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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13. 2022

12. 이번에는 뇌종양에 걸렸다

우당탕 재취업 준비기 및 병원 방문기(2)

 뇌종양이 있을 거 같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나서 1월 1일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에는 그 어떤 병원도 문을 열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통해서만 뇌종양을 알아봐야 했다.


 검색하거나 관련 카페에 가입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아래와 같았다.


프로락틴 수치가 300 이상이면 뇌하수체 종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뇌하수체는 상부에 있는 시상하부와 연결되어 몸의 호르몬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으로, 뇌하수체에 이상이 생기면 시야 장애가 생기거나 생리가 멈추거나 두통이 느낄 수 있다.

최근 먹은 약 때문에 수치가 높게 측정될 수 있는데, 그때는 즉시 복용을 멈추고 다시 혈액검사를 한다.

1cm 이하의 종양 크기를 미세 선종, 1cm 이상의 종양 크기를 거대 선종이라 부른다.
약물치료와 수술, 방사선 치료 등의 방법이 있지만, 거대 선종일 경우에는 수술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미세 선종은 약물로 치료를 진행한다.


 이 정도였다.


최근에 약을 따로 먹은 적은 없었다. 물론 B사에 다닐 때 주구장창 우울증약을 먹기는 했지만. 설마 그때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어서 잘못 검사가 나온 걸까? 그렇다고 해도 워낙 프로락틴 수치가 높은 편이라 안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뇌에 종양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확답은 결국 MRI 검사를 통해서만 내릴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노트북을 껐다.


현 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종일 뇌종양이 아니기를 바라는 일뿐이었다. 혹여 만약에 있다고 쳐도, 수술을 대체로 한다는 거대 선종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드는 불안감에 결과를 듣기 전부터 뇌종양 센터가 있는 대학병원을 검색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해두었다.


 새해 다음날, 산부인과 병원에 방문했다. 더 자세한 소견을 들을 뿐, 혈액 검사는 재실시하지 않았다. 일주일을 더 기다릴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밀 혈액 검사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통 7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내원을 짧게 끝내고 곧장 동네 영상 전문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MRI를 찍었다. 대기시간을 포함해서 약 2시간 정도 걸렸을까? 드디어 내 뇌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뇌하수체 종양이세요. 2.7cm 종양이 보이네요."


 결국 뇌종양이었다. 또 하필 그토록 아니길 바랐던 1cm 이상의 거대 선종이기까지 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실망과 절망을 겨우내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셨나요?”


 별 반문 없이 바로 수긍하자 의사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나는 야트막하게 고개를 가로젓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아무리 전날, 인터넷으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도 어떻게 뇌하수체 거대 선종에 걸렸음을 확신하겠는가. 그렇지만 원체 내가 운이 좀 안 좋은 편이라서, 머피의 법칙이 또 발동한 거겠니 하며 의사의 진단에 쉽게 납득했던 거 같다. 귀가하는 길에 전날 미리 알아본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1개월 뒤에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환자들은 많고, 뇌종양 센터가 있는 대학병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예약을 마치고서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기어이 일어나고 만 불운에 나는 허공을 향해 무거운 숨을 밭았다. 같이 병원에 온 엄마도 옆에서 말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연말만큼이나 최악인 신년이었다.


귀가한 후, 기력이 다 빠진 나는 곧장 침대에 몸을 뉘었다. 잠을 자고 싶었는데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빈 시간을 보냈다. 평소처럼 유튜브를 보거나 OTT 콘텐츠를 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못’ 했다.


나는 계속해서 뇌종양 관련 카페에 들어가 나와 비슷한 사례인 이들의 후기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람은 수술 후 금방 완치되었노라 서술했고, 반면 어떤 이는 수술 이후 되레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였노라 적었다. 상충하는 사연이 많았다.


견해도 분분했다. 뇌하수체 종양은 다 양성이다. 그렇지도 않다. 악성 판단을 받은 사례가 실제로 있다. 뇌종양 약을 먹으면 속이 다 뒤집힌다. 아니다. 요즘에 나온 약들은 부작용이 없다... 등.


인터넷 카페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소하던 용어가 점차 익숙해졌지만, 품고 있는 불안감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두터워지기만 했다. 내 상태에 대해 감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없이 좋게 보려면 좋게 볼 수 있었고, 한없이 나쁘게 보려면 나쁘게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인터넷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었다. 한시 빨리 대학 병원의 진료를 받아야만 했다. 내 주위에 의사 지인은 없나? 누구한테 소개받을 수는 없나? 조금 더 빠르게 진료를 받기 위해 부질없는 가정을 내내 펼쳤다. 그만큼 마음이 초조했다.


밤새 뒤척였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수면 부족과 신경과민으로 인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베란다로 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창밖을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길거리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정류장에 버스가 오고 그것을 타는 학생과 건널목을 건너는 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 그리고 핸드폰을 보는 모양인지 느릿느릿 걷는 검은색 롱패딩의 청년 등이 보였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풍경인데도 무언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저 행인들과 내가 갑자기 구별되는 기분이 들었다. 출근 전 뇌종양 약을 먹었다가 지하철 화장실에 달려가 전부 게워냈다는 이야기, 수술 후 부작용으로 인해 3년 뒤에 다시 입원하게 된 이야기.... 그게 나의 사연도 아닌데 어쩐지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신경 줄이 얇아지는 순간순간이 여실히 느껴졌다.


 “일어났어?”


 엄마도 잠을 설쳤는지 시간이 이른데도 벌써 거실로 나왔다. 내 곁으로 다가오며 인사하는 엄마에게 다짜고짜 다른 말로 답했다.


 “엄마. 나 곧 출근해야 해.”


 당장 며칠 뒤 C사 입사 날이었다. 엄마는 한참 아무 말이 없다가 물었다.


 “넌 어쩌고 싶은데?”


 나 역시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도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건 섣부른 이질감이라고 속으로 되새겼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자면 크기가 커도 내 뇌종양은 뇌하수체에만 머물러 있었다. 뇌하수체 종양은 대체로 양성이고, 그래서 착한 뇌종양이라고도 불리는 질환이었다. 그러므로 벌써 저 행인들과 나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었다. 악성도 아닌 나는, 착하다고도 불리는 병에 걸린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니, 좀 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돌아가야만 했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가야지. 회사.”


 의연히 말하려고 했으나 말투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엄마는 나를 말리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엄마도 혼란스럽기는 할 것이다. 왜냐하면 취업난은 심했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딸은 여전히 정규직이 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쉬라는 소리는 그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없으리라. 설령 수술할 게 뻔한 상황을 앞두고 있을지라도.


 그로부터 이틀 뒤 나는 원래 예정대로 행동했다. 고향에서 짐을 챙기고 다시 서울의 자취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합격한 회사인 C사로 출근했다. 이로써 세 번째 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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