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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5 바하리야사막 | 우울증과 사막 사파리

Egypt | Bahariya Desert

by Wonderer Wanderer

코로나 블루가 오다


나는 이 책의 초안을 2019년 11월 중국에서 최초 보고된 코로나라고 불리는 범유행 전염병이 인자하게도 어떠한 차별도 없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배신하지 않고 일상을 바꿔놓은 시기에 썼다. 나는 매일 아니 매시 변하던 숫자들을 사랑에 눈이 먼 스토커가 된 사람처럼 확인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공포 속에서도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각종 수칙을 이해하기 노력했던 그 시간, 카이로에서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같은 상처가 따끔따끔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지 않을 거라도 생각했던, 꿈이라고 여겼던, 혹은 이 모든 것을 끝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니깐 용기를 내어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직장문제와 향수병, 코로나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방치한 나머지, 카이로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다.


2020년 초 예외 없이 코비드 19가 카이로에 도착했다. 나는 카이로 마아디(Maadi)의 골목에서 이집트 땅을 떠난 적도, 평생 중국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바이러스 취급을 당했다. 전 세계 누구나가 그랬던 것처럼 이집트 사람들도 무엇인지 모르는 정체 모를 바이러스 소식에 공포에 떨었다. 누가 봐도 중국인인 나는 출근을 할 때도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가도 타깃이 되었다. 동양인은 곧 중국인이라고 여기다 보니 집 근처 거리에서나 도끼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 근처 골목에서도 현지인들은 나에게 “코로나, 코로나”라고 외치기도 했고, 사람들이 점점 극도로 예민해지고 멀리하는 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도시 외곽을 연결하는 링로드에서 우버를 탑승한 중국승객이 바이러스 취급 당하고 도시순환 도로 중간에 이집트 택시기사가 내쫓았다는 자극적인 영상들이 떠돌고, 이집트 정부마지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까 극도로 조심하는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주변에 아주 아픈 사람이 있다든지, 응급실로 실어 갔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쯤이면 1억 넘는 인구를 관리해야 하는 이집트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20년 3월 15일, 이집트 정부는 학교 휴교령과 공항 폐쇄, 야간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다. 또한, 다중이 모이는 문화 및 종교 행사도 금지했다. 세상이 일제히 멈추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왕래가 끊어진 2020년, 나는 긴 여름을 카이로에서 보내고 있었다. 나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위로하면서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밖을 나갈 수도 없기에 야간 통행금지 시간 전에 동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산책을 나오던 시간과 저녁과 밤 시간이 그렇게 칠흑같이 조용한 카이로는 아마 평생 경험하기 힘들 것이다. 공항이 폐쇄되고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어 체념하면서도, 가족들을 본 지 1년이 훌쩍 넘었고 고향을 갈 수 없다는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느새 카이로에서 코로나 블루에 빠져있었다.


코로나 시절 카이로에서 나는 해가 떠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 나는 "희망이 자살을 하게 한다"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가 이동을 자제하라고, 끊임없이 바뀌는, 각 국만의 특별하고 기발한 수칙을 들으면서, 나는 카이로 공항이 재개되자마자 한국행 항공권을 끊었다. 직장에 민망함도 무릅쓰고 코를 여러 번 찔리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갔던 내 조국은 해외에서 유입되었다고, 아프리카 지역으로 나를 분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런 시기에 해외를 체류했으며, 이제 한국 전역에 설치한 CCTV처럼 코로나로부터 다른 국가에 비해 안전해지니깐 한국에 돌아왔다는 눈빛을 갈기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너무도 외로웠다.


산산이 부서진 나는 이집트 생활을 접고 한국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러시아 친구 카챠는 모스크바에서 각종 수칙을 확인하며 카이로에 있는 나를 만나러 올 준비를 했다. 나는 카챠와 함께 출애굽 기념 사막여행을 갈 준비를 했다.



바하리야 사막

우정여행


이집트는 우리나라의 5배 정도의 면적이지만 나일 델타와 나일강 유역을 제외한 국토의 95%가 사막이다. 나일강 서편은 광대한 리비아 사막, 동편은 길고 좁은 아라비아 사막, 그리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 사막이 있다. 사막 사파리 여행은 카이로를 기준으로 남부의 파이윰(Feiyoum), 서부의 바하리야 오아시스(Bahariya Oasis), 리비아 국경 근처의 시와 오아시스(Siwa Oasis)가 유명하다.


각 지역마다 특유의 특성이 있는데, 페이윰이라는 지명은 지금은 사어가 된 고대 콥트어로 ‘바다’ 혹은 ‘호수’라는 뜻이다. 사막 한가운데 푸르른 논밭과 야자수가 펼쳐진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4천만 년 전에는 바다였던 와디 알 히탄(Wadi Al-Hitan)에서는 대형고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랍어로 '바다의 사막'이라는 뜻의 바하리야 사막에서도 조개, 산호 화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이로 기자(Giza) 지역의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지나 도시를 빠져나오면 사방이 사막인 도로가 나온다. 사막을 배경으로 네다섯 시간 넘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야자수와 푸른 들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하리야 오아시스에는 검은 사막, 하얀 사막, 크리스털 사막을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검은 사막은 모래에 셰일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고, 하얀 사막은 석회와 백악으로 인해 흰색을 띤다.


크리스탈 사막과 흑사막
하얀 사막 초입


대개 사막 사파리를 하게 되면 해가 지평선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지프차 타이어의 바람을 빼고 구불구불한 사막을 오르락 내리는 사막 사파리, 사막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해가 넘어가기 전에 캠핑을 할 장소를 정해서 텐트를 만들고 모닥불을 피워서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저녁식사를 준비할 즈음이면 달도 기다리지 못하고 푸른 하늘에 하얀 몸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는 사막의 가혹한 척박함이 주는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사막에서 은하계를 천장으로 삼아 잠이 드는 캠핑을 좋아한다. 특히, 내가 사막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멍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사막에서 별을 보는 낭만을 떠올리겠지만, 조용하게 어두운 사막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는 일은 그 무엇보다 나를 진정시킨다. 사막에서 바람에 구속되지 않은 불이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무언가에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없는 것 같다. 사막에서 고요함이 주는 고독을 따뜻하게 느끼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그렇게 내가 흔들리는 불빛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운전수이자 가이드인 베두인 '알리'는 나에게 묻는다.


“너, 베두인 텔레비전 좋아하는구나?”


나는 그의 표현에 무한긍정으로 웃으며 “응”이라고 답한다. 마쉬맬로우를 꼬치에 끼워 구워서 베두인차와 마시면 사막에서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특히, 사막에서는 순간의 선택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베두인 “알리”는 저녁 식사 및 요깃거리부터 다음 날 아침 식사도 철저히 준비해 왔다. 그리고, 그가 야채를 손질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절제된 미’ 최소한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사용하여 계획해서 움직이는 것 같다. 혹은 그는 계획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다. 나름 만들어낸 부엌이란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음식도 맛있다. 차를 만들어서 마신다. 아침도 차를 마시고 나서 시작하고, 식사 전에도 식사 후에도 차를 마신다. 알리는 차를 마시면서 “단순한 삶이 좋다(Simple life is good)”이라고 말한다.


바하리야 하얀 사막 캠핑


우리는 모두 불 주위에 모였다. 구덩이를 만들어서 준비해 온 장작을 피우고, 뜨거워진 구덩이에 빵 반죽을 숯으로 묻는다. 장작이 떨어져 가면 감자 칩이나 설탕을 모닥불 위에 던지면 아름다운 불빛을 내며 타들어 간다. 베두인 텔레비전에 갖가지 색깔의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불빛마저 없어지고 어둠이 깔리면 눈이 어둠에 적응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더 잘 보인다는 말은 진리였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정말 많은 별이 보인다. 보통 빛이 어둠을 걷어낸다고 표현하지만, 사막에서는 어둠이 빛을 내게 해 준다.

하여튼, 별빛 외에는 어떠한 빛도 없는 아름답고 가혹한 사막에서 밤을 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같이 있는 사람들과 오롯이 그 시간을 보내는 것. 사막에 어떠한 도구도 없다. 어떠한 베개도 이불도 사람의 체온만큼 필요한 게 없었다. 하지만 옆으로 옹기종기 붙어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서로 조금 기댈 어깨가 필요했던 것 같다.


카라반은 사막 여행자 무리를 뜻한다. 가끔은 어떠한 말이나 도구보다, 이 어려움을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살며시 느껴지는 옆 사람의 체온과 그 사람의 어깨가 있다는 존재가 척박하고 힘겨운 환경에서도 편안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분 바람으로 내가 잠을 청했던 카펫은 이미 절반 모래, 절반 카펫이다. 카펫들을 털어내고 텐트 주변을 청소하고 텐트 주변을 모닥불을 피우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땅 아래에 지난밤에 준비해 놓은 반죽을 묻는다. 그 온기로 빵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향기로운 챠이 냄새가 난다. 야외에서 텐트도 없이 잠을 자고 나면 피곤할 것 같은데, 사막에서는 머리를 감지 않고 씻지 않아도 생각보다 괜찮고, 피곤하지 않고 내 몸이 정화된 것 같다.


카챠와 사막 사파리 여행을 끝내고 카이로로 돌아왔어 카챠를 공항으로 보내는 밤. 나는 엄청나게 서럽게 울었다. 며칠 같이 지냈을 뿐인데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상실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카이로, 서울의 밤하늘 아래에서도 마치 수만 개의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하늘 아래에 있는 것처럼 그 별들을 볼 수 있다.


여행이란, 삶이란 그런 것 같다. 가끔씩은 어둠 속에서 길이나 누군가를 잃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 또 다른 길을 밝혀주리라는 것. 내가 온 길을 다시 돌아가 볼 수도 있는 것, 굽이굽이 높은 길을 선택할 수도, 쭉 뻗은 길을 달려갈 수도. 같은 길을 걷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길을 걷다가 다시 이어진 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도 많고, 나는 또 새로운 길을 만들 수도, 찾을 수도, 헤맬 수도, 우연히 그곳에 머무를 수도 떠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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