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는 의구심이 인다. 먼 훗날 인간의 멸망에 관한 클리셰는 곳곳에서 지겹도록 우려먹는 소재다. 종교, 영화, 소설, 교육 모두가 입에 거품을 물며 인류의 미래를 외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숭고한 희생’. 멋있는 포즈를 취하며 희생하는 주인공과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인류를 그린 어느 영화를 보고는 엿이나 먹으라며 코웃음을 쳤다. 신파의 외피를 두른 자기희생의 강요는 감기약처럼 역한 맛이 났다.


삐딱하고 염세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20대 중반에 나는 교사가 되었다. 결국 모두 사라지고 말 거라는 비관적인 인간이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일을 하는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은 (아직까지는) 꽤나 적성에 맞다. 거시적인 인류애나 집단 숭배에는 침을 뱉어도, 눈앞의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하고 부르는 모습에는 뭉근함을 느낀다. 이렇듯 모순적인 나라는 인간은, 어쩌면 실은 인간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잔뜩 꼬인 채 날선 눈빛을 하다가도 옆 사람에게 인사를 건넬 때면 미소가 한없이 어리는 나의 모습을 보다 보면, 사람이라는 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서히 사라질 듯싶다가도 결국 어떻게든 버티며 존속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매주 일기를 쓰며, 여러 단상들을 글로 옮기기도 하지만, 사진과 영화, 책과 음악 등 나의 관심사를 짧은 글로 옮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흩뿌려진 조각들을 하나씩 훑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완성된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까. 앞으로 간간이 써 볼 글들은, 나라는 모순 덩어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런저런 넋두리이며, 삶이 그래도 살아갈 만한 것이라는 가벼운 자기합리화이다.



# 사진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는 아침을 먹고 대충 씻은 후 7시쯤 교실로 이동해 오전 자습을 시작했다. 자습 전, 몽롱한 머리를 깨우기 위해 학교 매점 앞 자판기에서 500원짜리 캔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는, 담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어 이해하게 되었다.) 한겨울 눈이 내리던 밖을 바라보며 설탕이 적당히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힘들었던 수험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곤 했다. 당시 커피의 달콤 씁쓸함은 그렇게 학습된 취향으로 굳어갔다.


대학생이 되어 주변 동기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나는 줄곧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고수했다. 한약 맛이 나는 쓰디쓴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을 보며, 저런 고약한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메뉴판에서 프라푸치노에 제일 먼저 눈길을 보내던 나는(웃기게도, 크림도 못 먹는 주제에 프라푸치노를 고르다 된통 당한 이후로는, 휘핑크림을 빼고 프라푸치노를 주문하는 기행을 한동안 선보였다.) 어느 순간 아메리카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물론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시럽이 있는 곳으로 재빨리 달려가 두어 번 펌핑한 후 애매한 달달함에 만족하곤 했다.


그렇게 설탕에 대한 집착을 보이던 나는 임용 준비를 거치며, 그리고 직장인이 되며 자연스레 시럽 없는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카페에 들르면 아메리카노부터 찾게 되었고, 특유의 씁쓸함을 고소함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한겨울 내리는 눈을 스타벅스 통창 너머로 바라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집어 든 나의 머릿속에 문득, 고등학교 시절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캔커피를 홀짝이던 교복 차림의 내가 스쳐갔다. 상황이 변하고, 자연스레 취향 역시 변해가는 건가. 시간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바위처럼 단단하다 여겼던 인간은 점점 깎이고 다듬어지며 모습이 바뀌어 갔다. 변해버린 지금의 나는 과연 그때의 나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꿈같은 건 감상에 젖은 이상주의자의 논리일 뿐이라며 냉소를 지은 채, 수능 만점만 바라보며 강박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던 당시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액정 너머엔 다음 주 업무를 머릿속으로 셈하며 주말의 나른함을 한껏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의 모습 어디에도 수험생의 표독스러움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룹 <동물원>은 데뷔 앨범에서 ‘너무 빨리 변해가네’라며 삶을 노래한다. 과연 정말 빠르게 변해만 가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 변화의 연속이라면, 삶의 순간순간마다 자리한 나는 과연 정말 나인 것일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는 어쩌면 그 답을 알고 있을 지도. 이 글을 마무리한 후, 오늘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야겠다.



# 음악



군에 복무할 때,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읽고 이석원을 처음 알았다. 마음에 닿는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밴드의 보컬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다. 개인정비 시간에 휴대폰을 수령한 후, 유튜브 뮤직에 ‘언니네 이발관’을 검색하자, 상단에 위의 곡이 표시되었다. 약 4분 50초가량의 곡은 그렇게 그날, 그 달, 그리고 전역 후 지금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의 단골 곡이 되었다.

곡은 아름다운 것을 떠나보내는 화자의 심정을 노래한다. 그는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떠난다. 아름다운 것을 버리고, 슬픔은 그런 그를 데려간다. 이석원은 어느 날, 자신이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서 이 앨범을 기획했다고 한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어버린 그는, 그에게서 가장 특별했던 것을 버리고 떠난다.

평소 여행도 잘 다니지 않던 나였기에, 군대는 처음으로 일상으로부터의 긴 떠남이었다. 정신없던 일상의 탈출이 주는 쾌감도 있었지만, 떠나온 곳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은 군 생활 내내 머릿속에 잔존했다. 북한의 도발과 불안정한 정세,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겪으며 당연시했던 일상이 나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를 버티게 했던 건 일상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이었기에, 그때부터 가벼운 강박과 우울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무작정 강원도로 여행하기도 하면서 나는 일상이 나를 떠나기 전, 내가 일상을 떠나자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떠남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면 실망에서 오는 좌절은 겪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 무사히 전역 후, 학교로 복직하며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찾아왔다. 세상은 변한 게 없었고, 최선이라 여겼던 선택들이 실은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자 비로소 슬픔이 나를 데리러 왔다. 가장 보통의 존재였던 나는, 내게서 특별했던 것들로부터 떠나버렸고 후회는 결과를 바꿔주진 못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방황은 내게서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이었는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곡은 그렇게, 힘겨웠던 작년 한 해의 기억과 함께 오래도록 내 플레이리스트에 남게 되었다.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넌 말이 없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아름다운 것>, 언니네 이발관



#영화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20살부터 매주 한 두 편은 봤으니, 7여 년간 거의 2~300편 정도 본 셈이다. 중간중간 추가로 본 영화까지 따지면,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나름 그쪽에 상당한 취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내게 있어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뭘까 생각해 봤다. 답은, 지금껏 본 영화 중 최고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던 <헤어질 결심>(2022)도, 내 방 한켠에 액자로 자리한 <너와 나>(2023)도 아닌 바로 <신세계>(2013)였다.

중학교 3학년, 당시 내게 있어 영화관은 지금처럼 가까운 느낌은 아니었다. 가족을 따라 가끔씩 영화를 몇 편 보러 가는 정도였다. 그땐 오히려 게임에 더 몰두하던 시절이었기에, 영화란 내게 있어 TV 채널을 통해 가끔씩 보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 <신세계>도 그렇게 TV로 보게 된 영화 중 하나였다. 관람 등급 상 유혈이 낭자한 씬은 블러 처리된 채 방영되었지만, 특유의 잔인함과 거친 대사에도 불구하고, <신세계>는 왠지 눈길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던 나는, 어느새 영화가 방영될 때마다 TV 앞에 반듯이 앉아 집중하며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경찰-조폭으로 연결된 삼각 구도는 <무간도>의 요소를 차용했음을 선명히 알 수 있다. 강 과장(최민식)의 최후나,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의 관계는 지금 보면 영화적 작위성이 다소 드러나기도 하지만, 세 인물이 얽히고 대립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게끔 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이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다음 시즌에 대한 거센 요구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당시 청소년이 성인 영화를 접한다는, 금기에 대한 내밀한 쾌감 또한 있었지만, 중학생이던 나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 영화를 무려 10번도 넘게 봤다. 대사 하나하나, 잠깐 넘어가는 장면까지 모조리 외우며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삭제된 장면들까지 모조리 탐구하고 섭렵한 나는, <신세계>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그렇기에, 박훈정 감독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게 되었던 나로서는 이후의 작품들(대호, VIP, 낙원의 밤 등)에 대해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2024년, 이제 멋모르던 고등학생이 아닌 어엿한 직장인이 된 20대 중후반의 나는, 훨씬 세밀하고 견고해진 영화적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를 보고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에 빠져 있기도 하고,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4)을 보며 인간의 가식과 저열함을 피부로 느끼며 전율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디세이가 길고 긴 항해 후 고향 이타카를 찾아가듯, 내 영화적 경험과 감각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신세계>(2013)가 자리해 있다. 온종일 영화 속 인물들과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허구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몰입이 현실을 메우는 경험. 내게 있어 영화란 그렇게 깨어 있는 채로 꾸는 달콤한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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